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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미쌤 Sep 17. 2024

강아지 약, 어디까지 먹여봤니?

‘진상’도 ‘정성’은 통한다.

나롱이는 심장병 D단계 진단을 받은 이후, 평생 약을 먹어야 했다.


처음 처방을 받았을 때는, 메인약인 심장약/ 중간 이뇨제/ 저녁 심장약이 있어, 하루 총 3번 먹여야 했다.


모든 약은 캡슐에 조제되어 알약처럼 먹일 수 있었는데, 나롱이는 의사 선생님들도 약을 먹이기 어려운 개진상이었고, 입질을 하는 바람에 처음 집에서 약을 먹이려던 나는 기겁을 하고야 말았다.


처음 보는 나롱이의 화난 표정과 드러난 이빨, 못생겨진 그 얼굴을 보자니 심장이 두근두근 했고, 겁이 났다.


아오 못생겼어.


유튜브에 올라오는 [강아지 약 먹이기] 동영상을 아무리 수백 번 돌려봐도, 현실은 달랐다.


나롱이는 '개진상 of 개진상'이었다.


그래도 약은 꼭 먹여야 했기에 방법이란 방법은 다 시도해 봤다.

‘다시 할 수 있냐?’고 물어보면 ‘아니오.’라고 단박에 대답할 만큼 힘든 여정이었다.


그래도 ‘3개월 시한부’를 받았던 나롱이가 심장병과 싸운 지 9개월이 넘어가고 있는 지금까지  살 수 있었던 건 우리가 '약 먹이기'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도 약을 먹이는 게 너무 힘드신 보호자님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개진상 안나롱에게 약을 먹였던 방법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첫 번째 방법


무엇보다 약을 정량 먹이는 것이 중요했기에 캡슐로 조제된 약을 그대로 먹이는 방법을 추천받았다.


견바이처 선생님은 강아지 목구멍에 바로 넣어줄 수 있는 '필건'이라는 도구가 도움이 될 거라며 사용법을 알려주셨다.


‘필건’이라는 도구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본체 앞부분은 실리콘 재질로 알약을 쏘옥 끼울 수 있는 구멍이 있고, 뒷부분은 가위 손잡이 모양 같이 두 손가락을 끼울 수 있는 곳이 있다.

그 본체 안에 넣을 수 있는 초록 막대기가 있는데, 막대기 끝에 엄지손가락을 끼울 수 있는 구멍이 있다.


출처. 네이버.


약을 끼우고, 초록 막대기를 본체에 끼운 후, 검지와 중지를 본체 손잡이에 넣고, 막대기 구멍에 엄지를 넣어 주사를 놓듯 쑥 누르면 알약이 목구멍으로 쇽 날아가는 도구였다.


그때, 견바이처 선생님은 이 필건을 건네주시며 "저희가 먹일 때도 나롱이는 이 필건을 부시려고 하니, 혹시라도 모를 사고에 대비하여 필건 앞부분을 반창고로 돌돌 말아뒀습니다. 만약 잘못해서 부시기라도 하면 플라스틱 조각이 식도로 넘어가 큰 일 날 수 있으니 조심하세요."라고 말씀하셨다.


그 이야기를 듣자니, 약먹이기가 더 두려웠다.


그래도 남편과 나는 나롱이에게 약을 꼭 먹여야 하기에 여러 차례 시도를 했다.


하지만, 필건이 입안으로 들어가야 약을 쏘든가 말든가 할 텐데, 입을 벌리는 것조차 어려웠고, 벌리더라도 필건을 부시려고 입질을 해댔으니.. 역시나 실패였다.


이빨을 드러내고, 온몸을 비틀며 발버둥을 치고, 먹이면 곧 죽을 것 같이 팔딱팔딱 거리는 모습을 보자니, 곧 숨이 넘어가 실신할 것만 같아 더 이상 시도할 수가 없었다.


