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롱이 vs 복수. 이름하여 '복수' 혈전.
2023년 11월 말.
나롱이의 '흉수'가 '유미흉'으로 바뀌었고, 자주 병원에 와서 흉수를 제거하기엔 나롱이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었기에 최대한 집에서 지낼 수 있도록 [흉관포트삽입술]을 진행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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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입술 이후, 집에서 1번의 흉수 제거를 하였는데 다행히 뽀얀 우윳빛에서 투명 분홍빛에 가까워졌고, 그때 함께 처방받은 '루틴(Rutin)*'이라는 약도 하루 3회 복용했기에 1+1의 효과를 본 것 같았다.
*처방약 이름을 잊어버렸는데, 갑작스러운 도움 요청에도 흔쾌히 답변해 주신 '견바이처'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
사실, 이미 아침/저녁 심장약을 먹여야 했고, 1시간에 텀을 두고 식사를 강급해야 했기에 여기에 하루 3회 루틴 약이 추가된 건 나에겐 정말 가혹한 일이었다.
물론, 이 약을 먹어야 하는 나롱이에게는 더욱더 가혹한 일이었겠지만..
심장약은 12시간 텀, 루틴 약은 6시간 텀을 두고 먹여야 했는데, 심장약과 루틴약 사이에도 1시간의 텀을 두고 먹여야 했기에 여기에 강급하는 시간까지 더하면 아침/저녁은 한 번에 3시간이 필요했다.
그래도 앞뒤로 2시간까지는 괜찮다고 하여 최대한 늦게 출근하고, 최대한 일찍 퇴근해서 시간을 지켜 먹이려고 노력했다.
덕분인지, '흉관포트삽입술' 이후, '루틴(Rutin)' 약을 먹은 이후, 집에서의 '단 1번의 흉수천자'만 있었을 뿐, 흉수는 더 이상 생기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덧 2024년.
3개월의 시한부 선고 날을 넘기고 새 해를 맞이한 나롱이는 이제 좋아했던 간식은 스스로 먹기 시작했고, 강급 덕분에 7kg 초중반의 체중은 유지할 수 있었다.
(소원을 들어준 '해님'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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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기 전에 평균 13kg의 체중이었던 것에 비하면 매우 마른 상태였지만, 더 이상 빠지지 않고 수술 전보다 단 400~500g이라도 찐 것에 만족했다.
그리고 계속된 주 1회 정기 진료.
이제는 약만 잘 먹이면서 이대로 유지하면 나롱이가 삶을 다하는 날까지 호흡의 불편함 없이 편하게 살다 갈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하늘도 무심하시지.
'흉수'가 가니, '복수'가 왔다.
안 그래도 배가 좀 빵빵하다 생각했는데, 그냥 살이 좀 붙으니 그런가 했다.
그런데 그게 '복수' 였다니..
자세히 설명을 해보자면, 심장이 제 기능을 해서 혈류가 원활하게 돌아야 하는데, 판막이상으로 정상적으로 이동하지 못하고 역류한 혈액에 의해 심장이 비대해지고, 더 진행되면 고여 있던 혈액이 폐로 역류하면서 폐수종이 생겨 위험한 상황이 오는데.. 처음에 이 증상이 나롱이를 무지개다리까지 다녀오게 한 것이었고, 그 이후 흉수가 차긴 했지만 잘 극복하여 지금의 나롱이가 존재하는 것.
그런데 이번에는 심장으로 유입되는 혈액순환에 문제가 발생해서 간이나 복강에 분포된 정맥혈관에 영향이 가해져 혈관에서 수분이 빠져나와 복수가 차는 것이라고 했다.
무슨 대대로 '수'자 돌림인 것도 아니고, '흉수' 다음 '복수'라니.
이왕 '수'자 돌림이라면, '장수'도 오길.
아무튼 그놈을 알게 된 첫날, 그놈은 나롱이 뱃속에서 '500ml 이상' 뽑혀 나왔다.
그리고 시작되었다.
이름 하여,
'복수혈전'
일주일에 한 번씩 병원에 가서 평균 800ml의 복수를 뽑았고, 최대 1L의 복수를 뽑는 날도 많았다.
