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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니 Jun 11. 2024

싱그러운 초여름, 백미리

초여름의 숨결, 백미리의 여유를 걷다.

80년대, 화성시의 작은 시골 마을. 그곳의 초등학교 소풍날은 언제나 특별했다. 학교 앞에 자리한 서봉산은 아이들과 마을 어르신들의 놀이터였다. 소풍날이면 동네 할머니들은 손주들의 손을 잡고 함께 모여 꽃놀이를 즐겼다. 그 풍경은 내 초등학교 시절의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어린 시절, 서봉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서쪽을 바라보며 바다를 찾던 나의 모습이었다. 어르신들은 맑은 날 서봉산 정상에서 서해바다가 보인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바다를 실제로 보고 싶었던 나는 서봉산의 가장 높은 곳에 올라 바다를 찾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때 나는 화성시에 바다가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세월이 흘러 성인이 된 나는 우연히 화성시에 서해를 끼고 있는 백미리 마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백미리 마을은 그 이름이 고운 모래로 덮인 갯벌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백미리의 갯벌은 고운 모래와 깨끗한 바닷물로 유명했다. 운전을 배우고 나서는 바다가 보고 싶을 때마다 백미리로 드라이브를 가곤 했다. 그 시절의 백미리는 조용한 어촌 마을이었다. 백미리는 여전히 전통 어업 방식과 어촌 문화를 잘 보존하고 있으며, 마을 주민들은 이를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엄마의 팔순 생신날, 고모와 작은엄마, 작은아버지를 모시고 백미리로 드라이브를 떠났다. 바닷길과 노란 꽃들 사이로 창문을 열고 바닷바람과 꽃향기를 맡으며 우리는 음악을 크게 틀고 드라이브를 시작했다. 아침 햇살이 살포시 내려앉은 백미리는 분주한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진정한 휴식을 찾고자 하는 이들에게 더없이 좋은 장소였다.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넓게 펼쳐진 갯벌이었다. 어르신들은 연신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청하셨고, 나는 핸드폰 셔터를 누르며 웃음을 터뜨렸다. 백미리 어촌 마을에서 시원한 연포탕과 해물파전으로 배를 채우고, 갯벌 체험을 위해 장화를 신고 갯벌로 나섰다. 발밑에서 느껴지는 진흙의 감촉이 오랜만에 자연과 하나 된 기분을 들게 했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조개를 캐고, 게를 잡으며 아이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조용한 갯벌에서 들리는 파도 소리는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었다.

갯벌로 향하는 기차

백미리의 바다는 내게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는 인생의 굴곡을 닮았고, 넓게 펼쳐진 수평선은 나의  미래를 상징했다. 조용했던 백미리는 이제 갯벌 체험객들로 북적이지만 이곳에 갈 때마다 나는 어린 시절의 순수함을 다시금 떠올리곤 한다.



             

아버지의 빈자리가 허전하지만,  아무튼 최씨네 어르신들

서봉산의 추억과 백미리의 바다는 내 삶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어린 시절 서봉산에서 바라보던 꿈은 이제 백미리의 바다에서 현실이 되었다. 때로는 혼자, 때로는 가족과 함께 찾는 백미리는 여전히 나에게 쉼과 힐링을 제공한다. 화성시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 나의 이야기는 백미리의 바다를 배경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서봉산에서 보지 못했던 바다는 이제 내 마음속에서 언제나 푸르게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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