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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뉴 Oct 15. 2021

소모되지 않고 성장하기 위하여

신입이여, 이제 안녕.

가장 많이 마음이 흔들린다는 3년차에 접어들었을 무렵, 나의 마음은 흔들리는 대신 아등바등 버텨내고 있었다. "오늘도 파이팅!"이라는 무용한 말을 남발하던 나는 언젠가부터 "오늘도 잘 버텨내자!"라는, 보다 유용해 보이는 동시에 보다 서글퍼지는 말로 스스로를 다잡고 있었다. 다시 오지 않을 오늘을 그저 버틴다는 마음으로 살아내는 건 참 씁쓸한 일인 줄 잘 알면서도, 하루하루를 그저 버텨내야 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던 시기였다.  


괜찮아, 이 시기 또한 지나갈 거야. 버텨보자.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는 이 일에도 끝은 있을 거야. 버텨보자. 

이제 며칠만 더 있으면 주말이야. 버텨보자. 


나의 삶이 왜 버티는 삶이 되어 버렸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어느 순간부터 일에서 내가 소모되어가고 있었다. '소모 = 써서 없앰'. 그러니까, 일에다가 나를 갈아 넣어 버려서 나는 점점 없어지는 느낌. 내가 아무리 쳐내도 끝이 보이지 않고, 내가 이걸 왜 해야 하지, 이 일을 통해서 내가 뭘 배울 수 있지 싶은, 누군가는 해야 하나 아무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그런 일이었다. 어디선가 읽었는데, 일에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소모되어간다고 느낄 때가 그 일을 그만둬야 하는 시점이라고. 


그래도 나 여기서 나름 인정받고 있지 않나, 이 정도면 우리 팀 분위기 좋지 않나, 이런 합리화로 어떻게든 미루고 버텨왔던 지난날들을 뒤로하고, 좋아하면서도 잘할 수 있는 그런 일을 찾아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나기로 했다.  한때는 이 일을 좋아했으나 더 이상 그 만큼은 좋아하지 않게 되었고, 이 일을 잘한다고 뿌듯해했던 시기도 있었으나, 그게 꼭 이 일이라서 잘한 것만이 아닐 수도, 아니, 어쩌면 그리 잘한 게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드는 시기가 된 것이다.




회사 인원의 90%는 경력직으로 입사한 사람들이니, 신입 공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은 오만이요, 착각이었다. 신입 때는 패기와 열정으로 나의 유용함을 어필할 수 있었지만, 신입에게는 열정을 바라던 이들이 경력직의 열정에는 무심하며 숫자로 나타나는 성과만이 유용함을 증명해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난 몇 년 동안 분명 많은 것들을 해왔던 것 같았으나, 이력서 한 페이지를 채우기에는, 그리고 면접관의 물음에 멋진 답변을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지난날의 주체적으로, 능동적으로 임했던 일들도 어떤 시각에서는 수동적인 역할에 그칠 뿐이었다.

 

신입으로 입사한 지 1년이 지나 첫 연봉협상 때, 팀장님에게서 "본인의 시장가치를 증명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던 친구가 있다. 그때의 우리는 "아니, 이제 막 2년 차 되었는데 어떻게 내 시장가치를 증명하란 거야?" 하며 어처구니없어했지만, 사실 그 팀장님은 냉혹한 현실을 일찍이 알려주셨을 뿐이었다. 다행히 사내 부서이동 제도를 통해 나를 한 번 뽑아줬던, 나에게는 냉혹하기보다 자비로운 회사에서 직무 전환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서 이미 인정받고 있는데 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려고 하느냐, 거기서는 지금처럼 평가를 잘 받기 어려울 거다, 와 같은 말들을 뒤로할 수 있었던 것은, 나를 만류하던 그 말들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 현실은 나의 의지에 의해 또 바뀔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를 신입으로 뽑아주고, 신입이라는 이유로 예뻐해 주고, 신입에서 3년차로 키워준 고마웠던 부서를 떠나, 신입시절의 나를 전혀 모르는 새로운 부서에서 다시 시작해보기로 했다. 아마 당분간은 정신 못 차릴 정도로 성장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겠지. 그런 의미에서 신입일기도 이제 안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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