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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ia Dec 25. 2023

꼭 그렇게까지 해야겠어?

김예원, <상처가 될 줄 몰랐다는 말-무심히 저지른 폭력에 대하여>

책 속 청량한 문장들

솔직히 꼼꼼하다고는 볼 수 없는 성격인데도 사건을 지원하다 보면 "꼭 그렇게까지 해야겠어?"라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통상적인 수준까지만 해도 충분한데 좀 과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상치 못한 별명을 얻기도 했다. (중략) 사건을 통해 만나는 피해자들은 그냥 거쳐 가는 누군가가 아니라 같은 시간을 살아내는 사람들이기에 그들에게 중요한 일은 나에게도 중요한 일이 된다. 그래서 어쩔 때는 '꼭 그렇게까지 해야'한다.


18,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할 때


이 책을 선물 받고 한 자리에서 단숨에 읽었다.

선물해 주신 분은 저자와 나의 에너지가 닮은 것 같다며 책을 건넸다. 

읽다 보니 김예원 변호사는 나보다 에너지가 훨씬 훨씬 더 많고 훌륭한 분이셨지만 나의 생각이나 상황이 비슷한 구석들이 조금씩 있었다.

특히 태어날 때 사고로 오른쪽 눈을 잃고 시각장애인으로 살고 있다는 책날개 소개글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나도 태어날 때 앓았던 큰 병으로 오른쪽 눈의 시력을 잃었으니까.


책 내용의 많은 부분에 공감하며 읽었지만 가장 속이 후련했던 부분은 그래서 어쩔 때는 '꼭 그렇게까지 해야'한다. 는 문장이었다.

내가 너무나 많이 듣고 사는 질문 역시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해?"이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하는 삶 때문에 오해를 받기도 하고, 깊은 슬픔을 마주하기도 한다. 이 책의 저자 역시 한 사람의 삶에 깊이 뛰어들어 그렇게까지 하기 때문에 겪은 일들이 있다. 읽는 내내 그의 삶에서 큰 위로를 얻었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힘을 얻었다.

지난 여름에 썼던 글에 대한 답과 확신을 준 청량한 문장에 감사하며.


루꼴라를 처음 만난 건 1999년 여름밤이었다.

학교 교수님들 연주회에 페이지터너(일명 넘순이)로 열일하고 난 후 뒤풀이로 간 독일 헤쎈 주 다름슈타트의 작은 레스토랑에서였다.

연주를 잘 마치실 수 있도록 지도 교수님 곁에서 악보를 한 장 한 장 조심스레 넘겼고, 다행히 그 누구의 실수도 없이 공연이 끝난 뒤였다.

선선한 초여름의 바람이 팔에 닿았다. 노천에 준비된 테이블 앞에 앉은 우리는 청량한 바람을 누렸다. 열심히 준비한 공연이 잘 마쳐진 것, 바람 냄새가 나는 밤 노천에 앉을 수 있는 것 모두 찰나에 누릴 수 있는 기쁨이었다.

현대음악제로 이름이 알려진 학교에 걸맞게 교수님들은 그날 우리 학교 학장님이 작곡한 현대음악곡을 초연하셨다. 그 곡은 현악 3중주의 구성이었는데도 연주자 혼자 악보를 넘길 수가 없게 쓰여 있었다. 첼리스트 옆에 앉은 페이지터너가 되는 경험은 난생처음이었다. 무대 위에 여섯 명이 올라가 있는 것을 보는 관객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그 곡은 너무나 빨라서 정신을 정말로 바짝 차리고 있어야만 했다. 실수 없이 악보를 넘기기 위해 얼마나 긴장을 했던지. 


