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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펜슬 스커트 Apr 20. 2022

코로나 팬데믹 이후, 내가 바뀐 것들

나름 긍정적인 것들도 많다.

지난 4월 18일 월요일, 정부는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전면 해제를 선언하였다.

2년 전 2월 말, 처음으로 겪었던 미지의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이제 서서히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2년 전 2월 28일 금요일, 회사는 갑작스러운 전염병에 급하게 재택 결정을 내렸고,

나는 처음으로 재택근무를 하였다. 옆에는 역시 학교를 가지 못하는 초등학교 5학년 아이가 함께 있었다.


2년 동안 재택근무도 온라인 수업도 정말로 빠르게 프로세스를 잡아갔고 점차 선진화되어 가는 모습을 보았다.

우리의 삶은 이제 2년 전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그러나 모든 세상이 한번 뒤집어졌다가 다시 생겨난 것과 같은 지금, 2년 전과 같은 삶을 다시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은 우리의 삶에 영원한 상흔과 변화의 흔적을 남겼다.

개인적으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 내가 바뀐 것들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1. 변하지 않는 것의 가치, 즉 알맹이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바꿀 수 있는 것, 변화해도 내가 살아가는 것에 크게 문제가 없는 것들은 모두 바뀐 것 같다.

일터, 직장에서의 관계, 지인들과의 관계, 먹고사는 방식, 주변의 시선, 소통하는 방식... 등등


이런 것들은 어떤 틀이나 껍데기였던 것 같다. 달라지거나 없어져도 내 인생에 크게 문제가 없는.


반면 알맹이들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일 (본질적인 일), 학습, 가족과의 관계, 친구들, 정치적/정신적 신념, 삶의 가치관...

이런 것들은 온전히 유지되었고 오히려 더 강해졌다.


특히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확실히 구분할 수 있게 되었고, 소중하고 변하지 않는 가치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자연스럽게 인간관계도 정리되었고 불필요한 술자리나 약속은 모두 없어졌다.


과거에 내게 그런 관계들이나 술자리들은 재미였고 넓은 세상이었다.

그러나 없어져도 크게 문제가 없는 것들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2. 가족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변하지 않는 가치 중에 특히 나는 가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코로나의 위협으로부터 가장 안전한 곳은 집이었고 자연스레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늘었다.

코로나 초반에 아이는 온라인 수업을 했고 나도 재택을 하며 자연스럽게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아이와 부쩍 더 친해지게 되었다.


술도 집에서 더 먹게 되고, 영화도 집에서 보게 되고, 이야기도 집에 있는 사람들과 나누게 되고...

귀가 시간은 빨라졌고 사라진 저녁 약속 덕에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늘어났다.

정말이지 언제나 변하지 않은 사람의 가치는 가족이었다.


코로나에 가족이 없었더라면 많이 외롭고 불안하고 우울했을 것 같다.


3. 행복을 미루지 않을 것이다.


오랜만에 여의도로 벚꽃을 보러 갔다.

평소라면 가지 않았을 텐데.. 사람도 너무 많고 날도 덥고.

그래도 꾸역꾸역 갔다.

워낙 집을 좋아하기 때문에 바깥에 나가고 싶은 생각 때문은 아니었다.

꽃이 딱 예쁠 때 보고 싶었다.


코로나 팬데믹 동안 가고 싶은 여행을 미루었던 것들이 참 후회가 되었다.

돈이 있어도, 시간이 있어도 여행을 갈 수가 없는 시기라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여행 일정을 잡기가 애매하거나 휴가 내기 아까울 때,

여행 경비가 비쌀 때.. 갖은 이유로 여행 가는 걸 미뤄왔던 걸 후회했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하고 싶은 것이 있을 때 그때그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사람 물결에 떠밀리면서도 여의도에 꽃을 보러 갔다.


팝콘처럼 하늘에 매달린 몽실몽실하고 탐스러운 벚꽃.

나는 그날 후회 없이 벚꽃을 구경했다.


앞으로는 행복하고 싶은 순간은 마음껏 즐기고 싶다.

행복을 미루지 않을 것이다.


4. 욕심과 집착을 버리게 되었다.


욕심껏 뭔가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인력으로는 안 되는 것이 많다는 걸. 정말 큰 자연재해 앞에서 절절히 깨달았다.


처음에는 뭔가 활력을 잃은 것만 같았다.