뽑고 온 날에는 허리가 한 줌도 안되게 홀쭉해졌다가, 3일 정도 지나면 배가 점점 빵빵해지는 게 보였으며, 병원 가는 날이 되면 '물이 가득 찬 풍선'처럼 만졌을 때 땅땅한 빵빵함이 느껴졌고, 내가 힘이 라도 준다면 '펑'하고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불행 중 다행인지, 복수가 차면 배가 땅에 끌리는 아이들도 있다고 하던데, 나롱이는 긴 다리 덕분인지 그런 일은 없었다.
이렇게 매주 나롱이는 복수와의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었다.
몇 주 정도 반복되는 상황에 남편과 나는 복수도 혹시 [포트 삽입술]이 있는지 여쭤보았다.
혹시라도 흉수처럼 집에서 제거해 줄 수 있다면 나롱이가 매주 먼 길을 왔다 갔다 힘들지는 않을 테니까.
그런데, 그런 건 없단다.
그냥 복수가 차지 않길 바래야 했고, 복수가 차면 나롱이의 생활이 불편하고 위험해질 수 있기에 매주 와서 뽑아주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물론, 처방 약을 잘 먹이는 것도 내가 할 일이었다.
1월에 시작된 '복수' 제거는 일주, 이주, 한 달, 두 달 이어졌고, '흉수'처럼 사라지는 날이 올 거라는 나의 희망은 바사삭 재가 된 지 오래다.
9월인 지금까지 여전히,
'복수'는 나(롱이)의 것이다.
그래도 많이 불편할 텐데, 힘들 텐데도 자기만의 편한 자세를 찾아 이렇게 누웠다가 저렇게 누웠다가 요리조리 눕는 나롱이를 보면 안쓰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다.
의사 선생님도 나롱이 스스로 편한 자세를 찾은 것 같다고 하시는 걸로 봐서 참 적응력 하나는 뛰어난 것 같다.
밥도 싫어, 약도 싫어, 지랄 맞다가도 이럴 때 보면 참 기특하다.
아마도 '연륜'이겠지?
(사람 나이로는 103살이라니까.)
어느덧, 주 1회 복수를 제거한 지도 9개월 차가 되었다.
작년 9월 '3개월 정도 남았다'는 예상을 깨고, 2024년을 맞이한 나롱이.
'복수'가 차기 시작하면서 내가 봐도 이제 더 이상 나아지는 일은 없을 것 같았는데, 자그마치 9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씩씩하게 잘 살아가고 있다.
살아가면서 '운'이라는 것은 믿었지만, '기적'이라는 것은 믿지 않았었다.
아무래도 '기적'을 경험할 일이 내 주변에서 일어나지 않았기에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 나롱이가 보내고 있는 이 일상이 어쩌면 '기적'이지 않을까?
물론, 좋은 의사 선생님을 만났고, 나롱이를 포기하지 않은 누나와 가족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무지개다리 문턱에서 삶의 의지를 잃었던 나롱이가 누구보다 '삶의 의지'를 가질 수 있게 된 지금은 나에겐 '기적'인 것만 같다.
그러므로, '복수'혈전(나롱이와 복수의 싸움)은 아무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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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롱이의 승!
[에필로그]
처음 나롱이를 차에 태우고 병원에 가던 날.
하늘에 기도했었다.
'내가 몇 년 덜 살아도 되니, 제발 나롱이 한 번만 살려달라고'
그 기도 덕분일까?
나롱이는 '회춘'을 하고 있는데, 나는 점점 더 여기저기가 아프다.ㅎㅎ
아픈 강아지에게 회춘이 무슨 말이냐 하시겠지만, 나롱이는 5개월 넘게 수술 부위를 밀었던 털이 하나도 자라지 않았었고, 노견이다 보니 의사 선생님도 "안 자란다고 보시면 됩니다."라고 하셨는데, 지금 다시 털이 아주 풍~성하게 자랐다.
이것이 회춘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누나는 흰머리가 점점 많아지고 있는데, 부럽다 나롱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