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퍼 을, 자영업자의 고군분투
내 가게가 있는 상가에는 벽이 없다.
공중에 매달린 작은 플라스틱 푯말. 그게 가게의 아이덴티티를 공식적으로 구분 짓는 전부다.
그러다 보니 가게가 비었을 때, 사람들은 플라스틱 간판에 의지해 주인을 찾고는 한다.
전화를 걸어서 주인의 소재를 물색하거나,
명함 대신 간판을 찍어가서 전화를 하기도 한다.
벽이나 명확한 경계가 없다 보니 새벽에 온 전화에 깨어보니 옆 집을 찾는 전화인 경우도 부지기수다.
이 전화가 가져오는 스트레스가 대단하다. 오죽하면 '퇴근 후 카톡 금지법'이 논의되겠는가.
그래서 나는 우울증이 생긴 후 전화기를 하나 더 만들었다.
그리고 '방해 금지 모드'를 이용해 업무 시간 외에는 자동으로 알림이 오지 않게 해 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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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렛을 입은 내게 가슴이 작다고 지적했던 고모는 (https://brunch.co.kr/@cherrysalmon/6)
같은 상가에, 10 보도 채 되지 않는 거리에, 같은 품목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남이라도 원수 질 상황이었지만 그는 당당했다. 싸움을 싫어하는 나의 아버지의 성향을 백분 이용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영리했다.
나처럼 밤잠을 설쳐본 경험도 없이도 번호의 무서움을 아는 모양이었다.
간판에 붙은 내 번호를 지워달라는 요청에도
"네가 받아서 넘기면 된다"
고 말하며 간판에 손대지 못하게 했다.
몇 개월을 축약해서 말하자면 그는 망했다.
다양한 핑계가 있었다. 아들이 아이를 낳았고, 원래 직업이 있었고...
하지만 한 문장으로 말하자면,
망했다.
그는 몇 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다른 친인척에게 가게를 넘겼다. 그때까지도 나의 번호는 조악한 종이 가림막에 가려 있었다.
새로 자리를 차지한 친인척은 그 가림 종이를 떼었다.
그러고는 간판에 있던 내 번호를 지웠다.
010-0000-0000
총 11자리의 숫자를 지우기가 귀찮았던 것인지. 숫자 세 개씩만.
물건을 향한 사람들의 집념은 대단하다.
가지고 싶은 물건이 있는데, 사람이 자리에 없으면 전화를 하기 마련이다.
가게가 비었을 때, 사람들은 플라스틱 간판에 의지해 주인을 찾고는 한다.
전화를 걸어서 주인의 소재를 물색하거나,
명함 대신 간판을 찍어가서 전화를 하기도 한다.
그래서 숫자 세 개가 빠진 간판을 들여다보고,
지워진 스티커 자국을 통해 번호를 찾아내서 전화를 건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게 주인이 그 11자리 숫자를 다 지우지 않았던, 그 노력을 들이지 않았던 것이 문제인 것이지.
손님들은 잘못이 없다.
그런데 내가 궁금한 것은 이 부분이다.
내 물건이 아니라고,
내 가게가 아니라고 설명을 하는데
왜
화를 내는가.
내가 다루는 물건은 300여 가지다.
둥글고, 투명하고.
그렇게 추상적인 묘사로 물건을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사진을 보내달라고 하는 편인데,
난생처음 보는 물건 사진을 보내는 경우.
[죄송하지만 저희 물건이 아니네요]
이렇게 답장하고는 한다.
내가 묻고 싶은 것은 이 문자에 화가 왜 나냐는 것이다.
내가 봤다, 뒤져서 나오면 어쩔 것이냐, 하고 따져대는 사람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오늘은 심지어 전화로 주인을 찾길래
"내 가게가 아니고, 조금 기다리면 주인이 올 것."
이라고 설명을 했는데도
나를 찾아내서 왜 해주지 않냐고 따지는 사람을 만났다.
공감은 지능의 문제라는 말이 있었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은 생각보다 뇌의 많은 영역을 이용해야 하고
지능이 떨어지는 사람은 공감이 더 어렵다고 한다.
내가 찾는 것이 없다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화가 나는 일일 수 있다.
내가 지능이 낮아서 그들에게 공감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상정해보자.
분노는 자기 방어를 위한 기제다.
그렇다면 제대로 된 데에 화를 내야 자기 방어가 되지 않을까?
(사실 자기 방어와는 관련 없는 사항처럼 보이기도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