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함께, '합동 생일파티'. 그리고 찾아온 새로운 질병.
2024년 10월 3일.
나롱이의 첫 생일이다.
15살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퇴원한 지 딱 1년 되는 날.
16년 만에 처음으로 맞는 생일이다.
생일 이틀 전, 글을 올리며 '무조건 생일 파티를 할 거라는 생각을 하기가 무섭다.'라고 했다.
'이틀 안에 별 일 있겠어?'라는 생각이 나에게 칼이 되어 꽂힐까 봐..
https://brunch.co.kr/@anmissam/72
그 글을 쓴 것이 복선이 되었을까?
생일을 맞기 하루 전부터 나롱이가 유독 기운이 없었다.
잠시라도 산책을 하면 좀 나아질까 싶어 출근 전 잠깐 10분 정도 산책을 했는데,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에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출근 전, 루틴대로 고기를 섞어 사료를 주고 고구마간식을 여기저기 숨겨두었는데, 간식을 찾겠다고 이곳 저곳을 뒤적이며 '노즈워크'를 하는 걸 보니 더욱더 안심이 되었다.
그렇게 조금은 불안하지만, 별 일 없는 하루를 보내고..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나롱이 생일'이 되었다.
이번에는 신기하게도 엄마의 음력 생일과 딱! 맞아떨어져 같이 생일 파티를 하겠다고, 미리 '나롱이 생일 케이크'도 주문해 놓고, 점심때쯤 '엄마 케이크'를 사서 친정으로 갈 예정이었다.
친정으로 출발하기 전, 나롱이를 보니 꼬질꼬질해도 이건 너무 꼬질한 상태라 '발이랑 얼굴이라도 부분세안을 하고 출발하자' 싶었다.
(나롱이는 흥분을 하면 위험하기에 목욕을 자주 시키질 못해서 좀 꼬질하다.)
욕실로 나롱이를 불러서 발에 물을 적시고, 한 발 한 발 발샴푸를 묻히는데..
'엥??? 어?? 잉????'
오른쪽 뒷 발이 퉁퉁했다.
다른 세 발은 멀쩡한데, 오른쪽 뒷 발만 2배 확대된 것처럼 관절 아래부터 발까지 퉁퉁 부어있었다.
만져보니, 다리뼈를 젤리로 한번 감싼듯한 느낌(?)이 들었고, 사람으로 보면 '부종'같은 느낌이었다.
걷는 것도 멀쩡했고, 다리를 만졌을 때 아파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이게 뭔 일?'인가 싶었다.
바로 병원에 전화를 했고, 담당선생님은 휴무일이라 안 계셨지만 왜 이렇게 부은 건지는 알아야 했기에, 엄마에게는 전화로 '이만저만해서 병원을 먼저 가야 할 것 같다고. 미안하다고.'하고 병원으로 출발했다.
그렇게 '엄마와 나롱이의 합동 생일 파티'는 첫 단추부터 잘 못 끼워지기 시작했다.
김포에서 반포까지 1시간 정도 걸려 병원에 도착했다.
가는 내내 속으로, '생일파티는 무슨..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맨날 나롱이랑 뭐만 하려고 하면 이 난리네..' 하며 속상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도착하니 이미 오후 12시였고, 원인을 찾으려면 여러 검사가 필요했기에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미지수였다.
부모님은 기다리다가 먼저 두 분이 식사를 하시겠다고 했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아무리 나롱이가 우리의 소중한 가족이지만, 엄마 생일날 강아지를 우선시하는 딸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 수 있었기에..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나롱이를 맡기고 오후에 찾으러 오겠다고 하려던 찰나, 선생님이 진료실로 부르셨다.
"엑스레이 상으로 보면, 골절도 없고 아무 문제가 없는데.. 보시면 인대 조직 쪽이 많이 부어있어요. 원래 투명하게 찍혀야 하는데 하얀 부분 보이시죠? 이 부분이 다 부어있는 건데.. 알부민 수치가 떨어져 그럴 수도 있고, 보통 심장 종양이 있던 환자는 울혈이 생길 수 있는데 나롱이는 그런 건 아닌 것 같아요.
