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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성 Jul 25. 2019

우주선에 온 듯한 게스트하우스

크로아티아 여행기 -1


자그레브 버스 터미널은 푸른 기둥과 복층 구조로 생겨 마치 SF 영화에 나올법한 우주정거장 같이 생겼습니다. 푸른 철골 구조물에 빗물이 맺히는 것을 보니 편하게 숙소를 가기에는 그른 듯합니다. 하늘은 무심하게도 또다시 버스의 도착과 함께 비를 내립니다. 호텔까지의 거리는 걸어서 30분. 택시를 타면 금방이지만 택시는 무섭고, 버스를 타자니 노선도가 어렵습니다. 촉촉이 내리는 비를 맞으면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많은 걸 보니 그다지 많이 오지는 않나 봅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비를 맞으며 숙소를 찾아 나섰습니다.

   

                          

깔끔하게 잘 정돈된 거리는 이 도시가 어떤 도시인지 말해줍니다. 도로는 먼지 하나 없이 깔끔하고 새로운 도시에 온 기분이 확실히 납니다. 캐리어를 끌고 가도 적당한 덜컹거림만 있을 뿐 길게 뻗은 도로에는 어떤 방해물도 없어 다행입니다. 숙소가 있는 골목으로 들어서자 비를 피하기 위한 파라솔 아래에 사람들이 앉아 벌써 저녁을 먹고 있습니다. 무엇을 먹나 슬쩍 보고 숙소로 들어왔습니다. 오늘 예약한 게스트하우스는 큐브 하우스라는 큐브 호텔입니다.      


                      

지하에 위치한 게스트하우스는 처음이라 조금 뜬금없어 보였지만 안으로 들어오니 꽤나 넓습니다. 게스트하우스의 이름이 서브 스페이스 호스텔입니다. 이름에서부터 유추할 수 있듯이 모든 방, 아니 침대들이 즐비한 광경을 보면 정말 우주 정거장 안으로 들어온 기분입니다. 천장에는 멋진 은하수가 날아다니고 심지어 샤워시설조차 우주여행자를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생겼습니다. 입이 벌어지는 구경은 뒤로 하고 간단한 규정과 함께 침대로 안내받았습니다. 생각보다 조작이 간단합니다. 비에 젖은 몸을 우선 씻고 나가야겠습니다. 우주인이 되어 샤워장에 들어가는 어린 시절의 상상을 다시 하며 따듯한 물에 몸을 적시고 나니 뽀송한 기운이 마음에 듭니다. 몸이 따듯해지니 배가 고픕니다.              


                        

무엇을 먹어야 할지 모를 때는 가장 가까운 레스토랑이 최고의 레스토랑입니다. 숙소로 들어오는 길에 봤던 식당이 아기자기해 보이고 깔끔해 보이니 들어가 보았습니다. 꽃무늬 벽지와 소파가 눈에 꽂힙니다. 집에 있는 제 방의 벽지와 똑같습니다. 실소를 머금으며 들어와 앉아 맥주부터 한 잔 시켰습니다. 비가 창문 앞을 노크하는 것을 보니 파전에 막걸리가 먹고 싶지만, 파전도 막걸리도 수천 킬로미터 떨어져 있기 때문에 유럽의 막걸리, 맥주를 주문했습니다. 


               

단백질 팬케이크라고 되어 있는 이 음식의 정식 명칭은 바로 Proteinska placinka tuna i kozice입니다. 새우와 참치가 들어간 팬케이크인데 위에 뿌려진 소스의 정체는 바로 요거트입니다. 생소한 음식으로 맥주와는 어울리지 않지만 건강해지는 맛입니다. 얇은 팬케이크는 우리가 평소에 먹는 팬케이크와 달리 얇은 빵을 접어 마치 크레페 같습니다. 안은 얇게 다진 참치 통조림의 참치와 칵테일 새우가 함께 있어 속은 든든합니다. 새콤한 요거트 소스에 찍어 먹으니 생전 처음 만나는 맛입니다. 사실 건강해지는 맛이라는 뜻은 맛없다는 말과 일맥상통하지만 뭐 제 입맛은 아닙니다. 그래도 주문한 값이 아까우니까 소스까지 남김없이 먹었습니다.


맥주 한 잔에도 알딸딸해지는 전형적인 "알코올 쓰레기"인 탓에 혼자 맥주 한 병과 함께 식사를 마치고 기분 좋게 방으로 아니, 침대로 돌아왔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없어 조용한 게스트하우스에서 침대에 문을 닫고 나니 안락한 것이 마치 어린 시절 책과 박스로 만든 아지트 같은 느낌입니다. 좋아하는 노래를 틀고 내일의 일정을 짜다 잠에 듭니다. 그래도 나름 첫 만남은 나쁘지 않은 크로아티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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