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후문에서 기다리는 엄마
학교 후문은 아이와 내가 제2의 하루를 시작하는 곳이다.
아이가 학교 수업을 마치고 내 품에 안기는 순간을 기다리는 것은 언제나 설렌다. 학교 후문에서 ‘엄마’ 하며 배시시 웃는 아들이 반가워 꼭 안아본다. 맑은 하늘 떠 있는 솜사탕 같은 구름을 살포시 껴안은 것처럼 포근하여 내 마음도 둥실 떠오른다. 내가 휴직하지 않았다면 이 기분을 느낄 수 없었겠지.
새 학기가 시작하는 3월,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이 하교하는 시간의 학교 후문은 마치 수능 시험장을 방불케 할 만큼 인산인해를 이룬다. 나는 그 속에서 아들이 나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한 최고의 명당자리를 선점한다.
이것도 눈치싸움이다.
담임선생님의 인솔에 따라 삐약이들이 두 줄로 줄지어 나온다. 아이들을 마중 나온 엄마, 조부모님들은 내 아이들 찾는다고 손도 흔들고 바쁘다. 학교 담벼락에서는 태권도장 사범님들이 출석부를 가지고 아이들 얼굴과 이름을 대조하며 아이들을 하나둘 데려간다.
우리 큰아들 1학년 때는 할아버지가 데리러 오시거나, 학원 차를 타고 떠났겠지. 그때 내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 없지만, 다시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초3 큰아들 하교 시간에도 부지런히 학교 후문으로 향한다.
하루 두 번 ‘퐁당퐁당’ 학교 후문 지키기. 나는 첫째 아들 초3, 둘째 아들 초1에 휴직했다.
나는 학교 후문에 서서 아이를 기다린다.
“배고프지, 이거 먹어. 엄마가 구워왔어.”
이게 또 학교 후문에서 아이 기다리는 엄마의 사랑 표현이 아니겠는가. 지퍼백에 담아놓은 따끈하게 구운 식빵 러스크를 보여준다.
맛있다고 엄지를 척 올릴 줄 알았는데 이제 지겹단다. 그래 자주 만들긴 했지. 역시 쉽지 않은 녀석이야. 아이 하교 시간에 맞추어 간식을 만들고 건네는 순간까지만 뿌듯한 건 내 몫이다.
그래도 조잘조잘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주니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방금 학교에서 갓 나온 따끈한 이야기.
신나는 이야기는 바로 공유해야 제맛이다. 학교나 학원을 마치고 돌아온 아이는 엄마를 만나자마자 그날의 에피소드를 풀어놓는다. 바로 이 순간에 아이와 함께 있다는 것은 참 소중하고 행복하다.
학교 후문에서의 흥분과 신남은 시간이 흐르면서 사그라든다. 나도 몰랐던 이 사실을 아빠는 더 모르겠지. 하루의 절반이 훌쩍 지나 저녁이 되어 아빠가 퇴근하고 돌아오면 사실할 이야기는 별로 남지 않는다.
아빠가 현관문에 들어서는 순간, 오늘 하루 최고의 이야깃거리를 전하려고 애쓰는 아이들 모습이 이제는 내 눈에도 보인다. 저 이야기는 아빠가 손뼉을 치며 들어줘야 하는데, 아빠는 그것도 모르고 옷 좀 갈아입고 이야기하자고 한다. 그 모습을 보니 옛날 내가 떠올랐다. 나도 ‘엄마 설거지 끝나고 얘기해 줘’라고 말했으니까.
아이들이 작게나마 꺼내는 말 한마디에는 다 이유가 있다. 그러니 바로 들어주자. 조금이라도 나의 기쁨과 슬픔을 나누고 싶다는 메시지다. ‘어머니, 아버지, 소자 할 말이 있사오니, 여기 앉아보세요.’라고 진지하게 말하는 아이는 없다.
“그런데 엄마, 우리 어디 가.”
하교 후에는 도서관 가는지 알면서 물어보는 둘째. 도서관 가는 것에 부담이 없는 첫째 아들과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혹시 오늘은 도서관 말고 다른 곳을 가고 싶었을까. 엄마 책 빌리러 간다는 구실로 라도 매일 데리고 다니려고 노력한다.
도서관이 지겨운 둘째는 항상 오늘만 쉬자고 말한다. 나를 사르르 녹이려는 장화 신은 고양이의 맑은 눈망울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이제 나만의 특수 기술을 꺼낼 차례다.
“도서관 가는 길에 간식 사 먹을까.”
‘은근슬쩍 말 더하기’ 기술이다. 당연히 도서관에 가는 것이고, 간식은 사줄 수 있다는 1+1 엄마의 말 기술.
아주 자연스럽게 목소리에 힘을 빼고 의도하지 않은 듯 무심히, 그러면서 다정한 목소리로 이야기해야 효과가 있다. 얼굴을 보면서 얘기하지 않고, 가볍게 툭. 제발 도서관에 가자고 애원하지 않는다. 우리가 도서관에 가는 건 변함이 없고, 다만 네가 원한다면 간식을 사주겠다는 ‘은근한 밀고 당기기’이다.
도서관 가는 길에 초록마을 가게가 보인다. 도서관 유인책으로 종종 쓰는 수법인데, 슈퍼에 가서 간식을 사서 가자고 유혹한다. 엄마는 합리적인 제안을 했고, 이젠 너의 선택만 남은 것이다.
“우유 먹고 갈래?”
라면 먹고 갈래와 비슷하다. 둘째는 집에 우유가 있는데도 마트에서 파는 작은 우유 사는 것을 좋아한다. 학교 급식으로 나오는 200mL 우유를 오랜만에 만난 친구 대하듯 반가워하며 꼭 사달라고 한다. ‘내가 우유 팩 입구를 엄청나게 잘 열거든. 오늘은 잘 안되지만’ 그 자리에서 스스로 우유 팩을 까면서 자랑도 한다. 1학년 형님의 위풍당당함을 보여준다.
오구오구 그래, 우유 마시면서 도서관 가면 되지. 이렇게라도 도서관 문 앞까지 가면 된다. 단둘이 길을 걷고 도서관을 다니다 알게 된 아이의 취향도 사랑스럽다.
3년이 지나 우리의 방앗간 노릇을 했던 초록마을은 없어지고 그 자리에 제과점이 들어왔다. 지금도 둘째는 제과점을 지날 때면 ‘엄마랑 저기서 우유도 사 먹고 도서관도 자주 갔었는데, 그때 아주 조금 재미있었어. 우유 사 먹은 것 말이야.’라며 추억을 회상한다. 학교 마치고 도서관 가던 날의 평가가 약하긴 하지만 다행이다. 자연스럽게 도서관 다닌 기억만 있어서. 우유만 달랑 사 먹고 집으로 돌아가자며 내 손을 잡아끈 건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졌나 보다.
도서관 가는 길에 소소한 행복이 남아 있고 어른이 되어서도 떠올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이렇게 독서에 한 걸음 다가서는 것이다. 학교 마치고 도서관 가던 길, 솜사탕 같은 첫째와 둘째가 있어 행복했던 어느 평일의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