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라면 연상연하 커플 부부 이야기
결혼 생활을 시작하면, 연애 당시에는 몰랐던 상대방의 독특한 취향 내지는 특이한 성향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 쏠쏠한 재미가 신혼 때는 신선하고도 톡톡 튀는 매력으로 다가온다. 결혼 생활이 부득이하게 장기간 지속되다 보면 쏠쏠하다 못해, 당황스러울 때도 적잖이 많다만. 그런 감정이 누적됨에 따라 사실은 나 자신이 정상 범주에서 벗어난 이상한 인물이 아닌지, 의심마저 들곤 한다.
내가 만일 의사, 더 세분화해서 해부학자, 아니 더욱 좁혀서 해부병리학자라면, 인생을 바쳐 꼭 연구하고 싶은 대상이 있다. 바로 누님 아내의 위장이다. 아무리 부대끼며 같이 살아도 도저히 적응하거나 이해하기 힘든 그녀의 난해하고도 심오한 위장. 꽤나 흥미진진한 이야기일 것 같죠?
구구절절 설명하는 건 구차해 보일 테니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할까 한다. 우리 부부가 부산에서 올라와 서울역에 도착했을 때였다. 마침 점심시간이 훌쩍 지났으므로, 둘 다 허기진 배를 부여잡고 다급히 역 근처 해장국 집에 들어갔다. 나는 선지 해장국, 아내는 우거지 해장국을 주문. ‘배고픈 나그네에게는 역시 국밥이지’하는 심정으로 각자에게 할당된 뜨끈한 국밥 한 그릇을 허겁지겁 먹었다. 금세 한 뚝배기를 뚝딱, 행복한 포만감으로 끄억.
만족스러운 한 끼 식사를 마치고 길을 나서는데, 뭐가 아쉬운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나를 따라오는 아내를 보게 됐다. 왜 그러냐고 묻자, 아내는 이렇게 답했다. “나 배고파서 도무지 걷지를 못하겠어” 순간 내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배가……, 고프시다고요?’ 이 말에 참으로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던 이유는, 분명히 방금 그녀는 우거지 해장국에 밥 한 공기를 깨끗하게 뚝딱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국물 한 방울, 밥 한 톨까지 모조리 말이다. 아내는 이렇듯 식사 직후에 바로 배고프다고 투덜대는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가히 납득하기 힘든 위장이다. 배속에 먹성 좋은 기생충 한 마리라도 키우시는 건 아닌지, 남편으로서 몹시 우려스럽다.
아내 역시 나란 인간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점이 많긴 한가 보다. 집안에 필요 없는 물건들을 내다 버리려고 하거나, 밥을 먹고 TV 앞 소파에 누워 있을 때면, “우리 남편은 정말 특이하다니까” 라며 은근히 돌려 까신다. 또한 얼굴에 난 뾰루지를 손으로 만지작거리거나, 삐져나온 코털을 직접 뽑는 모습이 걸렸다 하면 누님 아내로부터 모진 구박을 받는다. 내가 보기에도 쑥스러운 사생활이라고 인정은 하지만, 그냥 지극히 평범한 삶의 현장일 뿐인데. 이토록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아내라니, 굉장히 난감하고 당혹스럽다. 그나저나 저 정도면 참말로 평범한 거 아닌가요?
내 아내의 엉뚱한 성향이 단지 활달한 위장뿐이라 생각하신다면 대단히 큰 오산이라 말씀드리고 싶다. 독자님께서 상상하시는 것보다 훨씬 더 비범한 인물이니 과소평가는 말아주시길. 그녀에게는 초능력이라고까지 할 만한 뛰어난 공감 능력이 있는데, 이걸 가지고 감정이입을 잘한다 해야 할지 모르겠다. 가령 좀비 드라마 <킹덤>을 보고는 부지불식간에 내 목덜미를 ‘캭’하고 깨문다던가, 멜로 영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를 보고 나서는 손톱으로 내 통통한 배를 헤집는 다거나 하는 식이다. 그럴 때마다 필사적으로 그녀의 이빨과 손길을 뿌리치지만, 이내 포기하고 마치 서열정리가 끝난 강아지처럼 모든 걸 순응한 채 목덜미와 배를 순순히 내밀고 만다. 매일 아침 일어날 때마다 목에 남겨진 이빨 자국에 피가 굳어있지는 않는지, 혹은 복부 안에 오장육부 중 하나가 사라지진 않았는지 최대한 침착하게 확인하곤 한다. 내 몸은 내가 지켜야 하는데,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러나저러나 결혼생활이 녹록지 않다는 걸 경험적으로 실감하고 있다. 그건, 나나 아내가 유난히 별난 사람이라서만은 아닐 것이다. 흠… 그런데 생각해 보니, 사실 별난 게 맞을 수도 있다. 우리에게도 넓디넓은 우주에서 단 한 명밖에 없을, 각자만의 특별함이 있을 테니까. 비록 서로를 온전히 헤아리기는 어렵겠지만, 상대를 유일무이한 특별한 존재로 여겨야지. 그냥 아내가 호모 사피엔스보다 조금 진화가 더 된 신(新) 인류로서 물리적인 소화기관과 정서적인 EQ가 유난히 발달했거니 생각하기로 했다.
끝으로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스스로를 정상인이라 굳게 믿고 있다. 누구나 그렇듯이.
* 혹시 오해가 있을까 싶어 첨언하자면, 평소 아내의 식사량은 내가 봐도 그다지 많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한 숟가락씩 남길 때가 많다. 그런데 가끔은 저리 어처구니없게 배고프다고 하시니, 더욱더 미스테리하다.
** 여름 방학이 끝나고, 가을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전만큼 자주 글을 올리지는 못하겠지만, 꾸준히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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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라면 올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