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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nji 린지 Jul 19. 2018

도토리가 없는 떡갈나무 ③

아직 열매를 맺지 못한 당신에게 들려주는 동화소설

도토리가 없는 떡갈나무 ③





어린 떡갈나무는 벌써 며칠을 잠들 수 없었다. 나이든 떡갈나무들이 수다스러워서가 아니었다. 

산속의 모든 생명이 숨 죽은 듯이 조용한 한 밤에도, 나뭇가지 사이로 스치는 바람조차 소리를 내지 않을 때도 잠을 잘 수 없었다. 


‘도토리가 없는 떡갈나무라니!’


어린 다람쥐의 목소리가 잊혀지지 않았다. 


‘도토리가 없는 떡갈나무다!’


어린 떡갈나무는 울음이 터졌다.           








어린 떡갈나무가 며칠 밤을 눈물로 지새운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밤에는 굵은 나뭇가지를 들썩이며 조용히 눈물을 삼켰으며 아침 해가 뜨고 나서야 몰래 잠들었다. 


나이든 떡갈나무들은 그런 어린 떡갈나무의 눈물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속닥거렸다.


“아주 점잖은 떡갈나무가 되겠어.” 


그 후로부터 어느 날, 어린 떡갈나무의 몸에 구멍이 생겼다. 

처음에는 곤충들 때문에 기둥이 간지러운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구멍의 안쪽 공간은 넓적한 떡갈나무 잎 한 장이 들어갈 만큼 제법 넓었다. 

가뜩이나 도토리도 없어서 서러운데 몸에 구멍까지 생겨버리고 나니 어린 떡갈나무는 더 슬퍼졌다. 


어린 떡갈나무는 해가 뜨기 전, 나이든 떡갈나무들보다 먼저 일어나 자신의 아래쪽의 나뭇가지를 늘여 뜨려 겉으로 보이는 구멍을 가렸다. 부끄러웠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자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던 어린 밤나무와 눈이 마주쳤다. 

둘은 화들짝 놀랐지만 태연한 척,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슬쩍 시선을 피했다. 

어린 밤나무는 괜히 미안해졌고 어린 떡갈나무는 창피함에 또 울고 싶어졌다.

마침 그날 낮에는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 내렸다. 

그래서 어린 떡갈나무는 처음으로 흐느끼며 울 수 있었다.                    













어린 다람쥐는 새벽부터 땅에 떨어진 도토리를 줍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단 한 곳, 어린 떡갈나무 근처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곳은 어차피 도토리가 없을 테니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며 어린 다람쥐는 키득거렸다. 

양 볼이 빵빵해지도록 도토리를 물고 커다란 돌 틈 땅속에 있는 도토리 창고에 차곡차곡 저장해 놓았다. 이제 몇 번만 더 움직인다면 겨우내 먹을 식량은 걱정 없을 정도였다. 


신이 난 어린 다람쥐가 마지막으로 저장해 둘 도토리 두 개를 물고 창고에 도착했을 때였다. 

아뿔싸!

창고가 텅텅 비어있는 것이 아닌가?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오래 생각하지 않아도 알아챘다. 

창고가 파헤쳐진 모양새로 보아하니 욕심쟁이 청솔모의 짓이 틀림없었다. 

어린 다람쥐의 소식을 들은 어른 다람쥐는 단숨에 달려와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어린 다람쥐에게 말했다. 


“그러길래 청솔모에게 그렇게 못되게 굴지 말았어야지.”


“그동안 어떻게 모은 도토리인데!”


“덩치만 크고 털도 엉켜있는 못난이라는 말을 듣고 그 청솔모가 얼마나 날뛰었는지 기억은 하는 거니?”


“사실인걸!”


“어떤 사실은 말하지 않아도 돼. 결국 이렇게 되었잖니.”


“냄새도 지독했어! 하지만 그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고!!!”


어린 다람쥐는 씩씩 날뛰었고 어른 다람쥐는 고개를 저었다. 


“다시 차곡차곡 모으도록 해. 곧 겨울이 온다고. 서둘러야 해.”


어린 다람쥐는 겨울이 곧 온다는 말을 듣고 다급히 도토리를 다시 모으러 뛰어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어른 다람쥐는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 청솔모 녀석, 네가 도토리를 숨길만한 곳은 다 꿰뚫고 있을 텐데······.”     








어린 다람쥐는 청솔모가 자신에게 한 짓을 나무들에게 낱낱이 일러바치기로 마음먹었다. 첫 번째로 들린 곳은 바로 나이든 떡갈나무들이었다. 


“글쎄 제 도토리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어요. 정말, 정말, 정말이지 청솔모는 세상에서 제일 못된 녀석일 거예요!”


“거봐, 내가 뭐랬나.”


다람쥐의 말을 듣자마자 한 그루의 나이든 떡갈나무가 먼저 맞장구를 쳤다. 


“우리한테는 도토리를 얻으려고 갖은 아양을 떨던데.”


“결국 이렇게 됐지.”


“결국 그렇게 되어버렸구먼.”


나이든 떡갈나무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 반응에 어린 다람쥐는 제 편이 생긴 듯 으쓱해졌다. 


“청솔모가 오거든 절대 도토리를 내어주지 마세요!”


“하지만 그건 어렵겠는걸.”


“왜요? 도대체 왜요?”


“청솔모 녀석이 도토리를 가져가기 때문에 또 다른 떡갈나무가 자라나거든.”


“우리들은 식구가 많아지는 걸 좋아하지.”


“떡갈나무들은 함께 모여 사는 것을 좋아하니까.”


“청솔모 녀석이 묻어둔 도토리를 잊어버려 준다면 오히려 우리가 고맙지.”


“그 녀석은 가끔 내 밑동 근처에 묻어 둔 도토리도 잊어버린다니까.”


나이든 떡갈나무들은 껄껄거리며 웃었다. 


“거봐요. 멍청하다니까요.”


“너도 묻어둔 곳을 가끔 잊어버리잖아?”


“맞아. 너도 그렇지?”


“그럴 수도 있지. 너는 참 부지런하게 움직이니까.”


“부지런함과 기억력은 별개일 수도.”


어린 다람쥐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니에요! 저는 아니라고요!”


나이든 떡갈나무들의 짓궂은 농담에 어린 다람쥐는 뾰로통해지더니 도토리를 챙기는 것도 잊은 채 부리나케 도망갔다. 


“멍청한 건 청솔모예요! 저는 다 기억한다고요!”


소리치며 밤나무들 쪽으로 달려가는 어린 다람쥐의 뒷모습을 본 나이든 떡갈나무들은 그 모습이 너무나 귀여워서 또 한 번 껄껄거리며 웃었다.      







밤나무들이 있는 곳에 다다른 어린 다람쥐는 다시 청솔모를 험담하기 시작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밤나무들은 청솔모가 밤을 가지러 오면 단단히 혼쭐을 내어 일러두겠다며 어린 다람쥐를 진정시켰다. 어린 다람쥐는 그제야 진정한 제 편이 생긴 것 같아 안심되었다. 

어린 다람쥐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고 있던 어린 밤나무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얘, 어린 다람쥐야. 그럼 이제 어디다 숨겨둘 생각이야?”


그렇다. 다른 문제가 남아있었다. 

이제 청솔모가 절대 모를 곳에 식량을 숨겨두는 일이었다. 어린 다람쥐는 아차! 싶었다. 작은 앞발을 꼼지락거리며 고민하자, 어린 밤나무는 어린 다람쥐에게 무언가를 알려주듯 속닥거렸다. 








[4편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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