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옆집에 사는 사람들
옆집에 사는 사람들의 얼굴을 본적이 있는가? 나는 있다. 그것도 아주 많다.
회사에서 준 오피스텔에 사는 우리는 옆집, 옆옆집, 아랫집에 산다. 다같은 오피스텔에 따로 또같이 다양한 성격들의 타지에서 온 이주민이 함께 살아간다. 같은 직장에 옆집들에 사는것은 꽤나 재밌는 일이 많이벌어진다. 얼마전 집에 귀뚜라미가 나와 거의 반실신이였다. 출근은 열두시인데 9시부터 화장실을 차지하는 녀석때문에 나는 식은땀을 뻘뻘흘렸다. 참고로 나는 극심한 벌레포비아이다. 진짜 벌레만 아니면 뭐든게 허용될정도로 나는 벌레가 너무 싫은사람이다.
그리고는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아니 얘가 어디서나온거야? 우리집에는 나올리가 없는데’
‘아 설마 스쿠터를 탈 때 따라온건가? 또 내어깨에 올라타서 나랑같이 드라이브를 즐긴거야 뭐야?’
‘아니 근데 얘 왜이렇게 벌떡벌떡 뛰는거야? 너가 곱등이인지 귀뚜라미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집중하자.’
9시에 그 아이를 발견하고 화장실문을 닫고나왔다. 갑자기 배가 알싸한게 신호가왔다.
그래 일단 화장실을 먼저해결하자!
오래참긴 힘들 것 같아 급하게 옆옆집 실장님네 문을 두드렸다.
“화장실좀써도될까요?”
실장님은 웃으며 편하게 쓰라고하셨다.
아침부터 뜬금없이 직장동료가 연락없이 문을 두드리는데 저렇게 인자하게 웃어주다니. 천사가 분명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나는 걱정이 쌓였다. ‘이제 출근할 시간이 되어가는데, 그러면 밥도 먹고 샤워도 해야하는데 어쩌면 좋을까.’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이가 먹어도 급할때는 엄마부터 찾는 내가 싫지만, 어쩔수없다.
물러날곳이 없었다. 철썩같이 믿었던 엄마는 단호하게 나보고 잡으라했다. 띠로리 띠로리로리 하는 슬픈 음악이 내 귀에 들려오는듯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도저히 무리였다.
당근마켓에 글을올렸다.
저희집에 벌레가 나왔는데 도저히 못잡겠어요,, 벌레잡아주실분 제발요,,라고 말이다.
총3명정도 답글이 달렸는데 어떤 사람이 ‘내가잡아주쿠다ㅋ’ 라는 답글을 달았다.
뭔말인지도 모르겠고 잡아준다는거 같긴했다. 제주도 어딘가의 사투리 같기도 했다.
심각한 상황인데 처음보는 말투에 웃겨서 진짜 웃긴데 슬펐다.
실장님이 출근하고 어느덧 10시가 넘어가는 상황 이제는 시간도 상황도 양보할 수 없었다. 옆집 매니저 언니에게 카톡을 했다. 이 언니는 아침잠이 많고, 전화는 실례라는 생각에 카톡으로 연락했다. 답장이 없어 1분에 1개씩 보냈다. 이쯤되면 사실 전화랑 비슷하다. 매니저언니도 벌레포비아다. 벌레를 볼때마다 둘다 괴성을 지르며 식은땀을 뻘뻘흘리는게 우리의 특기이자 취미이다. 잠에서 깬 언니가 상황을 듣고 일단 간다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나 같아도 눈뜨자마자 벌레를 잡아달라니 짜증이 날 것 같긴했다. 언니가 도착한 후 둘이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화장실문을 여는데 벌레가 없어졌다.
‘뭐지? 얘 그사이에 어딜 간 거야?’
