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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미쌤 Sep 24. 2024

새벽 3시의 '견기척'

심장병 노견 보호자의 귀는 소머즈

2024년 6월 14일 새벽 3시가 조금 안 된 시간이었다.


평소 퇴근이 늦다 보니, 새벽 1시가 넘어 잠이 드는 편인데, 그날도 어김없이 그 시간즈음 침대에 누워 태블릿으로 영화를 보다 잠이 들었다.


나롱이는 반드시 누나 옆에서 잠을 청하는데, 그날도 침대에 올라와 누나 옆 바디필로우 안 쪽으로 쏙 들어가서 편안한 자세를 잡는 걸 확인했다.


그러고 나서 얼마쯤 되었을까.


'파닥파닥 퍼더덕 퍼더덕' 소리가 내 잠을 깨웠다.

어렸을 때부터, "쟤는 잘 때 업어가도 모르겠어~"라는 소리를 듣고 자랐는데, 나롱이 보호자가 되니 귀가 '소머즈'가 되었나 보다.

베개에 부딪히는 작은 소리에도 정신이 번쩍 들었으니..


나는 바로 나롱이가 마지막에 잠들기 위해 자세를 잡았던 바디필로우 쪽을 바라보았다.


나롱이의 발이 버둥거리고 있었는데, 잠결에 '바디필로우를 넘어 화장실을 가려다 다리에 힘이 풀려 버둥거리나?'라는 가벼운 생각으로 "나롱아 왜 그래~"하며 다가갔다.


그 순간, 내 눈에 보인건 가늘게 뜬 눈꺼풀 사이로 흰자가 뒤집어져 있는 나롱이의 눈과 '게거품'을 물며 경직된 나롱이의 입과 턱, 그리고 전신이 뻣뻣하게 굳어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며, 허공에 사정없이 패들링을 하고 있는 나롱이였다.




"오빠!!! 오빠ㅏㅏㅏㅏㅏㅏㅏ악!!!"


나의 고함소리에 마침 잠을 자지 못하고 거실에서 티브이를 보던 남편은 쏜살같이 방으로 달려왔고, 처음 보는 나롱이의 모습에 우리 둘은 나롱이의 경직된 팔과 다리를 주무르며, "나롱아!!! 나롱아!!!!!" 나롱이의 이름만 거듭 불러댔다.


발작이 거듭될수록, 경직된 몸에는 힘이 더 들어가는 듯했으나 실제로 몸의 힘은 풀리는 건지 소변이 줄줄 나왔고, 나는 이대로 나롱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널 것만 같아 너무 무서웠다.


순간, '동영상 촬영을 해놔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지만, 시간이 지체되면 잘못될까 두려워 병원에 먼저 전화를 걸었다.

(나롱이 병원은 24시간 응급센터가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나롱이 보호잔데요. 나롱이가 새벽에 갑자기 발작을 일으켜서 지금 입에 게거품을 물고, 경직된 상태로 대략 3분 정도 지난 것 같아요. 차츰 발작 증상이 가라앉아 지금 눈은 떴는데, 여기가 어디인지도 모르는 것처럼 멍하고 기운이 없어 앉지도 못하는 상황입니다. 바로 응급실로 내원해야 하나요?"


"음.. 발작인지 기절인지 정확하게 알 수가 없어서 바로 내원해야 하는 상황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우선 같은 증상이 나타나지 않으면 아침에 진료시작했을 때 내원하셔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급박한 나와 달리, 응급센터에 근무하시는 의사 선생님은 별일 아니라는 듯 이야기하셨다.


정말 별일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이 전부터 나에게 신뢰를 주던 분은 아니라 썩 믿음이 가진 않았기에 통화를 끊고 비슷한 증상을 검색해 어떻게 대처할지 고민을 한 끝에, 마침 그날 오전 11시에 진료 예약이 되어있던 차여서 담당선생님을 만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그때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만을 바랬다.


다행히 남편이 나롱이를 계속 주물러주고, 이름을 불러준 덕분인지 눈을 뜨고도 본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모른다는 얼굴로 멍했던 나롱이가 점점 괜찮아졌고, 다리에 힘이 풀려 움직이진 않았지만 1~2시간 뒤에는 잠이 들어 나도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옆을 지켰다.


침대는 나롱이의 침과 소변으로 난리가 났지만, 대수롭지 않았다.


나롱이가 지금 내 옆에서 숨 쉬고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발작 혹은 기절 후, 깨어나 어리둥절한 안나롱.




아침 11시.

병원에 도착한 나는 지난 새벽에 어떤 증상이 있었는지 담당선생님에게 설명을 했다.


증상을 들었을 때, 발작인지 기절인지 애매한 부분이 있어, '동영상이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아! 어젯밤에 전화를 하지 말고, 차라리 동영상을 찍을걸..'이라고 속으로 후회했다.


동영상을 찍으려다 전화를 먼저 했고, 전화통화에서 별다른 이야기를 듣지 못했기 때문에 더더욱 후회가 되었다.


우선, 'MRI'나 'CT'를 찍어서 '뇌'나 '신경'의 문제인지 확인해봐야 하는데, 나롱이는 '마취가 불가'하기 때문에 '검사를 할 수가 없다'라고 했다.


