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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션록홈즈 Jan 13. 2022

꼬꼬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사 이야기


하필이면(?) 레지던스가 동향인 바람에 아이들은 7시면 눈을 떠 애미를 깨웠다. 우리는 분홍빛으로 물드는 일출을 매일 바라보았다.



이사 전 날, 갑작스레 보관이사를 결정하고 리모델링 기간을 늘렸다. 지낼 곳이 없어 레지던스를 급히 예약했다. 예정대로라면 1 5일에 집에 들어갔어야 했지만 공사 기간이 일주일  연장되는 바람에 꼬박 2주일을 밖에서 지냈다. ​바지 한벌, 티셔츠 3, 속옷 3개로 14일을 버티기엔  없이 부족했다. (본의 아니게 바지와 속옷 쇼핑을 했다. 후훗)


12월의 마지막 날, 유난히 기운이 없던 둘째가 새벽에 토를 다섯 번이나 했다. 이마를 짚어보니 열이 나기 시작했다. 덜컥 겁이 나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다행히(?) 장염이었다.​


레지던스에 전기밥통이 없어서 쌀을 불려 흰 죽을 3일 동안 만들었다. 병원에서 완치 판정을 받은 둘째는 가장 먼저 감자튀김이 먹고 싶다고 했고 함께 감자튀김을 폭식한 첫째는 다음날 토를 하기 시작했다. 장염이었다.


​쌀을 불려 흰 죽을 다시 3일 동안 만들었다. 미식가인 첫째는 장염 중에도 미식을 따져 맛있는 간장을 한 병 샀다. 그렇게 레지던스에서의 절반은 죽만 쑤며 지나갔다. (일명 레지던스 죽쑤니)


​아이들이 아프니 집이 더더욱 간절했다. ​익숙지 않은 주방에서 익숙지 않은 냄비로 끓인 죽 대신

우리 집에서 낡았지만 손에 익은 냄비로 두 녀석에게 밥을 해 먹이고 싶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토록 기다리던 집에.

우리는 이사를 왔다.

​날은 어쩜 이리도 추운지 스타킹에 양말을 두 개나 신었는데도 발이 꽁꽁 얼어붙었다.


​주택으로의 이사는 아파트와는 확실히 달랐다. 좁은 골목에 작은 사다리차가 지나가기 위해선 이웃들의 양해가 필요했고, 사다리차가 오르내릴 때마다 행여나 전깃줄에 닿아 동네 전체가 정전될까 봐 심장이 쪼그라들었다.


​​이삿짐이 모두 집에 쑤셔 들어오고 이사가 끝났다. 난장판이 된 집이었지만 안정감이 들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낯설기도 했다. ​공사가 진행되는 두 달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들락날락했던 집인데, 레지던스에서 지내는 동안 집에서 살짝 벗어나 있고 싶어서 들르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

저녁이 되어 이웃집에 불이 하나 둘 들어오는 걸 확인하고 준비했던 선물을 들고 인사를 드리러 갔다. ​먼지와 소음, 일하시는 분들의 담배 연기, 주차로 인한 불편함 등 분명 번거롭고 유쾌하지 않은 기간이었을 텐데.. 괜찮았다고, 이사 온 걸 축하한다고 말씀해주셔서 이젠 우리가 정말 이 동네의 주민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우리 집에서의 첫 아침이 밝았다. ​동향 레지던스에 단련이 되어서인지 침대 깊숙이 들어오는 햇살이 반가웠다.


​반가움도 잠시, 널브러져 있는 짐들을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숨이 턱 막혔다. ​버릴 건 버리고 왔는데도 짐은 왜 이렇게 많은지. 빨랫거리는 왜 이렇게 끝이 없는지. 쓰레기는 어떻게 버려야 하는지. 신랑은 도대체 왜 양말이 50켤레가 넘는 건지..


​혼자서 정리하며 투덜투덜거리다가 아이가 그린 우리 집을 보니 다시 설렘과 따스함이 느껴진다.



우리 집.

이제 이곳이 우리 집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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