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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미쌤 Aug 22. 2024

그래, 니가 이겼다. 이 식도관아.

나롱이는 내가 지킨다!

본의 아니게 식도관 탈출 이슈로 인해 나롱이는 목숨을 걸고, 차가운 수술대 위에 두 번 눕게 되었다.


그런데, 이 망할 놈의 식도관이 또 빠져버렸다.




12월 중순 '견바이처'와 헤어진 후, '멀리 반포까지 오는 의미가 없어졌다'라고 생각했기에 집에서 비교적 가까운 일산점으로 이관을 했다.

마침 동네 카페 직원분이 일산점에 아는 의사 선생님이 있다며 소개해줬고, 그분에게 나롱이를 맡기기로 결정했다.

지점은 다르지만, 같은 병원이기에 다른 곳을 알아보는 것보다 더 나을 거라 생각했다.

이번에는 여자 선생님이셨는데, 강아지를 사랑하는 게 느껴졌고 나롱이 행동 하나하나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안심이 되었다.


그런데, 12월 29일 진료날. 드레싱을 하던 중 식도관이 또 간당간당 겨우 매달려있는 걸 발견했다.


이번에는 풀어진 실을 간단히 꼬매기만 하면 될 것 같다고 해서 안도했으나, 그날 하필 외과선생님이 안 계셔서 시술이 불가했기에, 우선 붕대를 단단히 감는 걸로 진료를 마쳤고, 그다음 주 외과 진료 예약 후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

.

얼렐레??? 

또 빠져버렸다. 


이 망할 놈의 식도관.


첫 수술 후, 11일 만에 빠졌던 이력이 있기에 이번 에는 20일 만에 빠진 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건지..

이전처럼 당황하진 않았지만, 어이가 없었다.


'이런... !@#$%^&*' 욕이 나올 지경이었다.


애미야. 난 못 들었다.


다음 주에 살짝 꿰매면 괜찮을 거라고 했던 선생님이 원망스러웠다.

특별히 나롱이가 깨발랄하고, 몸을 많이 움직이는 게 아니었기에 자주 빠지는 이 상황이 더 허무하게 느껴져 괜히 엄한데 화풀이를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자주 빠질 거였으면, 애초에 하지 말걸 그랬나.. 마취 위험을 무릅쓰고 한 번 더 수술대 위에 나롱이를 눕혔건만.. 고작 20일이라니..' 나 자신에게까지 원망의 화살을 쏘아댔다.


하지만, '내가 한 선택'이기에 그 누구도, 그 어떤 상황도 원망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식도관 수술 덕분에 정해진 양만큼 강급을 할 수 있어 몸무게도 조금씩 늘었고, 간식 정도는 스스로 먹을 만큼 식욕도 되찾았으며, 약도 정량 먹을 수 있었기에 오히려 감사해야 했다.




12월 29일 토요일 아침, 나는 일산 병원이 아닌 반포 병원으로 향했다.


일산점이 못 미더워서가 아니라, 출근 동선을 생각했을 때 일산점을 가기는 어려웠고, 이왕이면 수술을 한 곳에서 상의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미 견바이처가 떠나고 반포에서 나롱이를 담당하는 선생님은 없었지만, 나롱이를 오랫동안 봐 온 병원이었기에 구구절절 설명 없이 맡길 수 있다는 점이 나를 그곳으로 인도했다.


바로 외과 선생님이 오셔서 상담을 진행했고, 다시 수술을 할지 말지는 오로지 나의 몫이었다.


남편과 통화를 해서 상황 설명을 했고, 일산 병원 담당 선생님과도 전화로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만, 이 전보다 결정이 더 어려웠다.


나롱이는 '마취 위험 환자'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술을 고민했다. 

그동안 약 먹이기도, 밥을 먹이기도 편했으니까.

수술을 포기하기엔, 수술 전 나롱이에게 약과 밥을 먹이려 고군분투했던 상황들이 떠올라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절대.. NEVER.


머릿속에서 천사와 악마가 싸우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천사가 승리했는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나 편하자고 나롱이를 다시 수술대에 눕히겠다고?'

'약도, 밥도, 입으로 먹이면 되는 건데, 너 편하자고 위험한 줄 알면서도 수술을 고민한다고?'


내 안의 천사가 나의 정신을 번쩍 들게 했고, 악마를 물리친 나는 데스크에 가서 선생님을 불러달라고 했다.

(뭐, 그렇다고 악마라고 할 것까진 없으나.. 나롱이가 사망할 위험이 있음에도 나 편하자고 수술을 고민하던 내 모습이 무언가에 현혹된 악마 같았다.)




"선생님, 수술은 안 할게요. 어떻게든 제가 먹여보도록 하겠습니다!"


선생님은 앞으로 나의 간호가 얼마나 더 고달파질지 예상은 되셨지만, 나롱이를 위한 나의 결정을 존중해 주셨다.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걸 나보다 더 잘 아실 테니까.


그렇게 나롱이는 식도관이 빠진 부위를 실로 간단히 꿰맨 후, '차가운 수술대 위'가 아닌 '따뜻한 누나의 품'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날 저녁 퇴근 후, 멀어서 자주 못 뵈는 시부모님과 '2023년 마지막을 함께 하기 위해' 우리 셋은 고속도로에 올랐다.


서울에서 마산까지.


긴 장거리는 처음이라 걱정도 됐지만, 나롱이는 '누나와 함께라면 어디든 갈 수 있어'라는 얼굴로 나를 안심시켰고, 휴게소에서도 차에서도 의젓한 모습으로 장장 5시간의 드라이브를 함께 했다.


난 누나 품이 최고야.


그리고, 밤 12시가 넘어 도착한 마산 집.


내가 시부모님과 인사도 채 나누기 전, 나롱이는 제 집인 것 마냥 리드줄을 끌어당기며 당찬 걸음으로 거실에 발을 들였다.


사돈어른, 처음 뵙겠습니다.
동생 안나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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