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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rah Oct 02. 2021

행복의 조건

어디선가 읽은 글에선 혼자서도 충분히 행복할 때 사람을 만나고 결혼도 해야 한다 했다.

내가 스스로 행복하지 않은 상태에서 행복하기 위해서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 과한 기대를 하기 마련이고 내 외부에서 찾는 행복이란 언제나 불안정하고 가변적이기에.

지금의 남편을 만났을 때 꼭 그랬다.

가끔 외롭기는 했지만 일은 손에 익어 막 재미있어지기 시작했고 보람도 생겼다. 여행지처럼 낯설기만 했던 서울이란 도시에도 나만의 아지트같이 푸근한 곳이 하나둘씩 생겨나고 무엇보다 방해받지 않는 나만의 공간에서 혼자 글쓰고 음악듣고 낮잠을 자고 그림도 그리고 한껏 게으름을 부리며 시간의 흐름을 잊고 지내는 것도 좋았다. 혼자 여행도 하고 영화도 보고 맛집, 예쁜 카페도 찾아다니고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이대로도 참 좋겠다 싶었다.

막상 그렇게 찾을 땐 나타나지 않더니 그렇게 혼자서도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싶을 때 남편이 짠 나타났다 (원래 알던 사이였으니 서로를 알아보았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지도 모르겠다). 혼자일 때는 이대로도 괜찮다, 이대로도 행복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결혼하고 나니 함께 함으로부터 오는 새로운 행복이 또 기다리고 있었다.

혼자 여행하는 것과 함께 여행하는 것 모두 그 나름의 묘미가 있듯 혼자 지낼 때는 알지 못했던 기쁨이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이나 고민을 여과없이 나눌 수 있는 사람, 힘들 때 늘 내 편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 늘 곁에 있다는 사실과 서로 달리 살아온 삶의 궤적과 그로부터 생겨난 다른 관점으로부터 배울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근사한 일이었다.

그러다 아기가 찾아왔다. 아기가 뱃속에 있는 동안 했던 무수한 고민과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이 조그마한 생명이 가져다주는 행복은 컸다. 물론 우리의 행동 반경이나 삶의 선택지는 더 줄어들긴 했지만 이전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종류의 행복감이 가슴 벅차게 밀려온다.

매일 아침 눈을 떠 꼬물꼬물 두리번 두리번 주변을 살피다 나를 발견하곤 방긋 웃는 딸을 볼 때나, 내가 어디에 있든지 자석에 끌리듯 느릿느릿 기어와 내게 제 살을 부비는 딸을 온 몸으로 느낄 때나, 남편이 퇴근하고 나서 딸을 목욕시킨 다음, 다같이 침대에 누워서 함께 딸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때면 뭉클하고 뜨거운 감정이 - 행복인지 감동인지 감사함인지 혹은 그 모두일 지 모를 - 북받쳐온다.

더 행복할 수 없을 만큼 행복하다고 생각했는데 행복의 그릇 자체가 커진 느낌이다.

내가 혼자였을 때 불행해서 행복하기 위해 결혼을 했다면, 둘이었을 때 불행해서 행복하기 위해 아이를 낳았다면 이렇게 행복할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그래서 행복은 늘 현재진행형일 때 의미가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일 '어떻게 하면' 행복해지리라는 미래지향적이고 조건적인 것이 아니라 오늘, 여기서 행복의 조건을 찾고 스스로 행복의 요소를 만들어 가는 것.

가끔은 일도 하고 싶고 멀리 여행도 가고 싶고 시원한 맥주 한 잔도 그립지만, 지금 여기서 감사할 거리를 찾고 순간의 행복을 누리도록 노력해야겠다. 그래서 내 행복의 그릇을 계속 계속 늘려가야겠다.

Carpe Di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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