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늑대는 그들 모두가 인간의 달콤한 꾀임에 속아넘어가고 있다고 믿었다. 늑대의 생각은 분명했다. 진정한 친구나 가족이라면 좋은 때뿐 아니라 상황이 나쁜 때에도 곁을 지켜야 하는데, 인간은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늑대는 인간이 지금은 여유가 있어 동물들과 함께 웃기도 하고 위로도 해 주지만, 고난이 닥치면 언제든 등을 돌릴 존재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농가 바깥에서 인간의 행동을 지켜보는 데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었고, 이를 깨달은 늑대는 다른 전략을 세웠다. 무리 중 가장 충직하고 침착한 몇 마리를 골라, 인간의 농가 속으로 직접 들여보내기로 한 것이다.
늑대의 우두머리는 비밀 임무를 맡은 이들을 떠나보내며 단호하게 말했다.
“오래전 검치호랑이가 말했듯이, 인간은 상황이 달라지면 언제든 자기 길을 가는 법이다. 잊지 마라. 그리고 반드시, 인간의 진짜 얼굴을 밝혀내 돌아오거라.”
늑대들이 인간의 집에 잠입한 지 약 일 년이 지났을 무렵,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인간들의 농장에 전염병이 퍼진 것이다.
병이 번지자 인간들은 죽은 가축은 물론 병든 짐승들까지 늪으로 끌고 가 그들을 그곳에 버려둔 채, 자신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병의 확산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광경은 이유를 막론하고 동물들에게 깊은 실망과 두려움을 안겨주었다. 늪에 버려진 동물들은 치료받는 이 하나 없었고, 그나마 병을 이긴 동물들은 굶주림 속에서 하나둘 쓰러져 갔다.
늑대 무리가 그 소식을 듣고 달려갔을 때는 이미 늦었다. 수많은 가축들이 죽어 있었고, 늪은 시체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 사건은 인간을 오랫동안 의심해온 늑대 무리와 흰뿔사슴에게 마침내 ‘인간을 심판할 명분’이 되어 주었다.
특히 인간 농가에 파견되었던 동료들이 모두 희생되었다고 믿은 늑대들은 복수를 맹세했다.
그리고 보름달이 떠오른 밤, 수천 마리의 늑대들이 함께 울부짖으며 인간의 농가 마을을 완전히 포위했다. 하지만 언덕 위에 있던 무리가 공격을 시작했을때, 늑대들은 전혀 예상치 못한 광경과 마주했다.
과거 인간의 집으로 염탐을 보냈던 늑대들, 이미 모두 죽었으리라 여겼던 그들이 이번엔 인간을 지키기 위해 그들 앞에 나타난 것이다. 비록 불과 몇 마리뿐이었지만, 그들은 인간 농가로 내려가는 길목에서 수적으로 압도적인 늑대의 본대를 가로막고 서 있었다.
늑대의 우두머리는 앞을 가로막은 늑대들을 위협하며 설득하려 했으나, 그들이 결코 물러서지 않으리라는 것을 곧 깨달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공격을 명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