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한 H에게

쓸데없이 진지한 일기

by 김패티


H가 보내온 글을 읽을 땐 언제나 '성실'이라는 단어가 생각났어요.

글에 담긴 H의 시간도, 글을 쓰는 H의 태도도. 그것들을 표현하는 말로는 '성실'말고는 더 좋은 말을 찾지 못하겠어요. '성실', 교실 급훈으로 하도 많이 봐서 흔해 빠지고, 근면성실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겼던 사람들이 쓰고 또 써서 닳아빠진 말이지만, 나는 글을 쓰는 H를 표현하는 데 이보다 더 알맞은 말을 찾지 못하겠어요.



매일 아침 눈을 뜨면서 열어보는 메일함에는 아직 열지 않은 메일 첫 번째가 H의 메일이었어요. 월화수목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보내오는 메일에 이제 내가 길들여졌어요. 그러다 하루 이틀 메일이 오지 않기 시작한 날이 지난달부터였어요. 처음엔 하루나 이틀, 그러다 어느 때는 한 주 내내 아무런 반응이 없을 때도 있었지요. 메일을 기다린다는 메일을 보낼까 망설이다 그만두고는 했어요. 내가 H에게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이 메일 하나뿐이었다는 게 차라리 나았어요.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작가, 언젠가 H가 먼저 말했던 작가 이슬아는 일찌감치 <일간 이슬아>를 통해 글쓰기란 부지런하지 않으면 안 되며, 게다가 그것을 사랑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란 것을 일찌감치 일아버린 것 같아요. 매일 일정한 시간에 밥이 되든 죽이 되는 글을 써냈다는 것만으로도 작가 이슬아의 부지런함은 인정받아 마땅해요. 그 경험에 대해 "지금은 재능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꾸준함 없는 재능이 어떻게 힘을 잃는지, 재능 없는 꾸준함이 의외로 얼마나 막강한지 알게 됐다."라고 하더라고요.

동의해요. 꾸준함이야말로 최고의 재능이니까요.



H가 마지막으로 보내온 글 속에서 '몇 가지만 언급해도 그에 대한 전체 이미지는 그릴 수 있다.'는 표현을 읽으며 나는 단박에 알았어요. 뒤에 올 어떤 말을 읽지 않아도 H가 그리는 이미지를 그릴 수 있을 것처럼 느꼈거든요. 지난겨울, 그러고 보니 계절이 여러 차례 바뀌어 이제 다시 올 겨울도 멀지 않았어요. --- 우리가 얼굴도 모르는 채 이메일을 통해 글을 주고받았던 그 사이, 나는 H가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말을 고르고 부리는 스타일을 알게 된 것 같아요. 보내온 글에 이름을 지우고 제목을 지워도 나는 H가 쓴 거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가 되었어요. 그런데 H가 보낸 마지막 메일에서 '이미지는 그릴 수 있으나 그 속까지 다 알 수 없었다'는 표현에서는 나도 같이 할 말을 찾지 못해 먹먹해졌어요. 무엇이든 H에게 들려주어야 할 말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그 말을 찾지 못해 한참을 애먹었지만 한 마디로 뭐라 할 수 없었어요. 그게 오늘 내가 이 메일을 쓰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간단명료한, 사이다 같은 한 마디로 시원하게 해 주지 못하는 나의 한계가 이렇게 긴 글을 쓰게 했어요.



매번 H가 보내온 글에 코멘트를 달며 나는 할 수 있다면, 보여줄 수 있다면, 글로 다는 코멘트로 못하는 반응을 풍성하게 보내고 싶었어요. 눈썹을 올렸다 내렸다,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감았다, 입가의 꼬리를 올렸다 내렸다 하며, 그리하여 내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가 얼마나 이 글을 열심히 읽는지를 짐작할 수 있을 만큼요. 그럴 수 없으니 최대한 지적보다는 따뜻한 말을 더 많이 글로 전하려고 했어요. 마지막 글에는 이전에 못다 한 칭찬까지 모두 포함해서 쓰고 싶었고요. 글 한 편을 완성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잘 알기에, 그 노력을 헤아림 받고 싶은 때가 나도 많았기에. 하지만 마지막 글에 코멘트를 달아 이메일 보내기를 누르고 나서야 해 줄 말을 더 많이 쓰지 못했다는 생각을 했어요.



돌아와도 되느냐고요? 그럼요. 언제든 돌아와도 좋아요. 돌아오면 좋지요.

새 달엔 새로운 사람이 H의 자리를 대신하겠지만 나는 아무래도 스타일을 아는 사람의 글이 더 좋아요. 그 사이 '아' 하면 '어'까지도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소통의 방법에도 길이 들었을 테니까요.

그렇지만 오는 새로운 계절엔 새로운 사랑을 새로 시작하는 것도 좋지요. 아니 그게 더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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