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낭비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나는 게을러", "잠이 많아"와 같은 핑계를 대는 순간에도, 나를 움직이게 하는 일들은 분명 존재한다. 우리는 이때 그게 무엇인지 찾기 위한 고민을 해야 하는데, 이 고민이라는 존재는 그리 달갑지가 않다. 끝이 날 것 같다가도 도무지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을 위해 그것이 무엇인지 찾아 눈에 보이는 결과물로 하나씩 Output 해보는 시도가 필요하다.
한 가지 위안이 되는 사실은 고민이 끝없다 해서 우리가 결국 고민에 파묻혀 힘을 전부 빼앗기기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고민을 다루는 힘이 생기고, 고민을 해결하기 위한 움직임이 우리를 성장하고 발전하게 이끌어주기 때문이다. 그러니 고민을 피하거나 제쳐두는 선택을 하지 말자. 어차피 언젠가는 내가 해야 할 몫이니 기꺼이 고민하자.
고민도 하다 보면 그 실력이 좋아진다. 부모들이 첫째보다 둘째, 둘째보다 셋째를 키울 때 더 노련해지고 덤덤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보내온 시간과 경험들이 그렇게 단련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차피 해야 할 몫이라면 닥친 그 순간부터 하는 게 이득이다. 현명함은 이럴 때 발휘된다.
대한항공 공채가 뜨지 않아 이직에 대한 욕구가 줄어들다 보니, 자연스럽게 몸 담고 있는 회사에 더 마음을 열리고 애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입사 2년 차 때는 음악 특화팀에 들어가게 됐는데, 음악을 전공한 나는 특화팀 내에서 좋은 역할을 할 기회가 많았다.
제주항공에서 전북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취업 노하우를 전수해 주는 행사에서 연주를 하게 된 것이다. 유니폼 입고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건, 내가 막연하게 그려왔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는데 그걸 이룰 수 있는 시간이었다. 주어진 현재에 집중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에서 최선을 다하니 감사할 일들이 하나둘씩 생겨났다.
나는 클래식 음악을 몹시 사랑하는 사람이다. 조식을 먹으며 듣던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나의 모든 감각을 충족시켜 주었다. 그때의 나는 마음껏 음악을 감상할 수 있었던 그 시간들이 정말 좋았고, 지금도 여전히 감사하고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음악을 듣다 청승맞게 눈물이 흐르기도 했고, 생각이 흐르면서 사고가 유연해지기도 했다. 나는 뭐든 할 수 있을 거 같았고, 그런 마음이 드는 자체로 감사했다.
그렇게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으로 또 한 번 새로운 시도를 했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 기내에서 사용할 보딩뮤직을 만들자고 결심한 것이다. 회사에서 사용하려면 저작권에 자유로웠어야 했기에, 저작권이 만료된 캐럴을 골라 직접 편곡을 했고, 오프 날에 친구들과 함께 직접 녹음을 해서 보딩뮤직 음원을 제작했다. 그리고 회사에 제안서를 올렸다.
승낙이 될까 안 될까 걱정하지도 않았다. 친구들과 녹음하며 음악을 만드는 순간도 너무 즐거웠고, 어떠한 대가를 바라고 움직인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감사하게도 팀장님, 본부장님, 부사장님, 사장님 모두가 좋아해 주셨고, 실제로 크리스마스 고객 이벤트로 진행이 되면서, 사내 매거진에도 나의 이야기가 실리게 되었다.
내 목소리, 그리고 나의 친구들과 직접 녹음한 연주가 크리스마스 시즌 내내 비행기에서, 라운지에서 들리던 그 경험은 지금까지도 내게 잊기 힘든 추억으로 남아있다.
당시 나는 정말 이직이 하고 싶었고 거듭된 실패 속에 회사를 다니는 매 순간이 내겐 고군분투의 시간이었지만, 돌이켜보면 그렇게 고군분투했던 시간들이 있었기에 다시금 주어진 현재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나는 그 안에서 값진 추억과 경험을 얻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