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생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를 2024년 1월 1일 첫 해돋이.
사돈어른 댁에 도착한 나롱이는 화장실 안 배변패드에 바로 쉬를 하며 누나를 안심시켰고, 처음 와보는 낯선 환경이기에 눈치는 봤지만, 곧 거실 한 자리를 차지해 '옛날 통닭' 자세로 누워있던 걸 생각하면 나름대로 그곳이 편안했던 것 같다.
물론, 내려오기 전 다시 빠져버린 식도관으로 약먹이기와 강급은 많이 힘들어졌지만, 그래도 다시 수술을 선택하지 못한 누나의 마음을 이해한 건지 이 전보다는 잘 받아먹으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줬고, 스스로 간식도 먹는 모습으로 누나를 안심시켰다.
사실, 2023년 12월 말은 나에게 오지 않았으면 하는 시간이었다.
나롱이가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지, 딱 3개월이 되는 날이었기에.
이제와 돌이켜보면 나롱이가 지금까지 내 곁에 있던 15년 동안 단 한 번도 나롱이와 함께 연말을 보낸 적도, 새해를 맞이한 적도 없었다.
나 혼자 친구들을 만나고, 모임을 나가고, 남자친구와 행복한 한 해를 맞이하느라 나롱이는 사실 생각해 본 적도 없는 것 같다.
나롱이가 내 동생 이긴 하지만, 나에게 소중하긴 하지만, '나롱이는 그냥 나롱이, 나는 나'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냥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집을 비울 때마다 나롱이는 나를 현관문 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렸다.
엄마 아빠가 퇴근해서 들어가도 내가 들어가지 않으면 문 앞에서 보초를 서며 누나가 왔을 때 '잘 다녀왔어? 별일 없었어?' 하는 마음으로 반갑게 맞아줄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누나란 사람은 밤늦게 들어오면 세상 반갑다며 인사를 해주는 나롱이를 대충 쓰다듬은 후 간식 하나 던져주고, 피곤하다고 누워서 휴대폰만 하다 잠드는 게 일상이었다.
나롱이는 '그런 누나라도 괜찮다'며, 내 등에 자기의 등을 기대어 누워 따뜻한 온기를 느끼게 해 주었고, 꼭 '오늘도 수고했어. 잘 자.'라고 위로와 인사를 해주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나롱이는 항상 나만 기다리며, 나를 바라보며, 누나와 함께 놀러 가는 상상을 하며, 15년을 매일 같이 기대하고, 기다리고, 참다가 '이제는 더 기다려 줄 수가 없다'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무지개다리 문턱에서 다시 누나를 부른 건 아닐까.
지금이라도 날 바라봐 달라고, 나랑 놀아달라고, 나와 함께 해달라고.
그래서 남편에게 시부모님도 뵐 겸 시댁에 가자고 했고, 다 같이 2024년 '첫 해'를 보러 가기로 결심했다.
(물론, 나 혼자의 결심이었다)
어머님 아버님께 손자손녀를 데려와도 모자랄 나이에 강아지 동생을 데려와서 아기처럼 돌보는 것도 당황스러우실 수 있는데, 하루 전날 밤에 새벽 일찍 '해돋이'를 보러 가자고 통보하는 며느리에게, 흔쾌히 "그래~ 보러 가자."라고 하실 분이 몇이나 되실까.
그런데 나의 시부모님은 바로 'ok'를 해주셨고, 죄송하면서도 감사한 마음을 안고 2024년 첫 해를 맞을 준비를 했다.
그렇게 나롱이는 절대 볼 수 없을 줄만 알았던 '2024년 첫 해'를 사돈어른과 함께, 형아와 함께, 그리고 제일 사랑하는 누나와 함께 멋진 바다에서 직접 볼 수 있게 되었다.
2024년 1월 1일 새벽.
나름 일찍 나왔지만, 벌써 도착한 사람들이 많아 멀리 차를 대고 항구까지 걸어가야 했기에, 형아 등에 업혀 일출 장소까지 이동했다.
