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인이 불러온 희망 그리고 꿈
나롱이는 3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은 심장병 말기 노견이기에, 곧 ‘강아지 별’에 갈거라 생각했다.
그러지 않길 바라면서도 현실이었기에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나롱이 간호를 위해 친정에서 다시 데려왔을 때도, 나롱이를 케어하기에는 강아지 용품들이 부족했지만 최대한 사지 않으려고 했다.
나중에 이 물건을 치울 때 고통이 더 클 것 같아서..
하지만, 나는야 맥시멀리스트.
'그래도 이건 필요해!'라는 생각으로,
추우니까 옷 한 벌 새로 사고,
흉관포트를 삽입한 부분이 불편하니까 하네스도 새로 사고,
리드줄도 더 탄탄한 걸로 새로 사고,
심지어 초반에는 나롱이가 스스로 걷기를 힘들어해서 "개모차"도 샀다.
나롱이를 어떻게든 밖으로 데려나가 추억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마음에 시댁에서 올라오는 길에 '라이브 쇼핑'을 보고 '충동구매'를 하게 된 개모차.
이제는 스스로 산책을 잘 다니기에, 구석에 처박혀 있는 개모차를 보며 어느 날 남편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중에 우리 아기 낳으면... (눈치 한번 보고) 아기가 저걸 타기엔 좀 그렇겠지?"
남편은 어이가 없다는 듯 쳐다봤고, 순간 멋쩍은 나는 한참을 웃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렇게 필요한 물건, 필요가 없게 된 물건들이 점점 쌓이기 시작했다.
그중, 지금도 내가 가장 애정하는 물건은 '강아지 식수대'이다.
나롱이가 다리가 길다 보니, 바닥에 물그릇을 놓으면 완전 거북목처럼 되어 물 마시기가 불편해 보였고, 벌컥벌컥 마시다가 사레가 들리고 구토를 한 적도 몇 번 있어서 다리 길이에 맞게 물을 편히 먹을 수 있는 식수대를 갖고 싶었다.
내가 갖고 싶다고 이야기하면 남편은 '필요한 것과 필요 없는 것'을 잘 구분해 주기에 이번에도 S.O.S를 했는데, 남편도 식수대는 필요하다 생각했는지 바로 폭풍 검색에 들어갔다.
남편은 계속 써야 하는 물건은 품질이 좋은 게 1순위이고, 수많은 제품 중에 어떤 것으로 살지 정해졌으면 그 안에서 최대의 가성비를 가진 물건을 선별해 보여준다.
여러 종류의 식수대가 있었지만, 평소 '우드 러버'인 나는 '우드 식수대'가 눈에 들어왔고, 이름 '각인'까지 된다는 말에 더 이상의 고민 없이 바로 픽했다.
물건은 정했으나, '각인'을 어떻게 할지가 고민이었다.
남편과 나는 서로 머리를 맞대고 누구의 아이디어가 더 센스가 넘치는지 뽐내기 시작했다.
남편은 나롱이가 그동안 약도 잘 안 먹고, 먹고 싶은 것만 먹고, 하기 싫은 건 난리부르스를 치니 진상 컨셉이 어떠냐고 했다.
'진상나롱'
'싸가지나롱'
'싸가지바가지'
.
.
등등등.
그것도 귀엽긴 하지만, 나는 무언가 의미가 부여됐으면 했다.
평소 이름 짓기, 별명 짓기 같은 걸 좋아했기에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샘솟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그 순간!
귀에서 맴돈 한 개그맨의 유행어.
"영국의 권위 있는 귀족, 루이 윌리아암~~~스 세바스찬 주니어 3세예요"
갑자기 이 유행어가 왜 떠올랐는지 모르지만, 내 머릿속에 맴돌았고, 남편에게 나는 "나롱 18세 어때?"라고 이야기했다.
권위 있는 귀족 느낌의 '나롱 O세'의 컨셉을 쓰면서, 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못살게 굴 때가 많으니까 숫자는 '18'이 어떠냐며..
남편은 "오! 좋은데?"라며 맞장구를 쳐주었고, 우리는 그렇게 각인할 이름을 '나롱 18세'로 정했다.
그리고, 며칠 후 도착한 식수대.
높이를 맞춤으로 했는데, 나롱이 다리 사이즈에 잘 맞았고, 무엇보다 물을 마실 때 편안해 보였다.
나롱이는 이뇨제를 항상 복용해서 하루에 물을 많게는 1L도 먹게 되는데, 물 마시는 모습이 편해 보이니 세상 안심이 되었다.
남편은 나롱이가 편해 보이니 뿌듯해하며, 식수대에 새겨진 이름을 한참 바라보더니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나롱이 왠지 18세까지 살 것 같지 않아?"
"진짜! 그렇네~~ 먼가 느낌이 그렇다!"
각인할 이름을 정할 때, ‘18세’를 ‘나이’로는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생각해 보니 이제 16세니까 18세면 2년이나 더 살 수 있는 나롱이 나이였다.
순간 정말 그럴 것 같은 생각이 들었고, 우리는 서로를, 그리고 나롱이를 바라보며 크게 웃음 지었다.
나롱아, 18세까지 살 거지?
아니 그보다 더 오래 살아도 돼!
우리 기네스북 한번 가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