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미쌤 Oct 26. 2024

아이를 혼내다, 함께 울었습니다.

결국 눌려 버린 눈물 버튼.

오늘 출근길이 유난히 힘들었습니다.


지난주 토요일.

나롱이가 강아지별로 여행을 떠난 그 시간이 수업 시작 시간이었기 때문이었죠.


이번 주 내내 나롱이를 찾아가며, 슬픔을 덜어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막상 일주일 전 그 시간이 다가오니 슬픔이 조절되지 않더라구요.




매일 그랬듯이 오늘도 출근 전, 아침 일찍 나롱이에게 다녀오면 괜찮을 줄 알고,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나롱이를 보고 왔어요.


그런데 오늘은 더 힘이 들더군요.


나롱이를 보고, 같이 출근하는 남편을 태우러 다시 집으로 돌아와 출근 준비 중인 남편을 기다렸어요.


문득 나롱이의 사진과 보관해 둔 옷이 보였고, 그 앞에서 옷을 붙잡고 하염없이 숨죽여 울었습니다.


아직 남아있는 나롱이의 냄새가 저를 위로해 줬지만, 더 그립고, 더 보고 싶어 져 심장이 멎는 줄 알았어요.


그 모습을 본 남편이 안아주고, 위로해 주고, 제가 마음을 추스를 때까지 아무 말없이 기다려줬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제 할 일이 있기에 발걸음을 돌렸고, 그렇게 오늘 하루도 시작 됐어요.




나롱이를 떠나보낸 후, 휴강을 했었기에 보강들이 많았습니다.


어제도 보강이 있었는데, 한 친구가 시간 약속을 두 번이나 지키지 않아 보강을 취소하고, 오늘까지 과제로 해서 1시간 일찍 등원하기로 했었어요.


약속은 항상 지켜야 한다고 강조하는 쌤이기에 평소 정했던 규칙들을 어기는 것에 대한 예외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2시에 등원해 과제를 제출했는데, 채점을 하던 중 의심스러운 부분들이 보였어요.


어려운 단계의 문제를 답지를 보고 푼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평소에도 버거움을 느끼면 답지를 보던 친구였기에, 설마 하는 마음에 상담실로 데리고 갔어요.


혼낼 기운도, 왜 이랬는지 화낼 기운도 없던 저는 "사실대로 이야기만 해줄래?"하고 말을 꺼냈죠.


처음에는 안 봤다던 친구가, 다시 문제를 풀게 하니 못 풀어냈고, 왜 못 푸냐고 하니 다른 교재를 참고했다고 했고, 그 교재를 가져와서 같은 문제가 없다고 하니, 그제야 답지를 봤다고 사실대로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 아이는 수학을 어려워하지만 그래도 열심히 공부하려는 마음이 있는 친구기에 제가 많이 이뻐하는 친구예요.


그래서 그 친구에게 맞춰서 가르쳐줄 수 있도록 개별진도반으로 이동을 한 상황이었고, 잘 따라와 줘서 대견하던 참이었기에 답지를 본 걸 안 그 순간, 너무 속이 상했습니다.


그 친구에게 "수학을 한 두 문제 더 맞는 건 인생에서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지금 답지를 보는 습관이 지속되면, 너의 인생에서도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인내심과 끈기로 해결방법을 찾기보다는 남에게 의존하고 회피하는 사람이 될 거야. 그렇기 때문에 이런 선택을 하면 안 되는 거야."라고 이야기했어요.


지금은 혼내는 것보다는 제 진심을 전달하는 게 이 아이의 마음에 더 와닿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이 상황을 학부모님에게 전화를 드리고, 오늘은 집에 보내겠다고 했어요.


"주말 동안 잘 생각해서, 조금은 느리지만 저와 함께 진실되게 공부할 마음이 있으면 화요일 5시에 등원을 하고, 더 이상 공부할 마음이 없으면 여기서 끝내겠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저는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이런 상황이 반복되기에 단호하게 이야기를 하고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는 게 좋을 것 같아 아이에게도 이렇게 이야기하고 집에 보낼 테니 어머님께서 주말 동안 잘 이야기하셔서 화요일에 꼭 보내주시길 부탁드립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상담실로 돌아와 아이에게 제 진심을 이야기했어요.


"선생님은 지금 너를 귀가시킬 건데, 너를 포기하는 건 아니야.

사실 니가 답지를 본 것도, 어제 보강 약속을 지키지 못한데 대한 미안함에 과제도 다 못해가면 선생님이 더 속상할까 봐 약속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선택한 방법이라고 생각해.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해.


그런데, 내가 그 마음을 이해한다고 해서, 고마워할 순 없어. 왜냐면 선생님은 너를 바른 길로 이끌어줘야 하는 사람이니까 그래.

그냥 채점하고, 틀리면 세모하고, 모르는 거 다 알려주고 시간만 때우는 선생님은 되고 싶지 않아.


선생님 진심 알고, 화요일에 꼭 등원했으면 좋겠어."


이 말을 하니, 아이도 진심을 아는지 울고, 저도 저를 속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 이런 선택을 한 아이의 마음에 동화되어 꾹꾹 눌러 담은 제 슬픈 마음의 버튼이 꾹 눌러져 버렸어요.


주책맞게 아이 앞에서 같이 울고 말았습니다.


평소에 제가 우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을 텐데, 그 아이도 적잖이 당황했을 거예요.


아이들은 제가 F임에도 T라고 생각할 정도로, 공감 1도 없는 엄한 호랑이쌤으로 생각을 하는데 말이죠..


이 눈물은..

나롱이에 대한 슬픔 감정과 거짓말을 한 아이에 대한 속상함.

그 거짓말이 어제 저와 약속을 지키지 못해 미안해서 한 아이의 선택이라는 걸 알기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터져 나온 것 같습니다.




오늘 눈물버튼이 눌려 잠깐 눈물을 흘린 것뿐인데도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습니다.


감정은 표출해야 되나 봐요.


그런데 저는 어릴 때부터 힘든 일은 스스로 삭이던 버릇 때문인지, 누군가에게 표현하는 게 참 어렵습니다.


그래도 남편이 있어, 조금은 덜어내고 있고, 같이 공감해 주시고 응원해 주시는 독자님들이 있어 매일 힘을 얻습니다.


오늘도 힘내겠습니다.


여러분도 오늘 하루, 행복하세요.


그리고, 혹시 속상한 일이 있으시다면 표출하시고, 마음껏 우십시오.


저도 그렇게 이겨내겠습니다.


강급하는 사료 코에 잔뜩 묻히는 귀여운 나롱이 보고가세요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