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뿔사슴은 신생대 후반, 맘모스와 검치호랑이가 멸종한 직후, 잠시 동안 동물 세계의 오라클 계보를 이어받은 고대의 동물이다. [1]
큰뿔사슴은 다른 오라클들과 달리, 거대하고 특별한 뿔을 지니고 있었다. 그 뿔은 세상의 미세한 떨림까지 감지하게 했고, 덕분에 사슴은 감각으로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큰뿔사슴의 능력을 알아챈 인간들은, 그 신비한 능력을 지닌 뿔을 얻기 위해, 큰뿔사슴을 끝없이 뒤쫓기 시작했다.
큰뿔사슴 무리는 산속으로 피신하면서, 지니고 있던 보물들을 하나둘씩 길가에 내려놓았다. 인간들이 그 보물을 차지하고 추적을 멈추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러나 인간들은 그 어떤 보물에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제서야 큰뿔사슴은 깨달았다. 인간들이 원하는 것은 보물도 보석도 아닌 ‘예지력’, 즉 자신이 지닌 뿔이었다. 인간이 만들 새 사회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도구와 불, 그리고 마지막 열쇠인 미래를 내다볼 뿔 이 필요했던 것이다.
끝없는 피신과 추적의 숨바꼭질은 그 후에도 여러 해 동안 이어졌다. 큰뿔사슴은 인간들이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꿈속에서 모든 것을 보았다. 자신과 무리가 모조리 사냥당하는 참혹한 미래였다. 곧바로 그는 그 운명을 바꾸기 위해 가장 큰 뿔을 지닌 자신이 홀로 인간들을 유인하기로 결심하고, 무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와 반대 방향, 우랄 산맥으로 향하라. 그곳에서 평화를 맞이하길 바란다. 나는 그들을 반대 방향으로 멀리 끌어내, 이 끝없는 추격을 멈추겠다.”
큰뿔사슴은 자신이 인간들에게 생포되거나 죽임을 당하면, 그 뿔이 인간의 손에 넘어가 가족들까지 차례로 사냥당할 것이라 믿었다. 그래서 그는 도망을 가면서, 자신의 뿔을 부수기 시작했다. 뿔을 바위에 부딪힐 때마다 통증이 머리를 찔렀고, 피로 산바닥을 붉게 물들였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예지력이 인간의 것이 되는 순간, 그 피해는 가족과, 어쩌면 모든 동물들에게까지 미칠 것이 분명했다.
큰뿔사슴이 스스로의 뿔을 대부분 부수고, 오른쪽 뿔의 반쪽 정도만 남았을 때였다. 예지력은 희미해지고 시야는 점점 흐려졌다. 그리고 그 틈을 타 인간들이 마침내 그의 눈앞까지 다가왔다. 큰뿔사슴은 남은 힘을 짜내어 산을 올라 몸을 피했다. 숨 막히는 추격이 이어졌고, 끝내 그는 절벽 끝에 몰렸다. 뒤로는 까마득한 낭떠러지, 앞으로는 자신을 쫓아온 인간들이 서 있었다.
“우린… 너를 사냥하러 온 게 아니야.”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우리 부족이 요즘 들어 예측할 수 없는 홍수와 가뭄에 시달리고 있고, 이제는 알 수 없는 병까지 번지고 있어. 신에게 물어도 대답이 없었어. 그래서… 너에게 미래를 묻기 위해 온 거야.”
[1] 아이리쉬 엘크(Irish Elk)라고도 불리는 이 사슴은, 빙하기 말기까지 존재했던 거대한 사슴이다. 지구에 존재한 사슴류 중에서 가장 큰 종이었으며, 그 장엄한 뿔은 ‘자연이 만든 왕관’이라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