갇혀있는 생활이 계속된다 느껴지니 답답하고 무기력해졌다.


지금은 생각이 좀 달라졌다.

다른 종류의 활력과 희망이 생긴 것 같다.


과도하게 욕심부리지 않고 적당하게 하고 만족하는 것을 조금은 이해했다고 해야 할지..


나는 엄청 잘하고 싶어서 마음속으로 종종걸음 하며 노력하는 스타일이었다.

바라는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욕심도 많은 스타일이었다.

그렇지만 내 뜻대로 되는 것이 많지 않았고 좌절도 많이 하고 쉽게 소심 해지는 사람이었다.

뭔가 맘대로 되지 않아 늘 가슴속에 불덩이가 있었던 느낌.

불만이 많고 불평도 많이 했다.


그러던 내가 달라졌다.


나는 좀 더 내려놓는 사람이 되었다.

여전히 물욕은 많고 맥시멀 리스트의 길을 가고 있지만 내가 되지 못한 것, 내가 가보지 못한 길, 내가 다다르지 못한 자리에 대한 욕심과 열망은 확실히 줄었다.


가족과 함께 하는 소박한 일상이 좋고,

사람에게 떠밀리더라도 만개한 벚꽃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 좋다.


좀 더 천천히 느리게 가더라도, 반짝반짝 빛나지 않더라도 지금의 내가 있음에 감사하게 되었다.


5. 미래에 대해서  걱정하게 되었다.


나는 현재를 살면서 과거를 그리워하고 또 미래를 늘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나의 발은 땅에 닿아 있었지만 나의 머릿속은 미래에 대한 기대와 걱정으로 가득했었다.


오늘을 살고 있으면서도 머릿속에는 늘 내일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나는 현재를 살지 않았던 것 같다.

현재는 뭉뚱뭉뚱 대충대충 살아 나가면서 미래의 계획과 할 일에 골몰했다.


그래서 늘 책장을 휘휘 넘겨가며 책을 보는 것처럼

밥과 반찬을 입안에 가득 넣어서 꿀떡 삼켜버리는 것처럼

현재를 선명하고도 세세하게 살아내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욕심이 내려놓아지고, 지금의 나를 인정하게 되자, 미래에 대한 걱정이 한 움큼 덜어졌다.


이렇다 할 노후대책이 2년 안에 생긴 것도 아니고, 평생 일자리를 보장받는 일을 새로 맡게 된 것도 아니다.

나의 현재 위치는 변한 게 없다.

그저 오늘을 살아내는 내 생각이 바뀐 것이다.


미래를 덜 걱정하는 쪽으로, 현재에 좀 더 집중하는 쪽으로..

나의 생각의 방향이 바뀌었다.



6. 작은 일에도 감사하게 되었다.


오늘 동료들과 회의를 하는데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앉아서 대화를 하는 모습에 갑작스럽게 낯선 느낌이 들었다.

불가 2년 전만 해도 회의실에서 모여 커피 마시면서 웃고 떠들며 회의를 했을 텐데..

모두가 마스크 안에 얼굴을 숨기고 있다.


작고 평범한 일상의 것들, 내가 그저 숨 쉬듯 소비했던 공기처럼 아무렇지 않게 누렸던 일상의 것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대단한 것인지 깨달았다.

그저 쉽게 얻어지는 것은 없었다.


나는 작은 일에도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나의 아이가 공부를 좀 못해도 괜찮다.

잘하는 게 없어도 상관없고 꿈이 없더라도 다그치고 싶지 않다.


그저 건강하게 그저 온전하게 오늘도 있어주는 것.

그것이면 충분하다.


남편이 누구누구의 아빠처럼 대단하고 부자가 아니어도 좋다.

오늘 내 곁에 머물러주기만 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런 담담하고 덤덤한 마음.

소박한 것에도 감동하고  감성이 일어나는... 뽀죡하다 표현할 수는 없지만 어딘지 모르게

일상을 감지하는 감각이 예민해져 있는..

포스트 코로나의 내가 얼마나 오래 유지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지금의 내가 더 좋은 것 같다.


너무 열심히 살지도, 너무 힘 빼지도, 너무 기대하지도, 너무 열정을 다하지도..

너무 원망하지도, 너무 화내지도.. 않는, 너무 어금니 꽉 깨물지 않는..

밍밍하고 덤덤한 평양냉면 같은 상태.


지금의 나이다.


그런데 이것도 꽤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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