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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rah Oct 04. 2021

딸의 생일


오늘은 내가 사랑하는 딸의 생일이다. 길고 긴 겨울을 버텨낸 꽃망울들이 막 그 아름다운 꽃잎을 터뜨리던 계절, 딸이 우리에게로 왔다. 살면서 수백 번도 더 보았을 봄 꽃, 봄 잎사귀, 봄 햇살이었겠지만, 그 해의 봄은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꽃이 이렇게 아기자기하고 작고 보드랍고 고운 것이었나. 봄 잎사귀들이 원래 이렇게 푸르렀나. 벅찬 감격과 감동으로, 내 품에 꼬물거리는 아이에 눈길을 주듯 꽃과 잎사귀에 자꾸 눈길이 갔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아이를 데리고 거동이 불편해 병원에 계시던 아이의 증조할아버지를 뵈러 갈 때면, 마음이 이상해지곤 했다. 이렇게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이가, 스스로 걷는 법을 배우고, 먹는 법을 배우고, 말하는 법을 배우고 자신의 삶의 반경을 넓혀가다가 다시 걷는 법, 먹는 법, 말하는 법을 잃어버리고, 세상에 막 태어난 아이처럼 남의 도움을 받다가, 이 세상에 처음 왔을 때처럼 훌쩍, 떠나간다는 게. 이상하면서도 신비롭게 느껴졌다.  


우리는 모두 이 지구라는 아주 커다란 나무에 잇대어 살아가는 작은 나뭇잎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애의 계절에 따라, 혹은 스산한 바람에 나뭇잎이 떨어지면, 봄을 맞아 또 푸른 잎사귀들이 찬란하게 나무를 장식하는, 생명의 신비로운 순환. 


얼마 전에 딸과 파와 시금치를 심었다. 퇴비를 주면 좋다기에 달걀 껍데기를 말려 갈아 주기도 하고, 쌀뜨물도 발효시켜 물에 희석해 주기도 하며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래도 소식이 없더니 요즘 조금씩 새싹이 고개를 든다. 얼마나 잘 자라는지 아침과 오후가 다르다. 


질병으로 온 세상이 시끄러운 요즘, 잠든 딸의 보드라운 볼을 만지며, 작은 씨앗에 숨겨져 있던 꼬물거리는 푸른 생명을 보며 희망을 엿본다. 밤이 길고 길어도 아침은 오기 마련이며, 겨울이 춥고 고달파도 찬란한 봄은 기어코 우리 곁에 찾아오기 마련이니. 모래 알갱이 같은 작디작은 몸속에 생명을 품고 사는 씨앗처럼, 우리 딸이 행복과 사랑과 희망과 아름다움과 선함과 따뜻함을 품고 무럭무럭 자라는 사람이 되길 축복하며! 


생일 축하한다. 엄마의 행복, 엄마의 사랑, 엄마의 기쁨, 우리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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