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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펜슬 스커트 Jun 07. 2021

원래부터 그런 여자는 아니었던거야..

나이 들어서 엄마와 친해진 이유는 '그것' 때문 이었다.

모든 딸이 엄마와 다 친한 것은 아니다.


나는 유독 엄마랑 잘 안 맞았다.

큰언니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엄마의 가장 소중한 보물이다.

언니는 끔찍하게도 부모님 생각을 많이 한다.

나는 자라면서 엄마와 속 깊은 얘기를 해본적이 없다. 

엄마는 너무 투박했고 너무 무자비했고 나의 상처를 보듬어주지 않았다. 

아주 어려서는 엄마가 야단을 치면 다락방에 기어 올라가서 엄마가 내 새엄마이고 언젠가는 진짜 엄마가 찾아올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서럽게 울었다.

왠지 집에 있는 시간이 편하지 않았고 그래서 늘 외롭고 고독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에게 나는 위로를 받고 싶었던 것 같다. 그저 괜찮다는 말을 듣고 싶었고, 내가 받은 상처를 아팠냐고 보듬어주기를 너무 간절하게 바랬던 것 같다. 그렇지만 애석하게도 엄마는 내 내면을 들여다봐주지는 못했다. 


뭐든 안 지려고 하고 항상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내 성격탓도 있다.

엄마가 꾸짖으면 절대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나는 나의 행동을 변명했고 야단치는 엄마에게 반항했다. 

엄마가 나를 이해못해준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대학교때 엄마에게 정말 호되게 혼이 났던 적이 었었는데, 엄마와 대화로 풀기가 너무 어려워 편지를 쓴 적도 있다. 


그 관계 형성에 실패한 이유는 아마 내가 아들을 바라는 집의 막내 딸로 태어난 것부터 기인하는 듯 하다.

엄마가 눈치를 준 것도 아니었지만 스스로 눈치밥을 먹으면서 커온 것 같다.

눈치를 보는 아이를 들여다봐줄 사람은 엄마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엄마로부터 외면당했다고 느꼈다. 


딸은 평생의 친구라는 말도 있이 있는데 그 만큼 엄마와 딸 사이는 가깝다는 의미이다.

그렇지만 엄마와 모든 딸이 다 친한 것은 아니다.

나처럼 진짜 엄마와 안 맞는 딸도 있다. 



내가 알았던 엄마 VS. 내가 몰랐던 엄마

엄마는 나의 엄마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여자이고 아빠에게는 아내이고 언니들과 동생의 엄마이기도 하다.

즉 내가 아는 엄마는 엄마의 일부라는 것이다. 

우리는 주로 가까운 사이일수록 노력을 게을리하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맨날 보는 사람이고 관계의 시각을 달리한다고 해서 내가 딱히 추가로 얻을 게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고 이해해보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엄마가 내 마음에 상처를 줄 때마다 '엄마가 왜 저렇게 할까'를 생각했더라면..엄마의 입장을 좀더 이해하고 내 마음안에 상처를 쌓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최근 엄마를 보면 '내가 엄마를 이렇게 몰랐었나..?' 싶을 정도로 다른 사람 같다.

우리는 주로 사람을 관찰한 뒤 정의하려고 한다. 그 사람의 유형을 정의하고 나면 대응할 수 있는 방법도 쉽게 알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람이란 얼마나 심오한 우주인가.

누가 감히 한 우주를 'A이다'하고 한마디로 단정할 수가 있을까.

한 사람안에 이런 면도 있고, 저런 면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관계에서 상처를 덜 받을 수 있다. 

어려서 나는 내가 안다고 생각한 엄마와 잘 안 맞았다. 나이들어서 마주한 엄마는 내가 겪었던 엄마와 좀 다른 사람이었다. 내가 몰랐던 엄마였다.


엄마안에도 무수히 많은 엄마가 존재할텐데..나는 엄마의 한쪽면만 줄곳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나이든 엄마와 좀더 가까워진 이유


아이러니하게도 엄마의 사랑과 보호아래 있던 유년기보다 엄마의 품을 떠나서 독립을 한 지금 우리의 사이는 더 좋다. 어떤 관계는 함께 오래 시간을 보낼 수록 균열이 생기기도 하는 것 같다.


엄마와 부딪힐 일이 줄어든 것도 분명 엄마와의 관계가 개선된 까닭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가장 주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나는 내가 엄마에게 잘해서 엄마와 사이가 좋아진것으로 착각해왔다.

그러다 문득, 알게되었다.

바뀐 것은 내가 아니라 엄마라는 것이었다. 


엄마가 달라진 것이다. 

내가 엄마를 이해하기 시작한 것, 엄마를 좀더 사랑하게 된 것, 그리고 엄마에게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서 엄마를 소재로 한 글쓰기를 시작한 모든 출발은 엄마에게 있다.

