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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앤킴 Feb 12. 2023

5일간의 사랑으로 25년을 기다리다.

영화 - 레이버 데이

< 레이버 데이(Labor Day), 제이슨 라이트맨 감독, 케이트 윈슬렛/조슈 브로린 주연, 2013년 미국 >


"영화 같다"라는 표현에는 부정적 시각과 긍정적 시각이 존재하는 것 같다. 정말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말도 안 된다는 비평적 시각과 영화 같은 일이 현실에서 꼭 일어나주길 바라는 마음이 담긴 긍정적 바람을 말한다. 이 영화에서는 이 두 시각의 차이를 극명히 알 수 있었으며, 놀랍게도 영화 한 편에서 내 시각의 변화를 감지했다.


아들과 단 둘이 살아가는 아델은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 어려워 보인다. 거의 집에서만 지내고 외출을 두려워하며, 전남편은 비서와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가 따로 산다. 아들 헨리는 어린 나이에도 이런 엄마에게 남편 역할까지 해주려고 엄마를 살뜰히 살피는 성숙한 아이였다.

어느 날 이들은 생필품을 구입하기 위해 어렵게 집 밖을 나서 대형마트에 가면서 전혀 생각지 못한 사건이 발생한다.

피를 흘리는 낯선 남자는 아들 헨리에게 접근하고 도움을 요청한다. 헨리와 함께 나타난 이 남자에게 몹시 두려움과 공포를 느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이 발생하였음을 깨닫고 차에 태워 이들은 집으로 이동한다.

이 남자는 자신이 탈옥범임을 밝히고 모자는 두려움과 긴장에 휩싸이는데, 뉴스에서 살인범의 탈옥에 대해 대대적으로 방송이 나온다. 영화 초반 이 낡은 집안에는 평소의 어두운 집안 분위기에 공포가 더해져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 남자 뭐지??

프랭크는 집에 있는 오래된 식재료들로 요리를 직접 하여 헨리와 아델에게 식사를 준다. 더군다나 결박되어 있는 아델은 직접 먹여주기까지 한다. 싱글맘 아델이 이때부터 조금 마음을 놓는 장면까지만 해도, 영화 같다는 표현의 부정적 느낌이 작용했다. 아무리 남편 없이 아들을 키우는 외로운 여자여도 탈옥수한테 마음이 흔들린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컸다.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영화 같은 이야기라는 비판적 시각이 생겼다.

기차를 타고 탈출을 계획했던 프랭크는 노동절 연휴여서 기차가 운영되지 않는 것을 알게 되고, 어쩔 수 없이 이 집에 이들과 며칠을 더 머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이때부터 프랭크는 오랜동안 성인 남자의 손길이 없었던 집안 곳곳을 손보기 시작한다.

고장 나서 방치된 집안 곳곳을 살뜰히 살핀 후 하나하나 고치고, 나무 마루를 청소하고 코팅까지 한다. 자동차 수리를 하며 수리하는 방법을 헨리에게 자상하게 설명해 준다. 사춘기 아들에게 아버지가 전수해 주는 삶의 비법이나 야구하는 방법 등을 헨리에게 가르쳐준다. 심지어 이웃집 중증 장애인 아이를 돌봐줘야 하는 상황에서도 이 아이에게도 진심을 다하며 보살핀다.

와~ 이 남자 도대체 뭐지? 이런 사람이 왜 살인범이지? 자상한 그의 행동을 보며 나도 아델처럼 프랭크는 어쩌면 억울한 누명을 쓴 좋은 사람일 것이란 생각을 해버리게 되었다. 급기야 떠난다는 프랭크에게 아델과 헨리는 몸이 좀 낫거든 가라면서 탈옥범을 잡기에 이른다.

이웃이 준 복숭아의 양이 많아 다 먹기도 전에 물러질 것을 걱정하자 프랭크는 복숭아 파이를 만들어 주며, 아델과 헨리에게 만드는 방법을 시범 보이고 자기가 떠난 후에도 이들이 만들어 먹을 수 있도록 세심하게 마을을 쓴다. 잠시나마 이 장면에서 이들은 정말 세상 남부러울 것 없는 가족처럼 보였다. 영화 초반과 달리 집안의 어두운 색은 점차 따뜻한 색채로 변해가는 것 같았다.


서로 함께한 이 며칠은 이들 모두의 운명을 바꾸었다.

며칠 만에 아델과 프랭크는 사랑에 빠지는 영화같은 일이 발생한다. 그리고, 캐나다 국경을 넘어 새로운 곳에서 새출발을 하자고 약속한다.