교수님과 나는 사실 그 당시 그다지 관계가 좋지 않았다. 그 시절의 나는 나 자신과 싸우고, 첼로와 싸우고, 주변의 모든 사람들과 싸우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레슨 내내 한 번도 웃지 않는 작은 단발머리 동양 여자 아이가 아마도 많이 불편하지 않으셨을까. 하지만 희한하게도 교수님은 페이지터너가 필요한 순간마다 나를 부르셨다. 덕분에 교수님들이 하시는 좋은 공연에 함께하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내가 직접 첼로를 연주한 것은 아니었지만 공연 내내 함께 긴장하며 음들을 읽고, 빨리 진행되는 마디의 어느 한 중간을 캐치해 악보를 넘겨야 했다. 공연이 다 끝나고 나니 꼭 내가 연주한 것 같은 정도의 노곤함이 밀려왔다.


푸른빛을 내는 여름밤의 하늘과 달콤한 독일 시골의 시원한 공기에 기분이 한껏 좋아질 때쯤, 메뉴판이 내 앞으로 왔다.

"쏘냐, 혹시 루콜라를 아니?" 무엇을 먹어야 할까 한참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단어, 루콜라(독일어 발음으로는 루꼴라를 루콜라라고 부른다). 그때만 해도 내가 앞으로 이 단어를 얼마나 많이 그리워할지 몰랐다.

교수님은 내게 루꼴라 샐러드를 강추하셨다. 그렇게 자신감 넘치는 눈빛은 첼로 레슨 때도 보지 못한 것이었다. 선생님의 눈빛에 끌려 루꼴라 샐러드를 주문했다.

조금 후 내 앞에 놓인 흰 접시에는 그 어떤 것도 섞이지 않은, 온전한 한 가지 종류의 초록이 가득했다. 아무런 소스도 뿌려져 있지 않은 순수한 와일드 루꼴라였다.

한 입 먹어보니 도무지 무슨 맛인지 알 수가 없었다. 씁쓸하고 처음 접해보는 희한한 향기를 내는 풀. 이걸 밥으로 먹으라니! 당황한 표정으로 접시를 내려다보는 나를 보며 교수님은 웃으셨다.

"올리브유랑 소금, 후추를 뿌려봐!" 교수님의 권유에도 그래봤자 뭐가 얼마나 더 달라질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접시 위 루꼴라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소금 후추를 뿌렸다.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특이한 맛을 내는 샐러드가 존재할 수 있는지!


그날 밤 이후 먹을 때는 이해할 수 없었던 맛이 이상하게도 매일 생각이 났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 마트에 가보니 채소 코너에서 평소에는 눈에 띄지 않던 루꼴라가 보였다. 큰 통에 3천 원쯤 하는 루꼴라를 사 와서 매일매일 먹었다. 양이 너무나도 많았다. 처음 먹었던 것처럼 샐러드로 먹고 먹어도 남아서 파스타에도 올려보고 빵에도 끼워 넣어 먹었다.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2004년 귀국한 후에는 그렇게 매일 먹던 루꼴라를 먹을 수가 없었다. 요즘에야 쿠*에서도 주문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때만 해도 루꼴라는 아주 고급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나 아주 조금 곁들여 나오는 식재료였다.

루꼴라가 나오는 레스토랑에 가게 되면 자연스레 그날의 청량한 바람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 행복하기도, 쓸쓸하기도, 알 수 없는 감정이 섞여 들기도 했다. 한창 첼로를 손에 잡을 수 없을 때는 심장이 아픈 느낌이 들기도 했다.


몇 주간 쉽지 않은 시간을 지나는 중이다. 이상하게도 여름마다 진심이 곡해되어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는 슬픈 사건의 중심이 되는 경우들이 있었다. 어김없이 이번 여름도 장맛비같이 울며 지나고 있다. 청량한 바람과 푸른빛의 밤이 필요한 순간이다. 습관처럼 이제는 온라인으로도 살 수 있는 루꼴라를 잔뜩 주문했다. 독일에 가면 3천 원 한 박스에 루꼴라가 가득일 텐데, 한국에서는 한 줌 정도가 온다. 처음 먹었던 것처럼 올리브유를 두르고, 소금과 후추를 뿌렸다.