우선 내일 담당선생님 진료가 있으시니까, 순환이 될 수 있는 약과 소염제를 처방해 드릴 테니 이틀 먹이시고, 마사지와 온찜질을 해주세요. 지금 주사 한 대 맞고, 귀가하시면 됩니다."
멀쩡히 잘 걸었기에 어디가 부러진 건 아닐 거라 예상했지만, 원인을 알 수 없는 상황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진료를 마친 후, 나롱이를 데리고 부랴부랴 친정으로 향했다.
아빠는 기다리다 못해 집에서 식사를 하셨고, 엄마는 우리와 함께 나가서 외식을 한다고 했다.
급하게 나오느라 나롱이 고기를 안 챙겨 온 나는, 나롱이에게 밥은 주고 가야 할 것 같아 준비해 온 '케이크'라도 사료에 섞어 먹일 생각에 '나롱이 생일'부터 챙겼다.
케이크를 자르기 전에, 축하와 함께 사진은 한방 찍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를 본 아빠는 "강아지 케이크만 챙기고, 엄마 케이크는 없냐~"고 했지만, 나롱이가 퇴원한 지 1년 된 날 기념이라고 하니 감회가 새로운 듯한 눈빛이었다.
문제는.. 초도 안 챙겨 오고, 고깔모자도 없었다는 게 문제.
내 예상과는 너무 다른 축하였다.
'가족의 따뜻한 박수와 함께 나름 성대한 축하를 해주겠노라' 다짐했건만.. 그냥 '케이크 인증샷' 같은 사진만 남겨졌다.
본인 케이크에는 왜인지 관심이 없는 안나롱은 시큰둥하게 케이크 앞에 앉아 카메라 시선을 요리조리 피하기만 했다.
그렇게 나롱이 생일 축하는 매우 조촐하게 끝이 났고, 다행히 사료에 섞어준 케이크는 맛이 있었는지 야무지게 먹어치웠다.
사료는 '퉤퉤' 뱉는 4가지 없는 스킬과 함께..
나롱이 생일은 갑작스러운 병원 방문으로 인해 매우 조촐하게 넘어갔지만, 그래도 엄마와 함께 오랜만에 밖에 나가서 맛있는 음식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쇼핑도 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아빠와 사위, 나롱이와 함께 '엄마 케이크'에 초를 불며, '합동 생일 파티'를 마무리했다.
다행히 그날 저녁, 다리도 많이 가라앉았고, 집으로 돌아와 온찜질과 함께 나롱이의 다리를 연신 주물러 주며 다시는 붓지 않길 바랬다.
다음 날 진료에서도 담당선생님은 약을 먹고 호전이 된 것을 보시고, 벌레에 물려도 처음엔 모르다가 점점 다리가 부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고 하셨고, 선생님도 나도 '별 일이 아니었다'라고 생각하고 넘어갔다.
그리고, 그다음 날. 토요일 아침.
나롱이의 다리는 두 배를 넘어, 세 배가 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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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을 잘 버텼다고 시샘한걸까?
1년이 지나자, 또 하나의 새로운 질병이 나롱이를 찾아왔다.
과연, 앞으로 나롱이가 잘 버틸 수 있을지.. 막막하지만, 또 한 번의 기적을 바래본다.
나롱이가 심장병과 싸운지도..
벌써, 1년이니까.
[에필로그1]
나롱이에게 성대한 축하를 해주지 못한 게 마음에 걸린 누나는, 그림으로나마 나롱이에게 축하를 전하기로 했어요.^^
고깔모자 쓴 나롱이 어떤가요?~
나름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 말이죠 :)
내년 생일은 정말 안 올지도 모르기에, 성대한 생일 파티를 해주고 싶었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아 참 속상합니다.
그래도, 또 모르잖아요?
지금 1년도 기적이었는데, 더 큰 기적이 올지도요.^^
여러분도 함께 기도해주시겠어요?
안나롱. 누나 옆에 있어줘서 고마워.
내년 생일도 꼭 함께 하자.
생일 축하해.
그리고, 사랑해.
[에필로그2]
나롱이는 다행히 온찜질이 좋은지, 해주는데로 가만히 있고, 마사지도 해주는데로 몸을 맡기고 있습니다.
온찜질하다가 노곤~노곤~해져서 조는 나롱이 사진이 너무 귀여워, 보너스컷!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