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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헌문학 Oct 27. 2024

저녁이라는 시

저녁이라는 시

                                                                                                                                    

당신의 음률이 들리는 듯해요     

그대에게….

그대여,

'하루의 빛이 스러지는 저녁이면 늘, 고향에 계신 어머니가 그리워진다.’ 

이런 말이 있더군요. 

그래서인가요. 자다 깬 아이가 자동반사적으로 엄마를 찾듯, 땅거미가 지니 불현듯, 도시라는 집을 나간, 저녁의 낭만들을 수배하고만 싶어집니다. 

돌아선 등짝에 ‘추억’이라는 명찰이 붙여져서 과거의 존재가 되는 것들. 실종된 소리. 냄새. 질감. 풍경. 마음들을요. 가을 하늘, 슈 욱 슉, 휭휭 떠돌던 도깨비불, 반딧불과 페가수스, 안드로메다, 카시오페이아를 발견한 설렘으로 그리움이란 감각이 허가에 깨어나, 가로등처럼 불을 켜기 시작하는 게 어스름해지는 바로 이런 어스름 어리는 시간인 것 같습니다. 그대가 생각하는 시간이기도 하지요.          

고요한 것들 속에는 텅 비어 울리는 소리가 있다./그 때마다 엄습하며 내 무릎을 꺾는 흑백의 시간.     

이것이 회한이라는 것인지. /산다는 것은 이렇게도 흔들리는 것인가?     

시인 박남준 씨가 데이비드 달링의 음악에서 영감을 얻고 썼다는 시 <저녁 무렵에 오는 첼로>의 한 구절이에요.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지요. 사물 깊은 곳에 존재의 노래가 들리시나요.     

 시인은 만물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이런 저녁 무렵이면 고요한 가운데 저마다의 뿌리서부터 울려 나오는 어떤 소리들을 들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대여, 그렇게요. 우리 일상으로 센스 넘치는 음향들이 내가 서 있는 곳의 배경인 듯 공기인 듯 흐르고 있어 줬으면 좋겠어요. 마치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흘러나오는 BGM처럼 말이죠.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 하루하루는 멋진 영화의 한 장면처럼 채색된 순간을 맞게 되는 거 아닐까요. 세탁물의 재질을 부드럽게 풀어주는 섬유유연제라는 게 있죠. 그러고 보면 음악이란 건, 현실의 메마르고 거친 결을 비단결인 듯 부드럽게 바꿔도 주는 그런 '삶의 유연제'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억제해둔 감정과 맺혀있는 응어리 따위는 당신의 음률로 맘껏, 양껏 와장창 풀어내 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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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당신, 사람이라면 누구나 굳이 이유를 따질 수 없을 만큼 마음 깊은 데 간절한 이름, 소중한 기억과 감정, 그리고 못내 접어둔 꿈들을 마음 깊이 묻어두고들 산다고 하네요. 저뿐만이 아니고요. 그러니까요. 그런 잊을 수 없는 '간절함의 대상'이나 그 '간절한 감정' 그 자체는 때론, 저마다의 '존재의 이유'가 되기도 하는 것일 거예요. 제게 그 존재 이유는 바로, 당신이란 걸 당신은 아시나요?     

그런데요. 그리 이유 붙일 수 없이 소중한 진실한 사랑의 감정이라도 영원한 것. 영원히 지속될 수 있는 행복이란 사실 존재하기 힘든 것도 같아요. '영원토록' 간절하고 진실한 마음을 유지하기란 또 그리 참으로 난망한 거라서 사람들 그 누구나 유물이 돼버린 추억의 흔적 그 지워지지 않는 뒷모습에 가슴 시린 회한을 품게 되는 걸 테고요.     

하지만요, '그리워하면 언젠 간 만나게 된다'라는 아름다운 믿음을 노래하던 노래 가사가 있잖아요. 당신도 아시죠. 그 노래. 그렇게 언젠가는 꼭 만날 수 있다는 기적의 실재를 무조건 믿어보고 싶어지는 가없이 약해진 마음, 의지할 데 갈급해지는 외로운 찰나와 찰나가 있습니다. 오늘은 왠지 그리운 이름. 못내 다독여 잠재우지 못했던 소망을, 주변 사람들은 잘 모르는 아픈 흉터를 가슴 속 서랍에서 꺼내 노래 가사와도 같은 기적의 약속 다시 들려주고 꼬옥 안아 얼러보고 싶은, 그런 저녁이었어요. 누구에게나 가끔은 그런 회상과 자기 정화, 자기위안의 시간이 필요한 거겠지요. 비밀스러운 밤이 되면, 적막한 시간. 저녁 무렵엔 단단히 자물쇠 채워둔 마음의 서랍장을 여는 비밀키 같은 사색들이 몰려오기도 해요.     