관계가 그다지 좋지 않았음에도 나에게 악보를 맡겨주셨던 교수님을 떠올린다. 한 걸음 뒤에 앉아 교수님이 읽는 곳의 음을 함께 읽고, 교수님이 원하는 포인트에서 악보를 넘기던 순간의 긴장과, 모든 공연을 마친 후 박수갈채를 받는 교수님을 뒤에서 지켜보던 순간의 따스함을 생각한다. 나의 작은 행동이 교수님의 연주를 잘 마무리할 수 있게 하는데 조금의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 뿌듯했다. 아무도 그 자리에 있던 나를 기억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괜찮았다. 교수님과 나는 적어도 그 순간을 함께 지났고, 어떤 순간의 공감을 나누었으니까. 


누군가와 함께 시절을 보내다 보면 기적 같은 순간들이 찾아온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지 싶을 만큼 놀랍고 감사한 순간들이 쌓일 때가 많다. 하지만 당시에는 기적 같았던 이야기가 갑작스레 전복되어 정반대의 결과로 돌아올 때도 있다. 

 “왜 그러고 사나요?”, “왜 그렇게까지 하나요?”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지금까지의 삶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어째서일까. 며칠 전 어떤 분은 나를 보고 언제든 무엇이든 도와줄 준비가 이미 끝나 질문을 마치자마자 도움을 주는 사람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셨다. 어떤 필터를 거치지 않고 어쩌면 ‘내가 어떻게 보일까’ 같은 생각을 깊이 할 새 없이 타인의 삶에 뛰어들다 보니 여러 가지 오해를 낳기도 한다. 요즘 들어 이런 나의 삶의 자세와 태도가 과연 옳은 것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지난주에 작년의 장마 같은 울음의 주인공이 찾아왔다. 함께 식사를 하며 다시 웃었다. 그동안 감사했고 죄송했다며 둘째 아이의 사진을 보여주었을 때, 작년 내내 울던 마음이 위로로 덮였다.


이번 일도 어떻게 해결이 될지 알 수 없다. 그저 오랜 시간을 함께 하고 있는 오해와 이해, 외로움과 충만함 사이에서 울고 웃으며 계속 한 장씩 악보를 넘기는 중이다. 앞으로도 나의 성정을 바꾸지 않으면 이 같은 일들은 반복이 될 수도 있겠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제 정말 어떻게 살아야 하지? 


인생이란 돌아보았을 때에야만 깨달아지는 조각들로 만들어가는 모자이크 같은 것이 아닌가 싶다. 어느 순간 뒤를 돌아보다, 그때 그 일이 일어났기에 지금 내가 있다는 것을 문득 깨닫는 것. 루꼴라를 너무 사랑하게 된 그날 밤을 기억한다. 교수님이 왜 나를 그 자리에 불러 악보를 넘기게 해 주셨는지, 왜 그날 밤 내가 평생 사랑할 루꼴라를 만났는지 알지 못한다. 그날 그 밤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 루꼴라 한 접시의 위로는 받지 못할 것이다. 며칠 전 집 앞에 큰 스티로폼 택배 상자가 도착했다. 열어보니 루꼴라가 1kg이나 들어있었다. 며칠 째 먹고 먹고 또 먹어도 아직도 남아있는 루꼴라. 샐러드, 파스타,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으며 슬픔을 기쁨으로 덮어간다. 회색 같은 시간에 빛깔들을 입혀간다. 슬픈 나날들에 서로의 어깨를 빌려주는 이들이 있어 감사하다. 설명하지 않아도 나의 어떤 한 지점을 온전히 이해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단 한 명이라도 그런 이가 곁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선물인지 생각한다. 아무도 없는 것 같은 순간이 와도 노래, 시, 음악, 그림, 새소리, 하늘 구름, 흐르는 강물의 소리에서 버틸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도. 


가을밤이 오기 전에 모든 일들이 잘 지나갔으면 좋겠다. 누군가 나의 존재 때문에 슬프거나, 아프거나, 불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해와 충만함으로, 깨어진 조각들이 모자이크 작품이 되어 마음속에 걸리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래서 가을엔 이번 여름을 추억하며 독일 시골 마을 흰 테이블 앞에 앉아 마음 편히 루콜라 샐러드를 먹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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