진짜 당황스럽고 오히려 더 찝찝했다. 언니는 약간은 다행인지 긴장했던 얼굴이 살짝 너그러워지며 일단 간다고 했다. 그 표정에 묘한 안도감도 같이 섞여 있었다. 그렇게 기다리다가 갔나 보다 하고 샤워를 하는데 엉덩이 쪽으로 시선이 따가웠다. 돌아보니 벌레가 샤워실 뒤에 숨어있었다. 사람의 시선만 시선이 아니다. 벌레들만의 시선이 있다. 그 아이는 분명 등을 돌리고 있지만, 등으로 내 인기척을 느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 돌아보니 벌레가 샤워실 뒤에 숨어있었다. “아악!!!!” 하고 소리지르고, 급하게 화장실문을 닫아버리고는 옆집문을 두드렸다. 올 것이 왔다는 표정으로 매니저언니가 다시 나왔다.
우리는 30분동안 벌레를 통에 가두려고 쇼를 펼쳤다.
포비아둘이 쇼를 하는 중에 갑자기 벌레가 화장실을 나와 내 신발장으로 나왔다. 갑자기 뒷통수가 찌릿찌릿하며 내 두피 어디선가 소름이 쫙 돋았다 그때 진짜 두려웠다. 얘도 자기의 미래를 아는지, 물러설 곳이 없어 보였다.
한번 움직이는 순간 나는 침대로 도망가고 언니는 현관문을 뛰쳐나갔다. 제발 언니한테 돌아오라고 사정하면서 침대에 무릎을 꿇고, 진짜 많이 웃었다. 그리고 무서웠다.
사람이 왜 울다 웃다 하는지 몰랐는데 이 기회에 확실히 알았다. 그러다가 언니가 먹다 남은 과자통을 던져, 통 안에 가뒀다. 겨우 먹다 남은 쿠키통에 가둬서 비상구 계단쪽에 방생해줬다. 둘 다 포비아지만 죽이는 건 더더욱 싫어한다. 살려 보내서 뿌듯하지만 다신 만나지 말자.
다음번에 품앗이로 언니네집에 벌레가 나오면 내가간다고 약속했다.
사람들은 언제나 도움의 손길을 내밀면 굳세게 잡아준다. 육지에서는 뭐든게 갖춰서 있어서 그곳에선 남에게 도움을 청할일도 받을일도 많이 없다. 하지만 이곳은 다르다. 이 타지에서는 자꾸만 도움이 필요하게 된다. 그렇지만 겁 먹지는 말자. 생 남이라 안 도와 줄 것 같은 사람들도 거침없이 도움을 준다.
옆집에 살면 갑작스럽게 캠핑도가고 바다를 보며 고기를 구워 먹고 불꽃놀이도 하는 여행같은 나날들이 많다. 그래서 이 이주민으로 가득한 오피스텔에는 이주민끼리의 기분 좋은 부대낌이 가득하다.
회사에서 힘든 날 힘내라며 비오는 날 김치전을 부쳐서 나눠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제 먹던 치킨이 맛있어서 나누는 사람, 오므라이스를 맛있게 해주는 사람, 맛있는 과일이 오면 꼭 한번씩 맛 보여주는 사람, 새우튀김이 잘되었다며 나눠 주는 사람, 갑자기 엄마의 밥이 떠오르게 하는 사람들 등 갑자기 불쑥 찾아와 음식을 나눈다. 음식을 나눠주는 사람들의 마음엔 따뜻함이 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무한한 애정이 있다.
어쩌면 같이 이 치유의 섬이라 불리는 제주도라는 관광지에 돈을 벌러 온 이주민의 신분이라 더 서로를 챙겨주는 걸 지도 모르겠다. 말하지 않아도 같은 입장이기에, 어쩌면 서로가 자기를 보는 것 같아 안쓰러운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손들이 모여 또 다른 이름의 제주를 만든다. 그러니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다면 어디서든 망설이지 말고 도와달라고 내밀자. 누가 내게 도와달라하면 꽉 잡아주자.
나도 도움을 받았으니 매니저언니집에 벌레가 나오면 가야지. 가기 싫지만 가야겠지?
*제주에서는 원래 살았던 도민과 타지에서 온 이주민이 구분된다.
*제주의 당근마켓에는 별의 별 것들이 다 올라온다. 귤 나눔은 기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