신경의 문제더라도 지금 나롱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검사는 없다는 게 결론이었고, 다시 또 이런 증상이 나타나면 '동영상'을 촬영해서 정확하게 '발작'인지 '기절'인지를 아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떨리는 증상은 현재 나롱이의 상태에서는 '전해질 부족'이 원인일 수도 있으니, 피검사를 통해 '전해질 수치'를 확인해 보자고 했다.

(기존에도 나롱이는 전해질 부족이었기 때문에 '레날 K' 시럽약을 꾸준히 먹이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수치가 낮기는 하지만 위험할 정도는 아니라고 하셨고, 우선 '발작' 혹은 '기절' 증상이 있었고, 이러한 증상이 다시는 나타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므로, 부작용이 거의 없는 '항 발작제'를 약에 조금 추가해서 먹여보자고 이야기하셨다.


이제 점점 나롱이에게 해줄 수 있는 부분이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지만, 그래도 더 이상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게 중요하니, 부작용이 거의 없다는 말씀에 약을 먹여보자는 말씀에 동의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다행히 나롱이에게 '발작' 혹은 '기절' 증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노견이다 보니 근육이 점점 빠져서인지, 전해질 부족인지, 다리나 온몸을 사시나무 떨 듯 떨 때는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인 듯하다.


최근에 '신장 수치'가 올라 전해질 수치에 도움을 주는 '레날 K'도 더 이상 먹지 못해 물에 '이온 음료'를 추가해 마시는 걸로 대체하고 있기에 전해질 수치가 정상이 되는 건 불가할 것 같다.


'신장 수치'가 오른 이후, 신부전 증상에 필요한 '레나메진'(제일 거대한 캡슐약)이라는 '활성탄'도 추가 됐기에, 약을 먹이는 시간도 더 늘어났다.

(레나메진은 심장약과 1시간 텀을 두고 먹여야 합니다.)


그 좋아하는 고기 간식도 줄여서 식이 조절도 하니, 없던 살은 더 빠졌다.

7.2kg까지 유지되던 체중이, 지금은 6.5~6.7kg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심장병으로 아프기 전, 건강할 때 나롱이는 13kg이었습니다.)


그래도 고기 간식은 끊더라도, 고기가 없으면 사료를 먹지 않기에 '닭가슴살, 애호박, 당근'으로 '닭가슴살 볶음밥'을 만들어 최대한 건강하게 사료에 섞어서 주고 있다.

습식사료로 매 끼니를 강급하기에는 어려움이 있기에..


그 마음을 아는지, 누나의 비법요리만 섞으면 사료를 꽤 많이 섞어도 한 그릇 뚝딱! 해치운다.

냄새를 맡자마자, 바닥에 미끄러지면서까지 밥 먹는 자리로 달려가는 모습에 뿌듯하면서도, 안쓰럽다.


다행히, 신장 수치에 도움이 되는 약 처방과 식이 조절로, 기존 수치보다 30 이상 올랐던 신장수치는 다시 20 정도 떨어졌고, 그 언저리에서 유지 중이다.

(나롱이는 이미 정상 범위를 벗어났기에 어느 정도가 정상인지 기억이 나질 않아 오르고 내린 수치로 말씀드립니다.)




그날 이후, 3개월이 지났고, 아직 발작 혹은 기절 증상은 없지만, 여전히 두렵다.


그날 본 나롱이의 모습은 너무 고통스러워 보였기에, 그렇게 힘들어하는 모습으로 '무지개다리를 건넌다'는 생각을 하니 순간순간 마음이 무너졌다.



예전에 남편이 오열을 한 일이 있었다.


담당선생님에게 "나롱이가 만약 사망하게 된다면, 편하게 가는 건가요?"라는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남편 생각에는 '심장이 점점 느리게 뛰고, 그러다 보면 자는 사이 편하게 가지 않을까.'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 질문에 선생님은 단호하게 "아닙니다. 고통스러울 거예요. 편하게 잠들 듯이 가지는 않습니다."라고 답변하셨다.


그 말에 남편은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더니, 진료실 밖을 나와서는 한참을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다.


몇 개월 함께 하지도 않았는데, 나롱이가 고통스러울 거라는 그 말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남편을 보며, 애써 꾹 참고 있던 나의 마음도 무너졌었다.



선생님의 그 말씀이 이제는 현실이라는 걸 점점 깨닫고 있어서일까?


'강아지 별'에 갈 거란 생각을 하면서도, 그날이 안오길 바란다.

병이 낫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낫길 바란다.


노견이란 걸 알면서도, 아직도 아기 같은 얼굴을 보면 '기적'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픈 반려견을 키우시는, 노견을 키우시는 모든 보호자님들의 마음이 나와 같지 않을까?


일어날 일인지 알면서도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그 마음.

우리와 16년이나 함께 한 가족이기에 차마 포기할 수 없는 그 마음.

하지만, 우리도 우리의 삶이 있기에.. 최선은 다한다고 하지만, 최선을 다할 수 없는 날도 있기에 후회가 되는 그 마음.


그래도 우리 반려견이 나와 함께 했던, 우리 가족으로 살았던 이 시간들이 '행복했다'라고 기억이 되길 바라며, 오늘도 사랑해 주고, 아껴주려고 노력한다.


그 노력이 빛을 발한다면,

삶이 다하는 그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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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누나의 품에서 편안하게 눈을 감길 바라며.


사랑해 안나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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