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제주도의 호텔에서 일을 한다.
호텔 안에 편의점이 있는데 출근 전에 그 편의점에서 주전부리를 사는 게 습관이 되었다.
내가 자주 가는 그 편의점의 구석에는 방울토마토가 있다.
원래는 보이지 않았는데 봄이 시작되며 이 녀석들이 슬슬 자리하기 시작했다.
조그만 플라스틱통에 있는 열몇 개의 방울토마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아침거리다.
편의점에 들어가 탱탱하고 조금 많아 보이는 녀석으로 집어 들었다.
통통하고 붉은 게 맛있어 보이네.
익숙하게 챙겨 계산을 하고 돌아서 출근을 했다.
출근해서 정신없이 오픈을 하고 조금은 출출해진 배를 잡았다.
아 맞다 토마토! 가볍게 먹어볼까 하며 방울토마토통을 열었는데 뜻밖에 일이 일어났다.
매번 방울토마토 꼭지가 같이 있었는데 이번엔 꼭지가 다 제거되어 있는 게 아닌가?
그게 뭐라고 괜히 기분이 좋아 입가가 씩 올라갔다.
오랜만에 본 세심하게 배려해 주는 사람.
편의점에 일하시는 분들이 따서 정리한 건지,
유통할 때부터 정리가 되어 그 통에 들어있는 건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 과정 중에 누군가가 배려했다는 점 그 점이 내 가슴을 두근거리고 기분 좋게 만들었다.
따뜻한 인류애가 퐁퐁 솟아났다.
방울토마토 꼭지가 떨어진 부분을 가만히 매만지며 생각했다.
내가 누군가를 배려했던 게 언제더라.
두 달 전에 제주도에서 B와 데이트를 하고 있었다.
꽃이 있는 정원이 있는 카페라 포토존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꽃들을 보며 걷고 있는데 어떤 여자가 한 손에는 갓난아이를 안고 셀카봉으로 열심히 사진을 찍고 계셨다.
나는 그냥 지나치려 했는데 B가 내 팔을 툭툭 건드리며
가서 찍어드릴지 물어보자.
아이 불편해하실 거야. 그냥 가자.
한 번만 물어봐 한번만!
이 사람이 왜 이러나 싶으면서도 한 손으로 사진찍는 여자분이 괜히 마음이 쓰였다.
모르는 사람에게 굳이 굳이 말을 걸고 싶지 않았지만
그래 한번 물어나 보자 라는 마음으로 다가갔다.
저기요 혹시 사진 찍어드릴까요?
...?!
잠시 정적이 흐르다가 활짝 웃으시며 그럼 너무 고마울 것 같다고 말을 하셨다.
순간 그분 얼굴에 번진 미소가 이 정원에 있는 어느 꽃보다 가장 아름다웠다.
이렇게 좋아하실 줄 알았으면 진작 찍어드릴걸.
괜히 기분이 좋았다.
좀 더 오른쪽이요! 오! 너무 좋아요!
오바 육바를 떨며 사진기사에 빙의해서 정말 열심히 찍어드렸다.
안 찍었으면 내가 아쉬울 정도로 너무 즐겁게 찍어드렸다.
다 찍고 나서 너무 고맙다는 인사를 받으며 헤어졌다.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B에게 말했다.
나 있잖아, 기분이 너무 좋아. 내가 엄청 소중한 사람이 된 것 같아!
B는 씩 웃었다.
그 이후로 나는 제주민속촌, 주상절리, 원앙폭포 어디를 가던 먼저 가서 사진을 찍어주는 오지라퍼가 되었다.
재밌는건 지금까지 아무도 거절한 분이 없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 한테도 서슴없이 다가가 찍어드렸다. 가끔 카메라에 메롱을 하는 할아버지를 보면 다 같이 빵 터지기도 했다. 이렇게 모르는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 사진을 찍어주면서 신기한 감정을 느꼈다.
분명 귀찮은건 나일텐데 귀찮기는 커녕 엄청난 행복을 느꼈다는 점.
주는 행복이라는게 이런걸까? 받는것보다 주는게 기쁜건 처음이였다.
사소한 배려, 먼저 다가가는 것은 생각보다 엄청 어렵지 않다. 아주 작은 계기와 용기.
그 두 가지만 있으면 된다.
그리고 결과물은 그 어느 분야보다 최고의 투자가치를 낸다.
분명 이 방울토마토의 꼭지를 제거한 사람도 그런 마음으로 한걸 느낄 수 있었다.
손으로 집어 먹으며 입을 옹 다물고 이로 탱탱한 토마토를 탁 터뜨렸다.
오늘 하루는 다른 날보다 더 사랑스러운 하루가 될 거라는 확신이 내 마음에 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