나롱이의 이빨이 무서운 것보다, 나롱이가 이러다 흥분으로 인해 심장이 멈춰버릴까 봐 더 겁이 났다.


선생님도 너무 흥분하면 시도하지 말고 멈추라고 했으니까.


'필건'은 우리에겐 무용지물이었다.



두 번째 방법


캡슐 알약으로는 도저히 불가했고, 나롱이는 그때 당시 식욕이 없어 간식도 거부했을 때여서 간식에 숨겨주는 것도 불가했다.

의사 선생님이 "그래도 이렇게 하면 강아지들이 잘 먹는 편입니다."라고 추천해 주신  방법을 다 시도해도, 나롱이는 '놉!' 고개를 돌려버렸다.


다른 강아지들은 잘 통하는 방법이 나롱이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고기 간식, 강아지용 시그니처 바이 A/a.. 다 소용없었다.


그래서 시도한 두 번째 방법이 '물약을 만들어 먹이기'였다.


캡슐약을 분리하면 가루가 들어있는데, 아기들이 먹는 것처럼 물에 녹여서 물약을 만든 후 주사기에 넣어 송곳니 사이 틈으로 물약을 넣어주는 것이었다.


이 방법은 장점보다는 단점이 훨씬 많았는데..


우선, 물약을 만들기 위해 캡슐약을 뜯는 즉시 소실되는 양이 있으며, 2ml 정도의 물에 섞은 후  주사기로 빨아 들일 때 용기 벽면에 붙어 소실되는 양이 또 생겼다.


그러면 그 약이 아까워 물을 조금 더 넣어 흔들어주고 다시 주사기로 빨아들이면, 족히 3~5ml의 양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쓰디쓴 물약'을 하나도 흘리지 않고 다 먹인다는 건 쉽지 않았다.


더구나 우리 영악한 안나롱이는 왼쪽 송곳니 사이로 약을 넣어주면, 입을 끝까지 쭈욱 찢어 오른쪽 송곳니 사이로 흘렸다.


왼쪽으로 들어가면, 오른쪽으로 나오는 파이프도 아니고, 줄줄 샜다.


약을 조금씩 넣어 주둥이를 손으로 감싸고 목을 뒤로 살짝 젖혀 억지로 넘어가도록 했는데, 넘어가더라도 쓴 맛에 힘들어했고, 대부분 넘어가지 않도록 입에 머금고 있다가 고개를 바로 해주면 입을 벌려 엘렐렐레 뱉어냈다.


나롱이는 흡사 주스짤 아저씨.


그나마 넘어간 쓴 약의 여운을 없애주고자 물을 넣어 희석해 주면 양치하고 입을 헹구듯 그 물을 다 질질 뱉어내어 결국 들어가는 약은 50%도 안 되는 것 같았다.


쓴 약을 직접 맛을 느끼게 하며 다 먹이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기에, 안 먹는 것보다 이거라도 먹는 게 나았기에,  몇 개월간은 '물약'을 만들어 먹였다.


그러던 중, 견바이처 선생님과 이별을 하고, 일산 지점 담당선생님을 만났을 때, “약 먹이기가 너무 힘들어요!!”라고 호소했더니, 세 번째 방법을 추천해 주셨다.


세 번째 방법


세 번째 방법은 약냄새와 맛을 숨기는 가루약과 섞어 경단을 만들어 먹이는 방법이었다.


그것은 바로 약을 간식으로 만드는 마법의 가루 "까까*주"였다.


“그런 게 있어요?~~~”하며 반색했지만, 항상 다른 강아지들과는 다른 길을 가는 나롱이였기에 “과연 가능할까?”하는 의구심도 있었다.


그래도 밑져야 본전이니 ‘해보자!’하는 마음에 검색을 했다.


“까까*주”는 여러 종류의 맛이 있었는데, 나롱이는 닭고기를 워낙 좋아했기에 '닭고기 맛'으로 한 통을 구매했다.


