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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송어 Dec 15. 2020

서른한 살, 집을 나오기로 했다.

가출 일기 1. 

"자기 자신을 사랑해 본 적이 없는 사람."


우리 아버지와 그 형제들을 설명할 수 있는 단적인 문장이다. 

그들은 가난했고, 그래서 치열해야 했다. 

그것은 그들의 생존 법칙이었을 것이다.

만족하지 않는 것. 스스로를 더욱더 몰아붙이는 것. 



그래서 아빠는

우울증 치료와, 

더불어 친구들의 무조건 지지로 자존감이 높아진 내게 묻는다. 




"네가 한 일이 뭐야?" 



그러면 나는 나 스스로를 매우 무용하고 무가치하게 느낀다. 

그러면서도 나는 필사적으로, 변명하듯

아빠가 내게 물을 때마다 내가 포기해야 했던 수많은 것들을 떠올린다. 










나를 아까워하지 않는 것은 오직 아빠뿐이다. 

내가 포기해야 했던 것들, 내가 갖지 못한 것들을 모르는 것은 아빠뿐이다. 


나는 한 번도 아빠에게 묻지 않았다. 

남의 집에서 눈칫밥 먹으면서 살면서, 

그것이 무엇이든 가격표를 먼저 확인하고 마치 한 번도 탐했던 적이 없었던 듯이 돌아서면서도. 

아빠가 나한테 해준 것이 뭐가 있냐고 물어본 적이 없다. 


허나 아빠는, 내게 묻는다. 

네가 나한테 해 준 것이 뭐가 있냐고. 



작년. 

서른 살인 나는 아빠를 입양하기로 했었다. 

부모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한 아빠는 나에게 좋은 아버지가 되는 것에 실패했고 

그가 내게 원하는 모습은 마치 부모의 모습이었다. 

나는 그것이 가슴 아파서 아빠를 아들처럼 여기기로 했다. 


그리고 서른한 살. 나는 집을 나오기로 했다. 


아빠는 내가 항상 당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의 모자란 점을 필사적으로, 병적으로 찾아냈다. 

그리고 그것을 모아 두는 스스로에게 굉장한 가치를 부여했다. 


"참아줬노라" 


하지만 그는 참아준 적이 없다. 

기회가 보이면 그 모든 것들을 내게 퍼부었다. 

그래서 아주 단적인 실수로도 나는 천인공노할 무뢰배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나는 아빠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려 노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는 당신이 무시당하는 가장, 힘없는 가장이라고 생각한다. 

어떻든 간에 아빠는 내 주변에서, 아마 당신 또래 중에서도 가장 존중받는 가장일 텐데도. 

당신이 당신 부모님을 대했을 때 보다 더 사랑이 가득하고 정중할 텐데도. 


그래서 생각한다. 


아빠가 생각하는 것보다, 아빠가 평가하는 것보다 나는 더 좋은 사람일 것이라고. 





나는 집을 나왔다. 급히 나오다 보니 돈도, 시간도, 여력이나 정신적인 여유도 없었다. 

그래서 도망치듯 애인의 집으로 들어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동거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내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주거형태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내 인생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엄마에게만 오늘 살짝 말해주었을 뿐 공식적으로 동기의 집에 세를 들어 사는 것으로 되어 있다.)



엄격한 아버지에 자애로우신 어머니. 

세상 사람들이 다 부러워하는 완벽한 우리 가정. 


엄마는 동기와 함께 살겠다는 내게  당신의 가정에 이런 일이 생길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말했고 

동생은 친구와 살겠다고 나가버린 내게 실망이라고 했다. 


그들이 만들어 놓은, 

그렇지만 그들 모르게 나의 희생이 녹아 있는 이 완벽한 가정에

애인과 동거를 하는 장녀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퍽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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