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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펜슬 스커트 Jun 08. 2021

엄마에 대해서 글쓰기를 시작했다.

엄마를 알아가는 길은 내게 치유의 길이었다.

패배감을 극복하기 위한 '스스로'의 처방


나는 2021년 올해 한국 나이 마흔다섯 살의 중년 아줌마이다.

회사에서는 몇 년 전에 경쟁에서 밀려나 나이 든 평사원으로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

집에는 아직도 한참 동안 투자해야 할 열세 살 아들이 있다.


현재는 임금 노동자로서 월급을 받으며 생활해나가고 있지만 언제나 불안하다.

직장 생활하는 것 외에는 해본 것도 잘하는 것도 없기에 매일매일 아침마다 패배감과 우울함을 싸우며 출근을 했다. 나는 책도 쓰고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는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이지만 딱히 운이 좋다거나 성공의 기운이 가득한 사람은 아니다. 나의 효율이 떨어지는 노력은 늘 좋은 성과를 가지고 오지 못했고, '이것만 끝내면 달라질 거야.'라는 마음으로 준비했던 것들이 그저 아무것도 아니게 되면서 나는 점점 더 내 안으로 침잠했다. 나는 200%의 노력을 하고 마음을 졸이고 나를 괴롭혀야 남들이 해내는 평균만큼의 결과를 내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내 타고난 사주팔자 탓도 했다. 


조급한 마음과는 달리 생활은 늘 제자리걸음이었다.

변화하고 싶으면 3가지를 달리하라는 말이 있다. 사는 곳, 만나는 사람, 사용하는 시간

3가지 다 모두 똑같이 하면서 저절로 달라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정신병이라고 아인슈타인이 말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 모든 번뇌와 두려움에 맞설 수 있는 해답은 내 안에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내 스스로 이 부진의 고리를 끊어내지 않으면 탈출구가 없다는 절박한 심정도 들었다. 


지난 4월부터 나는 나의 '판'을 바꾸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내 인생을 구성하는 플랫폼을 바꿔서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이다.

인생 제2막을 위한 새로운 판으로 갈아 끼우는 것이다.

새로운 판의 핵심은 '스스로'이며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다. 


직장 다니는 20년 넘게 아침형 인간을 꿈꾸며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위해서 새벽 학원을 끊어 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건 그때뿐이었다. 나의 기상은 늘 출근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다. 내가 바쁘거나 한가하다는 기준은 회사의 업무량과 관련이 있었다. 회사 안에 있는 시간은 나의 24시간 중 9시간으로 약 37%에 해당하는 비중인데, 그 37%가 100%의 질을 좌우했다. 퇴사하면 무엇을 할지 잘 모르는 이유도 회사에서 시키는 일만 하기 때문인 것이다. 


나는 더 이상 회사에 좌지우지되는 인간이 되고 싶지 않았다. 아니, 회사에 매달리는 인간이 되고 싶지 않았다.  앞으로는 그렇게 되면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무엇이든 자기 결정권을 가지고 내가 경영하는 나를 만들기로 다짐했다.

늦었다고 생각했다. 이미 40대 중반의 내가 무엇을 새로 시작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안에 갇혀 맴돌고 있는 시간에 거창한 미래의 꿈은 말고, 그저 오늘 하루만이라도 알차게 살아보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그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프로젝트는 기한이 없다. 언제 퇴사하겠다고 정해둔 목표가 없기 때문에 나는 이렇게 계속 '스스로 플랫폼'을 진화시키며 퇴사의 날을 준비할 것이다.


퇴사 이후 할 일 찾기 등 실용적인 것들을 먼저 하기 전에 플랫폼의 기본부터 다져야 한다.

기본은 나의 마음가짐이며 멘털이다. 

패배감과 조급함, 두려움에 사로 잡혀서는 어떠한 것도 성공적으로 집중할 수가 없을 것 같기 때문이었다.

마음 가짐을 단단히, 나약하지 않게 해 놔야 퇴사 후 어떤 시련이 오더라도 견뎌낼 수 있다.

나는 무엇이든 쉽게 얻어지는 타입의 인간이 아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부서지고 깨져야 겨우 작은 것 하나라도 손에 넣을 수 있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멘탈이 약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마음 근육 관리를 방치해서 약해질 대로 약해진 나의 멘탈을 위해서 다시 마음 근육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 '성공'이란 뭔가?

퇴사하고 멋지게 부를 축적한 사람들, 이커머스 사업을 시작해서 대박 난 사람들, 주식으로 몇백억 대를 모았다는 사람들..

내가 그들처럼 될 수 있을까?

아니다. 나는 그 사람들과는 다르다. 나는 나만을 위한 '성공'을 만들어야 한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마음 안에 있는 '성공의 기운'부터 불러내야 했다.

 

내게 그 첫 번째 작은 성공은 '아침 루틴 만들기'였다.



마음 근육 강화를 위한 아침 루틴을 만들기의 첫 번째 글감, 엄마


마음 근육을 강화하기 위해서 아침 기상 루틴을 설계했다.

일어나서 가장 먼저 10분 동안 명상을 하고 30분간 스트레칭과 가벼운 운동을 한 뒤 1시간가량 글쓰기를 하는 것이다. 

