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텐이 터진다는 것은

코로나 일기

by 김패티


고요한 시간이 많아졌다. 코로나 때문인데 덕분에 별별 책을 닥치는 대로 읽고 있다. 이전에는 주로 일을 하는 데 필요한 독서를 했다면 요즘은 읽고 싶은 책을 읽는다. 쫒기지 않아 완보하듯 읽으니 이전에 안 보였던 것들도 보인다. 손에 잡히는 대로 마음이 끌리는 대로 읽지만 결국 관심이 있는 분야의 책이 먼저 눈에 띄고 읽게 된다. 일 때문에라도 어지간히 사 읽은 글쓰기 관련한 책, 더 사 보지 않아도 되겠다 생각했다. 글쓰기 공부에 필요한 것은 다 나왔는데, 거기에 내가 보탤 것도 없는데, 뿐만 아니라 결국 써야 쓰는 것이고 그래야 내 생각이 만들어지고 내 스타일도 찾게 될 테니까 했지만 글쓰기 책을 또 사고 말았다. 다분히 즉흥적이다.


글쓰기에 완고한 원칙을 가졌던 적이 있다. 1990년대 초반이었을 것이다. 이오덕의 <우리글 바로쓰기>(전5권)을 읽고 충격을 받았다. 그동안 쓴 글이 '병신같은 소리'이거나 그 언저리였다니! 당시 나는 웃음 대신 미소라는 말을 자주 썼다. '겨레말'을 쓰자는 주장에 깊이 공감하여 노력해보았지만, 선생이 제시산 방법대로 글을 쓰기는 어려웠다. 특히 일본에서 만들어진 한자말을 쓰지 말자고 하는데 그건 불가능햇다. 한국어로 출간된 책들도 일본에서 만들어진 한자말을 많이 쓰고 있었다. 그랬기에 글을 쓰면서도 늘 원칙을 지키지 못한다는 죄책감이 있었다.

1990년대 말에 언어학을 공부하고 나서야 이오덕의 '자로 쓰기'는 실천 불가능한 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세상에 고유어(겨레말)로만 이루어진 언어는 없다. 철저하게 닫힌 사회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교역하면 문화를 주곱 다는다. 새로운 단어와 어법, 사고방식도 주고 받을 수밖에 없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 당연히 언어도 뒤섞인다.

그 점을 깨닫고 나서는 이오덕의 책 내용을 적당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최대한 '한국어답게'쓰자는 주장을 동의하는 정도로.

형용사 부사는 되도록 쓰지 말라는 원칙이 있다. 옳은 말이지만 이렇게 업데이트되어야 한다. 형용사.부사를 잘 골라 쓰면 문장이 빛난다.' 옛날의 원칙은 형용사. 부사가 가능하면 피해야할 '나쁜 것'이라는 말 느낌을 담고 있다. 그렇지 않다. 잘 골라 써야 한다.(---)그게 어디 형용사 부사만 그렇겠는가. <위반하는 글쓰기>(강창래)


이 말 때문에 글쓰기에 관한 책을 또 샀다.

짧은 글이지만 읽고 생각이 많아진다. 주류와 비주류의 견해 차이로 보아야 할까.


피카소를 우상하던 때가 있었다. 피카소의 그림이 아이들 그림 같아서 아이들을 데리고 피카소 전시회를 참 많이도 다녔다. 자연을 그림같이 그려낸 림 뒤에서 낄낄 웃는 듯한 피카소의 그림이 좋았다.

그보다 뒤에 새로 우상하게 된 화가가 생겼는데 그가 마르셀 뒤샹이다. 피카소가 20세기 전반에 영향을 준 화가라면 뒤샹은 20세기 전체에 영향을 준 화가라고 한다. 뒤샹은 피카소보다 더 파격적이었다. 그는 당대 미술계 주류가 작품활동에 이런저런 규칙을 들어 제약하는 것에 저항하여 '레디메이드'를 들고 나와 기존 미술 작품의 제작방식의 상식을 뒤엎었다. <샘>이란 제목으로 전시회에 남성용 소변기를 출품하여 무엇이 예술작품이 아닌가 논쟁을 불러 일으킨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뒤샹의 예술에 대한 인습 타파적인 견해는 다양한 곳에서 확인할 수있다. 특히 예술품을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소장하는 것을 부정적이어서 그의 작품은 당시 상식으로는 개인이 소장하거나 미술관 등에 전시하기 거북한 것들이 많다. 하지만 뒤샹의 말년 이야기는 자신의 예술관을 전복적으로 뒤엎는다. 사후 작품을 어떻게 할 것인가 묻는 기자에게 '그야 박물관으로 가야지'했다고 한다.


주류는 보수적이다. 가진 것을 지키려 한다. 보수에게 전통은 지켜야 하는 캐논같은 것이다. 비주류는 전통을 깨고자 한다. 진보적이다. 전통을 지키려는 자와 그것을 깨려는 자의 갈등이 역사의 갈등이기도 하다. 비주류였던 뒤샹이의 도전, 그리고 주류가 되고 난 후의 수성적守城的 태도. 한 인생에서 일어난 가치관의 충돌. 뒤샹같은 명사의 인생도 그렇다. 하물며.


