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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rah Oct 12. 2022

필즈상, 그리고 여성

칼로 나누듯이 정확하게 나눌 순 없지만 남편과 나는 집안일을 거의 반씩 나누어한다. 요리는 저녁에 한 번 내가 하면, 그다음 날 저녁은 남편이 하는 식이다. 아침은 시간이 되는 사람이 알아서 하고 커피는 주로 남편이 내린다. 


빨래는 내가 하고 설거지는 남편이 한다. 아이를 씻기는 건 교대로 한다. 하루는 첫째를 내가 씻기고 둘째를 남편이 씻기면 그다음 날에는 둘째를 내가, 첫째를 남편이 씻긴다. 


그 외 쓰레기를 밖에 내놓는 일, 수영장 및 잔디 관리, 공과금 납부 등 집안의 각종 행정적, 재정적인 이슈는 남편이 처리한다. 요즘은 같이 다니긴 하지만 장보는 일도 남편의 몫이다. 


집 청소 및 정리, 화장실 청소는 보통 내 차지다. 아이들과 놀아주고 상대해주고 재우고 하는 일도 거의 내가 한다. 


육아와 집안일은 제로섬 게임에 가깝다. 


집안을 사람 살만한 곳으로 유지하는 일, 아이를 키우는 일 모두 일정한 시간과 노력의 투입이 꼭 필요하다. 


기저귀를 갈고 아이를 씻기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고, 해도 티도 안 나고 끊임없이 생겨나는 그 일상적인 작업은 누군가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모두에게 하루는 24시간이기 때문에 집안일을 하는 시간, 아이를 돌보는 시간에는 다른 일을 할 수가 없다. 


가끔 연구만 하기에도 모자란 시간에 내가 뭘 하고 있나, 아이들만 없으면, 집안일을 하지 않아도 되면 훨씬 더 많은 성과를 낼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밀려오기도 한다. 


남편도 마찬가지일 거다. 


남편이 요리를 하거나 아이를 씻기거나 집안일을 처리하는 시간에 연구에 매진하면 더 많은 성과를 올릴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가정을 꾸린 이상, 아이를 낳은 이상 가정을 일궈나가고 아이를 제대로 돌보는 일은 공동책임이라 생각하고 둘 다 각자의 역할을 해나간다. 


내 꿈이나 커리어, 계획만큼이나 배우자가 성장하고 사회에서 잠재력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일도 각자의 책임이라 생각한다. 


내가 어느 날부터 “나는 내 연구에 매진해야 하니 오늘부터는 당신이 집안일과 육아를 다 혼자서 하시오”라고 한다면 남편은 어이없어할 것이다. 


반대로 남편이 동일한 말을 한다고 해도 나는 납득하기 힘들 거다. 


하지만 이렇게 구체적이고 명시적이고 직접적으로는 아니지만 많은 가정에서 실제로 사람들이 그들의 배우자에게 그렇게 하고 있다. 


육아나 집안일을 분담하자는 말에 “그러면 네가 나가서 돈 벌어와”라는 공격적인 윽박지름으로 표현되거나, 


혹은 집안에 산적해있는 일이나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을 보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드러눕거나 핸드폰, 혹은 일에 열중하는 등의 소극적이고 수동적이지만 분명한 방식으로 표현된다. 


개인적으로 나는 남자든 여자든 가정의 일원으로서 집안일과 육아를 분담하지 않으면 꼭 그만큼 상대가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는 셈이라고 생각한다. 


노예를 부릴 수 있었던 과거에 연구를 하는 사치를 부릴 수 있었던 사람들은 대부분 귀족이었다. 


노예들이 밥벌이, 노동, 요리, 집안일을 해주는 동안 지적 활동의 사치를 누릴 수 있었다. 


지적 활동을 통해 성취를 이룬 사람들 뒤에는 그가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하지 않고 지적 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삶의 필수 불가결한 일들을 처리해주는 노동자들이 존재했다. 