나는 호기심이 많은 성격이고 하고 싶은 것도 진짜 많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한 가지에 전문성을 가지지 못하는 단점도 있다. 요즘도 두 가지 하고 싶은 것이 있다. 1) 이커머스 사업으로 성공하기 2) 작가로 성공하기


이커머스쪽 일을 계속 해왔기에 그걸 파면 더 수월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자꾸만 글쓰기로 마음이 간다.

그렇다면 글을 써야지.


마음 근육을 강화하기 위해서 시작하는 나의 아침 루틴, 그 첫 번째 글감으로 '엄마'에 대해서 쓰기로 했다.

나이 들면서 발견한 경이롭고 긍정적인 변화 중 하나가 엄마였기 때문이다.


엄마, 그리고 우리의 관계가 편안해진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내 안의 어린아이를 보듬어주는 치유의 과정이었다.


엄마가 간직하고 있던 오래된 사진이 담긴 앨범이 글쓰기의 트리거가 되었다.

엄마와 우리의 인생이 기록되어 있는 오래된 사진. 

사진으로 스토리를 엮어보고 싶었다. 

스캔앱을 이용해서 3권의 앨범을 모두 스캔했다. 


아침 루틴을 다져가며 이어가는 글쓰기는 어렵지는 않았지만 진도가 빠르게 나가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직장인처럼 주 5일만 글을 쓰고 있고, 아침에 충분히 일찍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며칠에 걸쳐 한 편의 글을 완성할 수 있었다.


목차는 엄마가 주로 해주신 이야기들, 내 머릿속에 강하게 남은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잡아두었다.

글을 쓰면서 나는 엄마와 함께한 시간들이 더 많이 기억이 났고 나의 유년시절 잊었던 일들도 기억이 났다. 

어떤 글은 쓰는 동안 너무 슬프고 고통스러워 울면서 썼다. 


엄마에 대한 글을 쓰는 동안 다섯 살쯤 되는 어린아이에서 출발해서 지금의 내 나이까지로 내 마음도 성장했다. 글을 쓰면서 내 안에 웅크리고 있던 어린아이가 왜 생겼는지 원인을 조금은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고 스스로 이 아이를 보듬어주는 시간도 가졌다. 


엄마에 대한 글 쓰기를 했는데 그 과정은 나를 치유하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 당시 엄마로부터 정말 간절히 듣고 싶었던 말 '괜찮아.' 

과거의 어린 나는 듣지 못했지만 내 마음속에 살고 있는 어린 나는 그 말을 들었다.


어려운 인생의 숙제를 해내고 노년의 나이에 선, 괜찮은 어른이 된 엄마로부터..

그리고 그 엄마를 기록하면서 스스로 치유가 된, 중년의 나로부터

마음속의 어린아이는 그렇게 나이 든 두 여자로부터 위로를 받았다.


명절날 찾은 할머니 산소. 사진 속 딸들은 다 화장을 하고 한복도 곱게 없었다.  어린 시절 사진을 보면서 그때의 엄마도 우리를 곱게, 이쁘게 잘 키우느라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람에 대한 글쓰기, 치유를 위한 끝이 없는 여정

앞으로도 사람에 대한 글을 계속 쓸 것이다.

물론 다른 주제의 글쓰기도 하겠지만 사람에 대한 글쓰기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 안에는 대단한 이야기가 있고 하나의 우주가 있다.

사람을 생각할 때 가장 경이롭고 놀랍다.


사람에 대해서 글을 쓰는 것은 사실 치유의 과정인 것 같다.

어떤 에피소드를 쓰면서는 그 에피소드 밖으로 나와 객관적으로 무대를 바라보는 듯한 나를 발견한다.

내가 무대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 때는 내 역할에 집중해서 다른 것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무대 바깥에서는 모든 연기자들의 행동이나 감정이 다 보인다.


그때 왜 상대방이 내게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는지, 내가 그때 왜 그렇게 반응했던지..

삶의 무대 안에서 펼쳐지는 각본 없는 드라마를 글로 옮기고 있을 때 비로소 보이지 않았던 많은 것들이 이해가 되고 그때 받았던 상처의 응어리를 풀 수가 있게 된다.



"내 첫 아침 루틴 만들기의 첫 글감이 되어주신 엄마.

엄마를 쓸 수 있었다는 것이 제게는 참 좋았어요.

가장 가까우면서도 왠지 불편했던 엄마와 글로서 만나는 시간이 정말 좋았습니다.

제가 현실에서도 글만큼이나 섬세하고 보드라운 마음으로 엄마를 대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엄마와 함께 살던 그 어린 시절의 저보다 지금의 제가 엄마를 더 이해하고 사랑하게 된 건 맞아요.

엄마를 쓸 수 있었던 것은 나이 든 엄마가 그때를 아쉬워하고 반성하며 우리에게 더 잘해주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셨기 때문이었어요.

제가 스스로 치유의 과정을 갈 수 있도록 마음의 문을 열어주신 엄마 감사합니다.

당뇨로 고생하고 있으신 김수순 여사. 좀 더 건강하게 오래오래 제 곁에 머물러주셔요. 

엄마가 없다고 생각하면 너무 견딜 수 없을 것 같거든요.

사랑합니다.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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