만드는 방법을 설명하자면,

약을 먼저 용기에 넣고, 동봉된 스포이드로 물을 몇 방울 떨어뜨려 걸쭉하게 만든 후, 가루를 한 스푼 넣어 뭉쳐줬다.

뭉쳐진 후에 다시 가루를 0.5스푼 추가해 경단 모양으로 빚어 강아지에게 먹이면 끝.


그런데, 나롱이는 약이 섞인걸 기가 막히게 알았다. 가루약만 섞은 상태에서는 역시나 실패.


그래서 상세 페이지에 쓰여있는 방법대로 경단약을 만든 후, 좋아하는 간식으로 감싸서 먹이는 것을 시도했다.


삶은 닭고기 속에 넣어도 줘보고, 좋아하는 간식에 붙여서도 줘보고, 간 소고기를 삶아 덕지덕지 붙여서도 줘보고..


다행히, 대부분의 방법이 성공하긴 했다.


어떤 날은 먹는 척하다가, 고기만 먹고, 약은 기가 막히게 뱉어내어 바닥에 뒹굴고 있을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 잘 먹어줬다.


고기만 먹고 약은 뒹굴고 있는 날에는 어쩔 수 없이 고기를 또 추가해서 입에 밀어 넣었다.


그렇게 3개월 정도는 이 방법으로 소실되는 양이 거의 없이 약을 투약했다.


하지만, 사실 내 눈에 소실되는 게 보이지 않을 뿐.


나롱이 약은 '공복'에 먹어야 흡수율이 높은데, 가루약도 섞고, 간식도 같이 주는 상황이니 약의 흡수율이 떨어졌다.


걱정이 돼서 그때 반포 본원의 담당선생님에게 이런 부분이 걱정된다며 질문을 했었는데,

"그 정도는 괜찮습니다. 충분히 잘하고 계시니 너무 걱정 마세요."라며 안심시켜 주셨다.


나롱이 보다 나롱이로 인해 힘들어하는 나의 마음을 생각해 주신 답변이란 걸 알기에 많은 위안이 되었다.


그러나, 또 하나의 단점이 있었다.

가격이 사악했다. 15g 한 통에 25,000원.


한 번에 사면 그나마 만원 할인 가능.


나롱이가 이때쯤에는 약을 하루에 2번 먹었는데, 15g 한 통의 양은 대략 15일 정도 먹일 수 있는 양이었다.


약의 양에 따라 가루를 섞는 양도 달라지기에 평균 15일이었던 것 같다. 약 값도 비싼 상황에 추가 비용이 한 달에 50,000원 정도 되었으니 사실 부담이 없다면 거짓말이었다.


그래서 남편과 나는 ‘도전!!’하기로 했다.

다시 첫 번째 방법을 시도하기로.


최후의 방법


남편은 어느 날 진료실에서 선생님에게 “캡슐약으로 지어주세요.”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속으로 ’왜 저래..’라고 했다.


도대체 어떻게 먹이려는 건지..

의사 선생님마저도 여전히 진료날 오전에 약을 먹여달라고 부탁드리면 많이 힘들어하시는데...


그러나 남편은 무언가 결심한 듯했다.


평생 먹일 거라면, 약 그대로 정량을 먹이는 게 맞으니까.


그리고 며칠 후, ‘필건’으로 약먹이기가 시작되었다.


처음엔 우리 집에 ‘고라니’가 온 줄 알았다.


남편이 다리 사이에 나롱이를 감싸 안고, 내가 나롱이 뒤통수에 베개를 받치고, 입을 벌리도록 윗턱과 아래턱 사이 틈에 손가락을 넣어 힘을 주었다.


그때였다.


“나 죽는다!!!!!” 하며 고라니 울음소리가 울려 퍼진 게.


“으아아아아아아아악 으에에에엑” 표현도 안된다.