노예가 없는 지금은 노동력을 돈으로 사거나 다른 사회적 네트워크를 통해 도움을 받거나 이도 저도 아니면 가정 내에서 해결해야 한다. 


문제는 한국에서 그 노동이 심각하게 그리고 불균형하게 분포되어있다는 거다. 


아이들을 생각해보자. 


아이들에게 빨래나 설거지, 청소, 동생 돌보기를 하루 종일 혼자서 도맡아 하게 하고 아이들이 배우고 성장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100세 인생이라는 요즘 시대에, 그 아이들과 부모에게는 30여 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100세까지 의미 있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30대, 40대도 여전히 방황하고 배우고 성장해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 의미 있는 일을 찾기 위한 여정을 계속해야 한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하루 종일 혼자서 청소, 빨래, 식사 준비 등의 고된 일을 하면서 동시에 공부하고 성장하기를 바랄 수 없는 것처럼 엄마에게도, 혹은 아빠에게도 같은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과거 어떤 분이 “제 아내는 딱히 하고 싶은 게 없어요”라고 말하는 걸 들었다. 


매슬로의 욕구단계에서는 자아실현의 욕구는 가장 상위단에 위치한다. 


충분한 잠을 자지 못하면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고단하고 피곤한 상태에서 자아실현을 꿈꾸기는 힘들다. 


최근 남편이 출장을 가고 그 사실을 더욱 실감했는데 하루 종일 아이들과 씨름하느라 연구는 뒷전이고 밤이 되면 밀린 설거지와 빨래, 청소를 끝내고 그저 빨리 잠들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내게 그 말을 했던 분의 아내는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아직 발견 못했을지도 모르지만, 애초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발견할 기회조차 없었던 건 아닐까?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잘하는지를 충분히 탐색하고 배우고 경험할 수 있는 시간과 여유가 없었던 건 아닐까? 


아이들도 엄마도 아빠도 공동으로 함께 평생 성장하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의 꿈이나 성장의 씨앗을 말려 죽여서는 안 된다.


살면서 필즈상을 받은 허준이 교수의 아내분과 같은 사람들을 무수히 많이 만났다. 


국내외 유수의 대학에서 같이 영어를 공부했지만, 수학을 공부했지만, 정책을 공부했지만, 천문학을 공부했지만, 혹은 그 무엇을 공부했지만 지금은 육아를 전담 중인 여성들. 


내가 악착같이 연구에 몰두하는 것은 물론 연구의 매력에 빠져서, 혹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서, 라는 이유가 가장 크지만 마음 한 켠에는 내 딸에게 여성의 다른 역할을 보여주고 싶은 맘이 있기 때문이다. 


과거 보건학을 공부했지만 지금은 집안일 육아만 하는 엄마가 아니라 발표하는 엄마, 연구하는 엄마, 공부하는 엄마를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혼이 커리어의 무덤이나 종착점이 아니라, 이젠 혼자가 아니라 함께 성장의 여정을 떠나는 출발점이자 베이스캠프가 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할 수 있는 데는 내가 숨 쉴 공간, 내가 누군가의 엄마나 아내로서만이 아니라 한 개인으로서 내 잠재력을 시험하고 시도하고 꿈꾸고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을 당연하지만 기꺼이 내어준 남편의 역할이 크다. 


수많은 아내의 이름이 감사의 말에 언급되는 일도 고마운 일이지만, 더 많은 여성이 그 자리에서 상을 받을 수 있기를, 더 많은 책을 쓰기를, 더 많은 직책에 오르기를, 더 많은 영예를 누리기를, 그리고 그게 당연해지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딸이 나중에 크면 감사의 말에 딸의 이름이 등장하는 대신 딸이 감사의 말을 하게 되길 바란다. 


(내가 나중에 상을 받거나 책을 쓰게 되면 당신의 이름을 꼭 불러주리다,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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