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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그린 Sep 26. 2021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일상에 대해

새로운 직장에 익숙해진 지금, 내가 이 직장에 다닌다는 사실이 더 이상 설레임과 Joy를 가져다주지 않는다. 


나는 무언가 열정을 쏟는 분야가 없으면 엄청난 무료함을 느끼는 사람이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특성상 마음을 다하지 못하고 수박 겉핧기 식으로 진행하고 있는 느낌이다. 만족되지 않은 나의 지적 성장 욕구, 넘쳐나지만 쓰이지 않아 남아도는 에너지는 더 큰 무료함을 느끼게 한다. 


월요일이 오는 게 싫은데, 역설적이게도 주말이 너무 긴 느낌이다. 

무언가 하나에 몰입하다보면 시간이 지나있는 경험을 한지 오래되었다. 

지나간 시간을 봤을 때의 드는 생각은 "벌써 이 시간이야?"가 아닌 "아직도 이 시간이야?"이다. 


나에게 즐거움을 가져다주던 글을 쓰고 책을 읽는 게 어려워졌다. 

서점에 가도 예전 만큼의 깊은 설레임을 느끼기 어렵다. 


글을 쓰는 게 어려워 한 두 문장 쓰다가 컴퓨터를 이내 닫는다. 

책은 몇 페이지 읽다가 끝내지 못한다. 


나의 집중력은 그 깊이가 매우 얕아졌고, 이는 콘텐츠를 소비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넷플릭스나 왓챠를 통해 시리즈물을 보다가도 몰입이 안되어 결국 닫게 된다. 

말그대로 시간 때우기용으로, 시간을 지나게 하기 위해 보다가 이내 회의감이 든다. 

이게 다 무슨 쓸모인가.


무료함은 외로움을 일으킨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졌을 때의 강렬한 기분에 사로잡히고 싶다. 

떠나보낸 옛 연인들이 괜히 떠오른다. 긴 새벽에 카톡을 보내볼까 고민하지만 결국 아침이 되고 다시 정신이 든다. 


데이팅 앱에서 대화하는 사람은 20+명 남짓, 그 중 정말 교감을 한다고 느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미치도록 외로운데 아무에게도 관심이 가지 않는다. 

연애를 할 때는 매우 이성적이게 된다. 

모든 현실적인 조건들을 무시한채 사랑에 몸을 맡기기에는 시간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고, 에너지가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머리는 이러한 생각을 품은채, 마음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무의미한 대화를 계속해보지만 척봐도 나와 별로 통하는 점이 없는 사람들과 하는 무의미한 대화는 결국 시들시들해진다. 


무료함과 삶에 대한 불만족은 짜증을 낳는다. 

나의 인내심은 아주 얇디얇은 층같아서, 일상의 작은 불편함들은 곧바로 나의 인내심을 뚫고 기분을 망친다.


피부과에서 몇십만원 주고 치료를 받았는데 흉터만 남았다. 

회사에서는 억울한 일이 생겼다. 

나에게는 이런 것들에 대해 조목조목 따지고 들 힘이 없다. 

그저 이런 일을 당한 게 억울하고 불쾌할 뿐이다. 

마음을 지키지 못한 나는 표정에서부터 티가 난다. 


차라리 무언가를 시작해볼까. 

대학원 시험 공부를 미리 시작해볼까. 

요리를 다시 해볼까. 

두꺼운 프랑스 요리책을 중고로 구입했다. 

금요일에 마켓컬리에서 미리 이색적인 재료들을 구입해 토요일에 가족들에게 풍족한 요리를 해주고나면 내 마음이 좀 채워지는 느낌이 들까. 


연애 권태기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한 충고는 많지만, 왜 아무도 내 삶에 대한 권태기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말해주지 않는가. 

나의 일상이 설렜으면 좋겠다. 

매일매일 해나갈 것들에 대한 의욕과 기대감이 되살아났으면 좋겠다. 

주말이 기대되고, 평일도 평일대로 그럭저럭 뿌듯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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