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농경시대 4

by 스튜던트 비


늑대의 우두머리는 앞을 가로막은 늑대들을 위협하며 설득하려 했으나, 그들이 결코 물러서지 않으리라는 것을 곧 깨달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공격을 명령했다.


숫적으로 불리한 늑대들은 온몸이 물려 피를 흘리면서도 끝내 물러서지 않았다. 인간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 남은 힘까지 쏟아내며, 본대의 공격을 막아서다가 하나둘 쓰러져 갔다.


마지막 한 마리마저 쓰러지자, 우두머리 늑대가 쓰러져 있던 늑대의 곁으로 다가와 조용히 물었다.


“가족이었나…?”


쓰러진 늑대는 눈물을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늑대의 우두머리는 잠시 침묵 속에서 그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무리에게 명령했다.


“그만 돌아가자.”


그렇게 말한 우두머리가 갈기를 내리고 돌아서자, 늑대 무리들도 그들 따라 조용히 돌아섰다. 늑대의 우두머리는 한때 자신의 동료였던, 쓰러진 늑대들의 희생을 존중해 주기를 원했던 것이다. 늑대들은 우두머리의 결정을 곧바로 이해했다. 야생의 늑대라면 누구나 한 번쯤 가족을 지키기 위해 싸운 기억을 품고 있었고, 그 싸움에서 패배해 가족을 잃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늑대들의 사연일 뿐이었고, 큰뿔사슴과 다른 동물들의 생각은 달랐다. 그렇게 늑대들이 인간에 대한 공격을 자의적으로 멈춘 것에 대해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여론이 생겨나면서, 결국 늑대의 우두머리는 권력을 잃고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자리를 떠나며 늑대의 우두머리는 마지막으로, 야생 동물들에게 인간 그리고 동물 세계를 배신한 것으로 보이는 늑대 무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1)


“우리가 공격을 멈춘 그 자리에서, 우리가 ‘배신자’라 불렀던 늑대들은 숨을 거두었다. 우리는 그들의 시신을 수습하지 않았다.

다음날, 나는 인간들이 그들을 애도하며 주인으로 보이는 자의 무덤 옆에 함께 묻어 주는 광경을 멀리서 지켜보았다.



인간들의 눈물과 울음소리를 들으며 나는 죽은 늑대들 그리고 인간 옆에서 살아가던 동물들이 단순히 인간의 유혹에 이끌려 곁에 머문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인간과 가족이 되었던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가족이란 기쁨만이 아니라 죽음의 슬픔까지도 함께 나누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1) 인간 마을에 대한 공격을 포기한 늑대의 우두머리는, 인간을 여전히 신뢰하지 못한 오라클 흰뿔사슴과 다른 길을 걷게 된다. 늑대들은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등 세계 곳곳으로 흩어져 떠돌았는데, 어떤 이들은 새로운 무리를 이루었고, 또 어떤 이들은 무리를 잃어버린 채 외로운 늑대로 살아가게 된다.



keyword
이전 17화농경시대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