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낭비하는 가장 쓸데 없는 일

쓸데없이 진지한 일기

by 김패티

'시간을 낭비하는 가장 쓸데없는 일이 뭐라고 생각하니?'

지난 해 2월부터 시작된 강의 연기나 폐강. 처음엔 2, 3주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하며 아무것도 의심하지 않았어요. 그러나 다시 2주, 또 다시 2주 그러다 마침내 무기한으로 개강이 연기되더군요. 그 사이 봄이 지나갔습니다. 시간은 대책없이 흘렀습니다. 차라리 강의가 취소되었다 알려오면 마음 편히 놀거나 다른 계획을 세울 수 있을 것도 같았어요. 하지만 대책없이 연기한다는 연락은 일상을 애매하게 했어요.


처음엔 남는 시간도 좋았습니다. 나는 예전부터 혼자 잘 놀았다고 믿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요. 슬리퍼 차림으로 카페에 가서 독서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던 지난날처럼만 할 수 있었어도 덜 힘들었을 것 같았어요. 날마다 출근하는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널널한 시간 보내기가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어요.


뭔가 해보자, 계획을 세워보자 해서 읽지 못했던 책을 읽어보자고 시간 쓸 궁리를 해내었을 때는 도서관도 문을 닫았습니다. 박물관, 미술관이 차례로 문을 닫았습니다. 마치 타지 못한 놀이기구가 남았는데 폐장 시간 임박해 뒷문부터 단속해오는 놀이동산에서 조급해하는 아이 기분이었어요. 사서 보기로 하고 그동안 적어 놓았던 책을 한꺼번에 주문했지요. 목적이 있는 책 읽기가 아니다 보니 읽고 싶은 책에 대한 마음이 자주 바뀌었어요. 그렇게 사놓고 읽지 않은 책이 쌓여갔어요. 하루 한 권씩 주문서를 넣기로 방법을 바꿨습니다.

주체하지 못하는 시간을 당황스러워 할 때 연락이 왔어요. 원래 대면 강의로 진행하기로 했던 글쓰기 수업을 기다리던 몇몇 학습자들이 온라인으로 수업을 열어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해보지 않은 것이어서 망설여졌지요. 그들은 대놓고 아예 방식을 정해서 요청을 했어요. 한번 글쓰기 공부를 해보니 결국 글을 쓰는 것이 관건이더라며 글을 써서 이메일로 보내면 첨삭을 해서 에메일로 답장을 달라는 구체적인 방법까지 제시했어요. 그렇게 온라인 강의가 시작되면서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이메일을 확인하게 했습니다.


온라인 글쓰기 수강자 중에는 대면수업에서라면 만나기 어려웠을 사람들도 있었어요. 코로나로 락다운 된 이국에서 동굴에 갇히다시피 지낸다는 젊은이들, 여수와 구미, 경주 등 지방에 사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특히 싱가포르에서 지내는 이는 자신의 근황을 알리며 힘든 시간을 견디는 것 같았어요. 힘든 사람이 많더군요. 그게 참, 역설적으로 위안이 되었어요. 힘든 사람에게 뭔가 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바뀌었어요.


예상치 못한 경험을 식구들에게 이야기했어요. 모두들 말을 하지 않았을 뿐 조심스럽게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말수가 줄어드는 게 역력했고, 너무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것도 걱정스러웠다고 했어요. 나도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 종종 있기는 했습니다. 좀처럼 낮잠을 자지 못하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피곤했고 낮잠이 쏟아지는 겁니다. 식구들은 강아지를 입양해서 내게 무언가 돌봐야 할 대상을 만들어 주어서 억지로라도 무기력한 구간을 넘어가도록 하는 게 어떨까 의논했다고도 하네요. 친구처럼 자식처럼 지냈던 강아지가 죽은 뒤 허망함을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아서 강아지를 기르지 않으리라 선언을 했었는데, 귀가 솔깃했습니다.



온라인 글쓰기 수업은 나에게 새로운 활력이 되었습니다. 남의 글을 읽으며 나도 글을 썼어요. 읽고 싶은 책도 생기더라고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내가 이상한 일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큰 욕심 없이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것도 책이라고 낸다면 나무가 아깝다’고 속으로 흉을 보았던 K가 또 책을 냈고, 유튜브 강의도 개설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부터인 것 같아요. 내가 시간을 떠내려 보내고 있는 동안 그렇게 쓸모있는 시간을 보낸 사람도 있었어요. 책을 주문하러 웹사이트에 들어갔다가 K의 책이 팔리는 지수를 확인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얼마나 당혹스러웠는지. 남의 성과를 질투하는 내가 나도 어색하고 불편하고 어색했아요.

그러다 내가 블로그나 브런치에 올린 글에 모르는 사람이 찾아와 ‘좋아요’를 누르기도 하고 ‘구독’한다고 하는 것을 보니 신이 나기도 했어요. 나도 별수 없는 관종이었어요. 혼자놀기의 명수는 커녕, 나도 인정욕구에 시달리는 사람이었던 거예요.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찰리 맥커시)에는 제목처럼 네 명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소년이 차례로 두더지와 여우와 말을 만나서 줄거리 없는 이야기를 주고 받는 것이 줄거리라면 줄거리입니다. 두더지와 함께 가던 소년은 덫에 걸려 꼼짝 못하는 여우를 만납니다. 여우는 이빨을 드러내며 사납게 으르렁 거리지요. 덫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죽게 될 텐데, 그래도 그렇게 으르렁 거리겠느냐면서 쇠덫을 갉아서 여우를 구출해 줍니다. 타인에게 상처를 받은 트라우마 때문에 여우는 아무도 믿지 못했던 것 같아요. 소년은 말합니다. "우리가 어떤 일에 어떻게 대처하는가,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가진 가장 큰 자유야."


코로나가 억지로 가져다 준 넘쳐났던 시간을 돌아봅니다. 그 시간을 모두 허비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러나 가지고 있다고 다 내가 누리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맞닥뜨린 일에 어떻게 대처하는가,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데, 그 자유를 자유롭게 누리지 못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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