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뮈와 타로

타로는 믹스입니다만

by 김패티

"목련 꽃의 죽음은 느리고도 무겁다. 천천히 진행되는 말기암 환자처럼, 그 꽃은 죽음이 요구하는 모든 고통을 다 바치고 나서야 비로소 떨어진다. 펄썩. 소리를 내면서 무겁게 떨어진다. 그 무거운 소리로 목련은 살아 있는 동안의 중량감을 마감한다. 봄의 꽃들은 바람이 데려가거나 흙이 데려간다. 가벼운 꽃은 가볍게 죽고 무거운 꽃은 무겁게 죽는데, 목련이 지고 나면 봄은 다 간 것이다(자전거 여행 1, 김훈, 2014)."






까뮈, 그리고 타로


이웃에 살던 까뮈가 벚꽃잎처럼 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4월이었다. 까뮈의 마지막 이야기를 들으며 김훈 작가의 소설 <자전거 기행 1>에 나오는 '꽃피는 해안선'이 문득 떠올랐다. 까뮈의 엄마는 말했다. "가벼운 생명이라서인지, 가볍게 지더군요." 그 말이 가슴에 박혔다.


나는 검어서 '까미'라고 부르는 줄 알았다. 그러나 이름은 '까뮈'였다. 마당을 오가던 까뮈의 모습이 선명하다. 어떤 생명이든 그 죽음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 가끔 마당에서, 산책길에서 마주치던 까뮈의 죽음은 여전히 실감 나지 않는다. 퇴근길, 어두워서 보이지 않던 까만 등에 흔들리던 주황색 램프의 불빛이 아직도 보일 것만 같다. 그 불빛이 까뮈의 존재를 대신해주던 때가 있었다.


까뮈의 엄마는 물었다. 품 안에서 생명이 스러지는 것만큼 절실한 일이 또 있었을까요? 그 고통은 말로 형용할 수 없다고 했다. 삶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어떤 삶이든, 삶은 말에 담기 어려울 만큼 크다.


시작과 동시에 끝을 생각하는 일은 쉽지 않다. 끝을 예견하는 것은 사회적 통념에도 맞지 않는 일, 오히려 '재수 없다'거나 '부정 탄다'는 핀잔이나 듣기 십상이다. 아직 타로는 나이에 비해 건강하지만, 타로에게도 끝은 올 것이다. 우리는 가끔 타로가 제 몫의 생을 다하고 평화롭게 잠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후의 일에 대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가족 모두 조금씩 마음의 준비를 하려는 걸까. 미구에 올 일을 예비하는 자기 최면일까.


타로는 없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알면서도, 지금 나는 타로에 대한 기억을 더듬으며 기록한다. 타로의 시선에서 보면 부질없는 인간의 짓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기록을 통해 타로를 향한 우리의 사랑을 영원히 붙잡아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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