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송어 May 17. 2023

눈물을 흘릴 특권

"엄마는 강한 사람이다." 


역설적이게도 엄마가 가장 약해진 이 시점에서, 

나는 비로소 이 문장이 생각나고서야 글을 시작할 수 있었다. 



얼마 전 외할머니가 방문해 또 눈물 바람을 하셨다. 

아이가 아픈 어머니의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사실 지금 가장 힘든 것은 할머니일수도 있다. 

내 아이가 아픈 엄마라니. 얼마나 비극적인가.


그러나 나는 할머니를 위한 마음이나 여유가 남아있지 않다는 핑계로 

할머니를 거세게 몰아붙인다. 


"할머니가 엄마인데, 엄마가 강하게 버텨야지 이렇게 우시면 어떻게해요." 


이것이 비단 할머니를 향한 말이었을까?


나는 떠오르는 단상들을 쫒아내듯 단호하게 엄마에게로 고개를 돌린다. 


눈물은 사치다. 

한 번 터진 눈물은 무엇으로 막을 것인가.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는, 탈출구 없는 이 긴 터널 속에서 

울기 시작하면 나는.

어떤 것에 희망을 가지며 눈물을 멈춰야한다는 말인가. 


나는 엄마를 향해 웃어준다. 


엄마를 간호하는 나의 모습은 강하고 단단하다. 

그 모습은 나의 엄마를 닮아있다. 


아빠가 암을 선고 받은 날. 

숨쉬는 법을 잊을 정도로 울던 나를 그 작은 등으로 가려주고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아빠를 안심시키던. 

일주일만 있어도 답답한 무균실에서 한 달 내내 아빠를 지키던.


나의 간호는 엄마의 사투를 닮아있다. 


나의 젊은 날이나 

신혼기간을 희생하기 때문이 아니라. 

눈 한 번 까딱 하지 않고 엄마의 용변을 처리하기 떄문이 아니라. 

그 하루 하루를 견뎌내는 모습이 

엄마를 닮았기 때문에. 

나의 사투는 엄마를 닮았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위안을 받는다. 




나의 결혼식날. 

엄마는 계속 울었다. 


글쎄 나는 이미 엄마와 살고 있었고 

앞으로도 엄마랑 살기로 되어 있었다. 

 

엄마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 앞에서 휠체어에 앉은 채로 울었고 

드레스를 입은 나를 보고 울었고 

입장을 하면서도 퇴장을 하면서도 

아무튼 내내 울었다. 



나는 엄마 앞에서 울 수가 없었다. 

엄마 앞에서 우는 법을 잊어버린 것 같았다. 

계속 우는 엄마와 힘주어 눈물을 참는 아빠의 앞에서 

그들을 바라보며 나는 계속 웃었다. 


나는 강했야 했고, 단단 해야했고, 울 수 없었다. 

울어서는 안됐다. 


그래서 내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우는 엄마가 

나는 기꺼웠다. 


당신에게 울 수 있는 버팀목이 된 것 같아서 

나는 그것이 기뻤다. 

작가의 이전글 서른 셋, 결혼으로 도망치기로 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