약 먹는다고오???????


하지만 처음에 포기했던 우리가 아니었다.

이제는 진짜 정량 먹어야 하기에, 무서워도, 두려워도, 비명소리에 마음이 아파도, 먹여야 했다.


그리고, 성공.

30분 만에 겨우 성공한 첫 시도.


‘동물 학대’로 신고라도 당할까 봐 겁이날 정도로 나롱이는 매 번 그렇게 비명을 질러댔고, 우리는 꾸준히 시도했다.


그 결과, 비명 소리는 점점 줄어들었고, ‘으르렁’하는 약간 불쾌하다는 의사 표현만 했다.


그리고 입은 자연스레 벌렸고, 약을 먹인 후 잘 넘어갔나 확인하기 위해 남편이 “확인!!”이라고 하면 입을 벌려 확인도 시켜줬다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엽던지.


지금은 ‘으르렁’도 없이 ”약 먹자~“하면 세상 느린 걸음이지만 스스로 오고, 입도 바로 벌리며, ‘1분 컷’으로 끝난다.


약 먹자 하면 세상 느린걸음의 안나롱.


심지어 남편만 가능했던 ‘약 먹이기’가 나도 가능해졌다.


누나는 자기가 난리 치면 포기할 거란 걸 알아서 반항이 심해 못 먹였는데, 지금은 누나에게도 입을 벌려준다.


그렇게 [나롱이에게 약먹이기 장기 프로젝트]는 장장 6개월 만에 해결되어, 곧 10개월 차가 되는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이제는 아침약도 병원에서 내가 먹이고 진료실에 들여보낸다.

여전히 병원에서는 개진상이기 때문에 선생님이 보시고 “정말 잘 먹이시네요~”하고 감탄하실 정도로.


덕분에 보호자인 내 어깨도 뿜뿜 한다.




나롱이가 약을 정량 먹어서일까?

중간에 고비가 한 번 있긴 했지만, 여전히 잘 지내고 있다.


나롱이는 스스로 약을 먹을 수도, 치료를 받을 수도 없는 반려동물이기에 우리가 포기했다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노력하지 않았다면, 남편의 결심이 없었다면 여전히 우리 옆에 있었을지 의문이다.


엄마는 여전히 나롱이를 볼 때마다 “엄마아빠랑 계속 살았으면 진작에 강아지별에 갔을 텐데.. 누나 잘 만나서 제 명대로 사네~”라고 이야기한다.


아빠는 나중에 강아지별에 가면 “나롱이가 누나 잘 되게 해 줘~”라며 나롱이가 산 건 다 내 덕이라고 한다.


맞는 말인 것 같다.


평생 가져가야 하는 병이고, 치료가 되는 것도, 더 나아지는 것도 없는 상황에 일주일에 한 번씩 꾸준히 진료비를 내며, 약을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먹이는 보호자가 몇이나 될까?


지금 이 힘든 일을 스스로 하고 있는 나도 시도 때도 없이 ‘현타’가 온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대단하다.”라고 하는 말이 “그렇게까지 해야 되나?”라는 소리로 들린 지도 오래다.


하지만, 내 동생이기에, 16년째 같이 살고 있는 가족이기에 포기할 수가 없다.


나롱이도 그 마음을 알기에, 우리가 애쓴다는 걸 알기에, 온몸을 비틀며 거부하던 약을 이제는 아무 저항 없이 스스로 받아먹는 게 아닐까?


수명을 억지로 연장할 생각은 없다.


다만, 나롱이가 ‘삶의 의지’가 있는 한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있다면 해 줄 것이다.


나롱이가 떠난 후,


후회가 내 삶을 갉아먹지 않도록.


약을 보여주면, 약간의 반항을 하고.
입을 벌려 필건으로 약을 쏘면,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평온.


이제는 가루약을 캡슐약으로 직접 만들어야하는 나롱이 누나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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