평소 짖지도 않고, 다른 강아지나 사람에게 관심이 없는 '사회성 제로' 나롱이는 그날도 목적지까지 소리소문 없이 도착했고, 얌전한 덕분에 주변 어르신분들의 이쁨을 받으며 '첫 해'가 떠오르기만을 기다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흐린 날씨 때문인지 사람들은 저마다 "해 뜨는 거 맞나~" "구름에 가려서 안 보이는 거 아이가~" "시간 지난 것 같은데?" 라며 설렘보다는 불안함이 커져갈 무렵, 저~기 수평선 멀리 조금씩 붉은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해 뜬다! 뜬다!" "와~ 쥑이네~"
언제 불안해했냐는 듯, 사람들은 빠~알간 해를 보며 연신 감탄하였고, '찰칵찰칵' 카메라 소리가 거의 기자회견을 방불케 했다.
"저기, 2024년 첫 해님. 반갑습니다. 여기 사람들도 많이 오셨는데, 소감 한번 말씀해 주시죠~"
"소감이랄 게 뭐 있겠습니까. 붉게 타오르는 저처럼 활활 타오르는 멋진 한 해 보내십시오."
나도 나롱이에게 첫 해를 보여주며, 속삭였다.
"나롱아~ 2024년이야! 나롱이 3개월 지났다! 앞으로도 건강하자~ 누나가 지켜줄게!"
그리고, 해님에게도 부탁했다.
"나롱이 건강하게 해 주세요."
"그리고, 돈도 많이 벌게 해 주세요!"
그렇게 우리 가족의 2024년 첫 해돋이, 첫나들이는 무사히 끝났고, 나롱이와 함께 해주신 어머님 아버님께 감사드렸다.
그 기운을 받아서인지, 나롱이는 점점 더 건강했던 예전의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었고, 담당선생님도 "제가 본 심장병 환자 중에 나롱이가 가장 기운이 좋습니다."라는 말씀으로 누나의 간호가 헛되지 않았음을 알려주셨다.
심장과, 신장, 소화기능 어느 하나 성한 데가 없는 나롱이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 보일 정도로 잘 살아가고 있었다.
잘 살아가는 만큼 이따금씩 슬픔도 나를 찾아왔다.
그 슬픔은 나에게 '이렇게 생각해 보는 건 어때?' 하며 나에게 생각을 넘어 상상을 펼치게 해 주었다.
'나롱이가 지금 잘 버티고 있는 건, 그동안 누나와 못 해본 것들을 다 해보고 그 추억을 하나하나 잘 포장해서, 먼 훗날 강아지 별에 도착했을 때, 누나가 보고 싶을 때마다 하나씩 꺼내 보기 위한 게 아닐까?'
그리고, '누나도 나롱이가 보고 싶을 때마다 하나씩 꺼내 보며, 행복한 미소를 짓길 바라는 게 아닐까?' 하는 상상.
아주 먼 훗날이 되길 바라는 '그날'이 오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 정도면 오래 살았지. 살만큼 살았으니 너무 슬퍼하지 마'
'누구나 이별하는 순간은 오는 거야. 잘 보내주면 되지.'
'그래도 너 덕분에 다시 살아나서 행복한 시간들 보냈잖아.'
.
.
주변에서 해주는 위로의 말들을 들으며 지금은,
'그래, 그래도 이만큼 산 것도 나롱이 복이지. 무지개다리 문턱에서 살아 돌아와서 나름 누나랑 행복한 시간들도 보냈으니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고통스럽지 않게 누나 옆에서 눈감기만 했으면 좋겠다.'라는 마음뿐이다.
혹시나 내가 우울증에 걸릴까 지금부터 걱정하는 우리 엄마.
자식 같은 나롱이지만, 그래도 엄마에게는 내가 엄마 자식이기에 내 걱정뿐이다.
'나롱이는 그래도 우리 곁에서 행복하게 잘 살았으니, 떠나게 되는 날.. 잘 보내주면 된다'라고 하는데..
나롱이에게 물어보고 싶어졌다.
정말 나롱이가 대답만 해줄 수 있다면, 그래도 그 말 한마디에 잘 살아갈 것 같은데..
나롱이는 어떤 대답을 해줄까?
.
.
"나롱아, 누나가 질문 하나만 할게. 나롱이가 대답해 줄래?"
.
.
.
나롱아, 지금 행복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