<위반하는 글쓰기>서문에서 밝힌 주장에 공감하고, '앞의 것은 틀렸다 고쳐야 한다'고 도전하는 용기가 부럽다.

본문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차분히 살펴보지도 않았다. 이 책을 쓴 저자의 서문에 이미 마음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나는 안다. 이 책 한 권을 더 읽는다고 해서 내 글쓰기 실력이 단번에 담을 넘을 만큼 성장하지는 않을 것이라는걸. 그러나 읽기 위해 또 책을 샀다.

글쓰기 지침서, 혹은 글쓰기 도움서, 혹은 글쓰기 문제 해결서, 글쓰기 도구를 모은 책, 기적의 글쓰기 등등으로 유혹하는 책들이 있지만 그 책들을 읽고 정말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아니라고도 말하지는 못한다. "러시아 농부의 꽈배기 효과"를 무시할 수 없으니까.


러시아에 가난하지만 근면한 농부가 있었다. 왜 러시아인지는 모르겠다. 오래전 어디선가 읽은 글인데, 기억이 왜곡되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는 농사철이 시작되기 전 쟁기와 낫을 벼리고 뿌릴 씨앗을 고르는 부지런한 농부였다. 농사철이 나서기 전에 닳아서 못 쓰게 된 농기구는 새로 장만하기로 한다. 장이 머니 새벽에 집을 나서야 일을 제대로 볼 수 있다. 서두른 덕분에 일을 일찍 마친 농부는 장에 간 김에 아이들 양말도 사고 아내에게 줄 사라판(러시아 여성의 전통의상)도 한 벌 샀다. 기분 좋게 볼 일을 마치고 나니 긴장이 풀리고 배가 고팠다. 싸고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그때 잘 구워서 노릇노릇 먹음직한 꽈배기가 수북이 쌓여 있는 게 보였다.


"이보시오. 이 꽈배기를 먹으면 배가 불러요?"

"그렇고말고요. 먹어 보시오. 맛도 좋고 먹으면 기분 좋게 배도 부를 거요."


농부는 꽈배기 천 원어치를 선 채로 먹었다. 그러나 배가 부를 것이라는 상인의 말과는 달랐다. 자신이 속았다고 생각했다. 꽈배기 장수의 통통한 얼굴에 기름기가 반지르르 흐르던 게 맘에 걸렸었다. 장사꾼은 약아서 순진한 사람을 속인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것도 같았다. 기분이 상해 걷는데 이번엔 보름달만 하고 김이 무럭무럭 피어나는 게 여간 먹음직스럽지 않은 찐빵이 보였다. 게다가 찐빵 장수는 인상도 수더분한 게 빵처럼 둥글둥글한 얼굴이 거짓말을 할 것 같지는 않아보였다. 농부는 한 번만 더 속는 셈 치자고 찐빵 천 원어치를 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찐빵을 고작 한 개 먹었을 뿐인데 배가 불렀다. 과연 찐빵 장수는 생긴대로 정직하다고 농부는 생각했다.


농부가 놓친 게 있다. 무엇이든 배가 부를 만큼 먹어야 했다. 그게 꽈배기든 찐빵이든. 그러나 농부는 돈이 없다는, 시간이 없다는 생각에 성급했다. 차오를 때를 기다리지 못하게 하는 이유는 많다. 기다리지 못하게 하는 이유는 또 그만한 이유로 납득이 가기도 한다. 하나만 더 먹으면 배가 부를 텐데, 성공 또는 성취하는 사람이 발길에 채이지 않는 이유다.

'포텐이 터졌다'는 말이 있다. 숨어 있던 잠재력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는 뜻이다. 잠재력이 터질 만큼 차올랐을 때 포텐은 터진다. 터질만해야 터진다는 것이다. 포텐이 터지기 위해서는 잠재력이 관건이다. 잠재력은 저절로 자라지 않는다. 진부한 이야기지만 결국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한 노력의 결실이 '포텐 터졌다'는 결과다. 러시아 농부의 꽈배기 효과가 있었기에 찐빵 한 개로 포텐이 터진 거라고 바꿔 말할 수 있다.


너무 먼 데까지 왔다. 다시 본래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작가들은 흔히 '차오르면 쓰게 된다. 쓰지 않고는 못 배긴다'라고 말한다. 많이 읽고 많이 쓰는 동안 차오르지 않을까? 그때를 소망해서 나는 글쓰기 책 한 권을 또 샀다. 책을 읽으며 저자의 인생을 상상해봤다. '고스트라이터', '윤문 작가'로도 살았다는 작가 소개, 고스트라이터나 윤문 작가의 시간이 저자에게는 잠재력 키우는 시간이었을 테고 차오르다 터져 나온 글, 이 책이 그런 글 중의 하나가 될는지 모르겠다. 해서 장차 이 책의 저자가 주류가 될는지도. (2020.5.21) 2020.5.31

202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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