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치고 싶은 문장이 있는 소설
나는 저녁이 찾아오는 고즈넉한 시간을 사랑한다. 대낮에는 구름이 물결처럼 밀려오거나 목화솜처럼 피어나거나 설산처럼 솟구친다. 하지만 고요한 해거름이 다가오면 가만히 멈춘 듯이 보인다. 그리고 가끔 그 바닥은 두두룩한 두둑과 고불고불한 골이 생겨서 하루의 마지막 볕을 받을 채비를 한다. 서쪽 능선 너머로 가라앉던 햇발을 받고 보다 높은 구름은 부푼 듯이 투명해지고 보다 낮은 구름은 어두운 연기처럼 가라앉는다. 이럴 때의 고요한 하늘은 지구라는 생명이 명상에 잠겨 든 내면의 풍경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이어서 해를 둘러싼 구름과 공기가 날달걀인 듯이 부드럽게 풀리다가 황혼이 석류처럼 불그스레 번져간다. 그리고 색채들이 고요한 대기에 거무스름한 잿빛으로 잦아들면 땅거미 지는 어스름 녘의 풍경이 나를 감싸는 것이다.
-소설 '중력'에서 발췌-
연구원 다닐 때 너는 승진이니 미리 알고 있으라고 귀띔받은 간부들은 마음이 어땠을까? 비밀을 함께 지니는 일은 아웃사이더를 갈라낸다. 모를수록 밀려나고 미끄러지고, 내가 맨 나중 인지도 모르는 채로, 그런 비밀을 누군가에게 나직하게 말해주다 보니 슬그머니 나를 얕잡아보던 상대의 비웃음이 기억난다...... 그걸 이제 알며 어떡해? 이런 일들은 나에게 낯설지 않다.
-소설'중력'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