이 영화같은 일이 생길 수 있었던 배경을 굳이 살펴보자면, 둘다 사랑따윈 믿지도 않을 뿐더러 사랑을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닌 최악의 상황이었기에 아이러니하게 마음이 움직일 수 있었고, 이 움직임은 오히려 무서운 가속이 붙어 남들보다 엄청난 화력으로 타올랐던 것 같다. 이 둘은 서로의 마음 속 깊이 간직한 큰 상처를 터놓고 이야기 했다.

프랭크의 과거 회상을 살펴보면 그가 살인범이 된 과정이 너무나 안타깝다. 젊은 날 아이와 아내를 모두를 잃고 그는 모든 삶의 끈을 놓고 항소마저 포기헤버린 상황이 이해가 되어 그의 인생자체가 너무 불쌍하게 여겨졌다.

아델은 4번의 유산 과정을 거치면서 육체적, 정신적으로 큰 상처를 받고 사회와 단절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음을 어렵게 말한다. 이로 인해 남편과도 멀어지고 헨리를 의지하며 지금껏 살아온 인생 이야기를 나눈다.

이런 그들에게 사랑은 사치였다. 그런데, 그런 두 사람이 생각지도 못한 이 짧은 며칠을 보내고 인생을 함께 하기로 결정한다.


이들 셋이 캐나다로 떠날 준비를 마치고 출발하려는 순간 경찰의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등장한다. 프랭크는 체포 직전에도 혹여 자신을 숨겨주었다고 피해가 갈까 봐 재빨리 아델과 헨리를 결박한 후에야 경찰을 향해 두 손을 들고 나와 체포된다. 이로 인해 프랭크는 탈주와 아델 모자를 감금한 죄로 징역 25년을 받는다.

그 후, 남겨진 이들의 일상은 멈추어졌고, 프랭크는 아델의 면회도 편지도 거부하고, 헨리마저 친아버지가 맡아 키우기로 한다.

여기서 이렇게 영화가 마무리 되려나 싶었다.


성인이 뎐 헨리는 프랭크가 가르쳐준대로 자동차 타이어도 수리할 줄 알고, 데이트도 하고, 결혼도 한다. 언젠가 프랭크에게 배운 파이를 만들어 팔고 헨리의 파이 가게가 지역 신문에 소개된다.

헨리는 이 신문을 본 프랭크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프랭크는 아직도 아델을 사랑하고, 자신은 건강하며, 앞으로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을 전한다.

오랜 시간 단 한사람만을 그리워한 두 남녀는 노인이 되어서야 드디어 생을 함께 할 수 있게 된다.


이 영화는 처음에는 부정적 시각으로 시작해서 영화가 끝난 후에는 혹시나 실화가 아닐지 찾아볼 정도로 영화같은 마법을 기대하게 되었다.

조이스 메이나드의 동명 소설을 영화로 만들기 위해 각색과 감독을 맡은 제이슨 라이트맨은 언젠가 의미있게 보았던 영화 <툴리>의 감독시기도 하다. 우연히겠지만 두 작품의 여주인공은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엄청난 인생의 변화를 겪는 아픔을 보여주기도 했다. 감독이 시나리오 뿐 아니라 직접 각색까지 겸한 작품의 완성도가 높을 때 그 감독에게 큰 매력이 느껴진다. 감독의 다른 영화도 보고 싶어진다.


이 영화처럼 단 며칠을 함께 하고 남은 생을 그리워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잠시 생각해 보았다.

두 사람의 삶의 굴곡이 이 엄청난 사랑에 영향을 미친 것인지도 곰곰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사랑을 할 때 우린 상대의 어떤 점을 살펴보고, 어떤 매력에 빠지게 되는지도 새삼 고민해보게 되었다.

피천득의 <인연>의 작품처럼 누군가는 생에서 세 번을 만나고 사랑의 감정과 여운을 느끼기도 하고, 누군가는 평생을 물리적인 울타리에서 함께 살면서도 사랑없이 살아가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사랑은 참 어렵고 복잡하지만, 때론 이 사랑이 누군가에겐 희망이 되고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는 점에서 숭고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영화가 끝난 후, 운명적인 만남은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와 깊이가 더해져 그 진가를 발휘함을 느꼈다. 만날 사람은 반드시 만나게 된다는 영화같은 이야기였다.


이들의 사랑에서 한국 소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서 아들이 전해주는 삶은 계란으로 어머니와 사랑방 손님의 사랑이 이어지는 장면이 생각난다. 두 사람의 사랑에 헨리의 파이가 큰 역할을 한 것 같다.

<레이버 데이> 그야말로 소설같은 이야기고 영화같은 내용이었지만, 진짜 있을 수 있는 이야기라고 믿고 싶게끔 만들어주었다.

영화 초반의 긴장감이 점차 따뜻함으로 변하고, 사랑이 무르익고, 긴 이별의 슬픔과 절망을 견뎌내고 그들은 마침내 영화처럼 다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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