 어스름이 깔릴 때 저는 조금 낮아집니다. 네 한 없이 낮아져요. 아집과 허욕들이 부끄러워져요. 어둠과 고요의 힘으로 감성의 둑이 무너져버린 듯이 가끔, 감정이 파도를 치면 내면을 가만히 잠겨봅니다. 그 안의 욕구, 바람 같은 거, 나의 소리를 잘 들여다보고 들어보려고 나란 놈과 접속을 시도해보기도 하죠. 

생명들이 제자리로 돌아갈 땐, 저마다의 뿌리서부터 울려 나오는 어떤 소리가 들린다고 했죠, 그렇게 귀가 뜨인 시인의 귀를 지니게 되면 세상은 온통 그윽한 음정으로 차오를 수 있는 걸까요? 그렇게 되면 당신은 저의 소리를 들으실 수 있으실까요? 당신을 부르는 저의 외침을?     

 그리운 당신, 이 밤 저는 제 깊은 데서 울리는 울음이나 깊은 멜로디가 있나, 아름다움이 내 안에 남아있을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리고 그런 남아있는 순수의 상징 같은 별들 보며 밤새 얘기 나눌 존재를 잊고 있지는 않은지, 그런 생각이 들어 당신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하루, 하루 사람의 온기가 아쉬운 날들, 내 생에 심신의 온기를 전하며 오래 동행하고 싶은 인연들을, 별 보면서 호출하고 접속을 시도해봅니다. 그렇게 별밤 같은 귀한 순간에, 아름다운 얘기 나누고 픈 존재의 안부를, 어머니의 안부를, 언니의 안부를 다시 챙겨봐야겠어요. 한 살, 한 살 나이들어 늙어갈수록 세상은 더 애틋하게만 보입니다. 상처가 꽃이 되는 옹이처럼 내 안의 어둠이나 아픔 삼라만상에 가득한 저마다의 애절함도 결국은 꽃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제 때가 되었습니다’라고도 하던데요. 그렇게 내려놓고 낮아지게 되는 가을, 겸허하고 정결해지려 하게 되는 게 늙어가는 죽음으로 가는 기차를 탄 우리들의 숙제고 가을의 사명인 게 아닐까도 싶어집니다.      

 '쏘아진 화살'처럼 잡을 수 없는 시간 지나면서 세월은 흘러 또 한 해가 지나가 버렸습니다.

 흐르는 세월을 초연한 미소로 그저 마냥 예쁘게 손 흔들어 배웅할 수 있어야 하겠지요. 문 앞에서 기다리는 내일도 장년도 정중히 맞이해야겠어요. 이 저녁이 지나면 달력 한 장은 또 찢기고, 제게 주어졌던 오늘은 또 한 조각의 추억으로 남을 거예요. 오늘의 이 시간이 당신만을 생각하고 안위를 기도하는 순정하고 순결한 순간이었음을 기억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사진이나 일기 같은 것들도 부지런히 욕심껏들 남겨 두어야겠어요. 당신의 사진 한 장 없는 것이 한스럽지요. 산다면 얼마나 많은 날들이 제게 남아있는 걸까요. 당신의 없는 부재의 회색빛 시간들일지라도... 모든 이에게 오늘은 제일 젊은 날이라죠. 당신에게서 들려올 당신이 흘려보내셨을 님의 존재의 음률, 그 울음, 그 음악을 , 음악 같은 시 한 술, 시 같은 저 이름을 부르실 낮은 읆조림 한 잔에 흠씬 취해 보고픈 '유일무이'한 순간, 당신과 내가 서로를 그리워하는 이 마음길은 고단한 인생살이에도 결국은 한 번은 꽃을 피워낼 수 있을지요?

 오늘 이 순간은 말하자면 별 같고 꽃 같은 시 한 조각을, 내 존재에서 울려 나오는 노래 한 조각을 기어이, 간절히 그 존재의 인사를 당신께 건네드리고 싶었습니다.

 당신, 나의 사랑하는 이여. 당신의 음률이 차올라 세상을 구하길 바랍니다…. 강건하고 소리를 내세요. 아름답게 울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언제 어디서나 당신의 음률을 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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