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감에 대하여
주공아파트 4층 404호.
어린 시절 우리 집은 지방의 낡은 주공아파트였다. 저녁놀 질 무렵까지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흙놀이를 하고 있으면 엄마가 길게 소리쳐 부르곤 하셨다. "밥 먹어라~ 네가 좋아하는 계란말이 해놨다."
5층까지 있었던가? 기억조차 희미한 작고 낮은 아파트였다. 페인트칠이 군데군데 벗겨져있는 낡은 아파트는 똑같이 복제되어 각을 잡고 서 있었다.
일요일 오전이 되면 물청소를 하느라 온 계단이 물바다가 되곤 했다. "쓱쓱 싹싹" 플라스틱 비로 계단을 쓸어내리는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선명히 맴돈다. 하필이면 그때가 교회 가는 시간이었다. 발끝으로 살금살금 걸어서 물이 최대한 신발에 묻지 않게 조심했지만 항상 젖었다.
정월대보름이면 온 동네 아이들이 깡통에 구멍을 내고 철사로 손잡이를 길게 달아 불통을 만들어 불을 놓고 빙빙 돌리며 놀았다.
옆 동에 사는 동기형의 고무동력기는 항상 높게 멀리 날았다. 내가 만든 고무동력기는 제대로 날지 못했는데, 알고 보니 동기형은 아버지가 대신 만들어준 것이었다.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동기형의 아버지가 내 고무동력기를 매만져 줬던 거 같다. 나는 자상한 아버지를 가진 동기형이 늘 부러웠다.
유년시절의 추억이 소복하게 쌓여있는 그곳은 정겹고 안락한 보금자리였다. 작은 아파트 단지가 나의 모든 세상이었다. 만만한 높이, 넓고 여유로운 공간, 때 묻은 담장이 아직도 그립다.
주공아파트는 멋진 독수리 문양이 있는 '성'이라는 브랜드 아파트로 '재건축'되었다. 당시 나는 길 건너 주택가에 살았는데, 주공아파트가 사라진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았다. 건물이 무너질 때 마치 내 안에 일부도 같이 바스러지는 것 같았다. 동네 뒷산으로 올라가 주공아파트가 무너지고 '성'이 쌓이는 것을 몇 번이나 지켜보았는지 모르겠다. 어머니는 다른 의미로 한탄하시곤 했다. 끝까지 가지고 있어야 했다고 말이다. 그게 지금은 억 소리 나는 아파트가 되었다고 하셨다. 그땐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대리석으로 치장된 성의 정문은 화려하고 웅장했다.
혹시나 하고 몰래 들어가 보니 얕은 동산도, 듬성듬성 있던 풀들도, 우둘투둘하게 낡은 보도블록도 다 없어졌다. 그놈들은 고개를 위로 한껏 추켜올려야 보였다. 하늘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빼곡히 들어선 것이 점령군 같았다. 새 아파트 단지 안을 걸어 다니는 사람들은 세련돼보였다. 마치 새 아파트처럼.
철저하게 삭제된 주공아파트를 확인하고 더 이상 있을 수가 없어서 도망치듯이 정문을 빠져나왔다.
나의 "주공아파트"는 이제 없구나. 그 이후로 그 '성'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지방으로 발령이 났다. 회사는 신축 주공아파트를 사택으로 내어 주었다. 이제는 주공아파트가 아니라 휴먼시아라고 부른단다. 그래서 휴먼시아로 가자고 하니, 연로한 택시 아저씨가 짜증을 내며 쏘아붙인다. "앞으로는 행선지 말할 때 00동 주공아파트라고 말하세요. 그렇게 얘기하면 못 알아들어"
그렇구나, 주공아파트구나... 묘한 설렘을 가지고 단지로 들어서니 멀리서 낯익은 로고가 보인다.
그래, 휴먼시아라도 주공 낙인이 찍혀 있으면 주공아파트지... 그런데 이상하다. 나름 신축이라 그런지 주공아파트 아니, 휴먼시아는 꽤 높아 보인다. 옛날과 다른 높이다.
단지에 들어서니 기분이 더 이상하다. 전체적으로 낡고 관리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며, 쓰레기도 잘 보이게 널려 있고, 주민들의 행색도 추레하게 느껴진다. 단지 내 편의점에 진열된 물건들이 낡고 먼지가 쌓여 있다. 저녁 늦게 들어온 고등학생들이 슬리퍼를 질질 끌며 상스러운 말을 한다. 껄렁하다.
주공아파트는 더 이상 안락하고 포근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자꾸만 얼마 전에 이사한 서울의 깨끗한 신축 아파트가 생각난다. 주말마다 서울의 아파트에서 지방의 사택으로 내려오면 마치 사회적 계급이 수직으로 추락한 것 같은 기분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내가 몸서리치게 싫어진다.
30년의 세월속에 아이는 어디 가고 중년의 남자만 남았구나.
주공아파트가 없어졌다고 울던 아이는 이제 없다.
오늘은 이상하다. 별거 아닌 일인데, 눈물이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