엄마가 나보다 먼저 손을 내밀고 나를 받아준 탓에 나는 엄마를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이 공간이 생겼다. 


엄마는 요즘 너그러운 할머니가 되었다.

사람은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일 수록 생각은 경직되고 본인이 옳다고 생각한 신념을 잘 바꿀 수가 없다.

점점 사고는 고정적이 되고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이기 어려워진다.

그렇게 고집을 부리면서 불평하고 충고하다보면 타인에게 고약한 늙은이처럼 보이게 된다. 

최근 엄마는 예전 같으면 한 소리를 했을 일 조차 그냥 듣고 계시고 무엇이든 먼저 충고하려고 하시기보다 공감해주려 하신다. 엄마의 이런 변화가 내 마음을 열게 했고 조금씩 삶의 문제들을 엄마와 공유하고 상의하게 되었다. 


지금 보니 엄마는 그렇게 모진 사람도 아니었고 나쁜 사람은 더더욱 아니었다.

우리를 키우던 중년의 시기동안 엄마 마음의 여유를 전혀 갖지 못해 척박한 마음에서 쩍쩍 갈라지는 신음의 소리가 우리에게 모진 화살촉처럼 전달되었던 것 뿐이었다. 


엄마는 스스로 편안해지면서 아이들을 강요하거나 악다구니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엄마는 괜찮은 어른으로 진화했다. 


최근  EBS마스터라는 프로그램에서 정신과 전문의 하지현 박사가 '인생숙제'라는 각 시기별 과제를 다루는 강의를 들었다. 거기서 '괜찮은 어른'의 정의가 나오는데, (1) 본인이 살아온 인생에 비추어 어떤 것을 '지식화'하지 않는 것 (2) 본인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않는 것 (3) 섣불리 상대방에게 '충고'하지 않는 것. 이 3가지를 할 줄 아는 어른은 '괜찮은 어른'이라고 했다. 


그 강의를 들으면서 나는 엄마를 떠올렸다.


살아온 인생의 관록만큼 경험도 쌓이고 지혜도 생기게 되기 때문에 어른들은 삶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대단한 통찰을 모두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통찰을 젊은이들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자칫 참견이나 충고로 표현되면 바로 '꼰대'가 되는 것이다.

나 또한 주니어 팀원들과 얘기할 때, 미혼의 여성들과 얘기할 때..내 경험이랍치고 '이런 이런것들은 지금 해, 이런 이런 일들은 할 필요 없어.'하고 쉽게 얘기하곤 한다. 그게 내 입장에서는 '조언'이었는데 듣는 사람 입장에선 섣부른 '지식화 나 충고'로 받아들여졌을지도 모른다.


세월의 풍파를 온몸으로 맞으며 참고 견디며 살아온 세월만을 간직한 엄마는 그러나 괜찮은 어른으로 진화했다. 참 쉽지 않은 일이다. 당신의 인생이 힘들고 고단했을 수록 고약한 어른이 되는 사람들도 많을텐데 엄마는 우아하게 나이드는 길을 선택했다. 

결혼한 아이들이 실수를 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결정을 할 때마다 잔소리 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엄마는 묵묵히 들어주고 너무 애쓰면서 살지 말라고 지금도 충분하다고 ..

내가 아주 어렷을 때부터 엄마로부터 듣고 싶었던 최고의 위안인 '괜찮다'를 해주고 계신다.



엄마가 되어 보니 엄마를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가끔 엄마를 생각한다.

인생은 예습이 없는 실전이기에 늘 아기처럼 사랑받고 보호만 받아 오던 여성 또한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게 되면 한 아이를 키워내고 이끌어야 하는 강인한 존재로서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을 해나가야 한다.


그렇기에 책도 읽고 선배들로부터 경험도 얻고, 주변 또래 엄마들과 정보도 교환하며 좌충우돌 육아를 한다. 그리고 가장 강력한 예습에 가까운 체험, 즉 엄마로부터 길러져온 기억과 경험으로 아이를 키운다.


내가 아이에게 화를 낼 때, 화가 나는 상황을 대응하는 방식이 너무도 젊은 날의 우리 엄마와 닮아서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엄마처럼 살지 말아야지'하고 생각했는데 내 안에 엄마가 있는 것이다.


엄마가 되고 보니 비로소 엄마가 왜 그랬는지 이해가 되었다. 

인생의 절반쯤 살아온 마흔의 날들에 나는 드디어 엄마와 화해를 했다.

내 맘속에 엄마로부터 '괜찮다'는 말 한마디를 듣지 못해 상처받고 쪼그려 앉아 있던 한 가여운 어린 아이가 있었다. 내 맘속에 나의 유년기 나로 기억하는 어두운 방에 웅크린 그 아이가 밝은 곳으로 나왔고 마음이 다 풀어질만큼 흠뻑 젖어드는 따뜻한 포옹을 받았다. 마음 속 어린 아이를 보듬어준 것은 나이 든 엄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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