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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ia Oct 16. 2024

무(無) 맛 패션후르츠

항암 후 미각 손실의 정도

항암 1차 후 6일째 날이다. 결국엔 입원을 하게 되었다.

호중구 촉진제를 맞고 기절할만큼 아파 도저히 집에 있을 수가 없었다.

감사하게도 심한 몸살기는 여러 가지 치료를 통해 좀 나아졌다.

여전히 남은 것은 발끝 저림, 근육통, 오심, 어지럼증 등의 증상들이다.

후유증 가장 심한 미각의 상실.

오심만 있으면 울렁임을 누르고 무엇이든 먹겠는데, 오심에 미각이 상실되니 먹기가 쉽지 않다.

입원 후 2킬로가 빠졌다. 유후!

그런데.. 이건 기뻐해야 할 일은 아니란다.

(그토록 바라던 체중감량이건만!)


암환자는 암이랑 싸울 게 아니라 항암 부작용과 싸워야 한다고 들었다.

암세포와는 항암제가 싸워주고 있으니, 항암을 견뎌야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항암을 견디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체력을 비축하고 면역을 증강시키는 것. 그러기 위해 열심히 먹어야 한다.

그걸 알지만, 먹어야 산다는 걸 알지만, 먹는 게 고역이고 죽을 맛이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고무 같은 음식을 씹어 넘기느라 식사 시간이 괴롭다.


오늘은 치료받는 내내 냉면 생각이 간절했다.

당뇨가 찾아온 후 제대로 먹어본 적 없는 냉면이.

시원하고 새콤 달콤한 육수를 들이켜고 쫄깃한 칡냉면을 먹는다면 왠지 속이 뻥 뚫릴 것 같았다.

그 맛을 상상하며 고온산소통에 들어가서 입맛을 살리려 애를 썼다.

치료 후 점심을 먹으러 내려가니 세상에 특식으로 열무국수가 있는 것이 아닌가!

냉면까지는 아니어도 왠지 속이 뚫릴 것 같아 너무 기쁜 맘에 한 입을 먹었다.

슬프게도 열무 국수에서는 고무 씹는 느낌이 났다. 이럴 수가.


겨우 몇 술 뜨고 후식으로 나온 패션푸르츠를 먹어보았다.

그래도 새콤의 대명사이니 맛이 날 것을 기대하면서!

하지만.... 그건 무(無) 맛이었다.

톡톡 씹히는 느낌은 있으나 혀에서는 아무런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럴 수가. 패션푸르츠 너마저!!

모든 음식이 무색무취의 느낌이다.

입덧 때는 그래도 내 뱃속에 사랑스러운 아이가 자라고 있다는 느낌에 참는 것이 의미가 있었건만.

그래. 이 시간을 지나면서 나의 유방암씨도 작아지고 있겠지.

먹어야 산다. 내일도 어떻게든 먹어보자.

내일은 내일의 無맛 음식들이 기다리겠지만.

미각.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어마어마한 선물이었음을 깨닫는다.

내일 부디 딱 하나라도 맛이 나는 음식을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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