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 보호자님 빨리 오세요 어머니 위독하세요"
새벽 6시 00분 간호사에게 걸려온 전화! 벨소리와 함께 직감적으로 엄마가 위독하신 것 알았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본능적으로 뛰어나가 병원에 도착한 시간 6시 15분!
남편의 차를 내가 어떻게 탔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병원까지 갔는지 사실 잘 모르겠다.
병원에 도착하였을 때는 이미 엄마는 하늘의 별이 되신 후였다.
언니, 동생이 엄마를 부르며 오열하고 있었고 그 곁에는 의사 선생님이 계셨다.
"6시 15분 000 환자분 운명하셨습니다. 돌아가신 후에도 귀는 열려 있으니 마지막으로 하시고픈 이야기들 나누세요"
엄마의 얼굴은 전날과 다르게 너무나 평온해 보였다. 너무나 평온해 보여서 돌아가신 것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나는 퉁퉁 부은 엄마의 손을 만지고 얼굴을 쓰다듬었다. 따뜻한 체온! 엄마 냄새! 이렇게 따뜻한데 돌아가신 것이 맞냐고 제차 물어보라고 동생을 닦달했다.
다시는 엄마를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다는 현실이 나를 두려움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만들었다.
"엄마 그동안 너무 고생 많았어! 가족들 걱정 말고 편히 쉬어 엄마!
엄마 딸로 살 수 있어서..... 행복하고....... 사랑하고...... 미안하고...... 고마워 엄마!
오장육부가 아프다는 느낌이 이런 걸까? 가슴이 너무나 아프다 못해 정신줄을 놓을 것 같았다.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엄마가 돌아가신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아직 실감도 못했는데 주어지는 시간은 너무나 짧았다.
엄마가 돌아가신 그날 하늘은 너무 푸르다 못해 눈시울이 시릴 정도였다. 짙푸른 잎사귀들이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매미 소리가 요란한 날...
3일 뒤면 엄마가 돌아 가신지 한 달이 되는 날이다. 나는 아무 일 없듯이 일상을 살아내려고 노력하지만 문득문득 엄마 생각이 날 때면 남몰래 눈물을 훔친다. 나는 과연 엄마에게 어떤 딸이었을까? 아픈 손가락이었을까? 믿음직한 딸이었을까? 이기적인 딸이었을까? 수만 번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도 시간은 허락해 주지 않았다.
엄마의 부재는 여전히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시간들이다. 엄마의 부재를 실감할 때마다 엄마를 추억해 본다.
기억 속 엄마는 언제나 따뜻했다. 내가 힘든 날이면 어김없이 달려와 나를 안아주시고, 속 시원하게 이야기를 들어주시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엄마의 품에 안겨 있으면 세상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제 그 따뜻한 품을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이 가슴을 짓눌렀다.
주인 없는 방문을 열 때마다 엄마의 모습이 보인다.
곳곳에 남아 있는 엄마의 흔적들. 침대 옆 협탁 위에 놓인 물건들. 기저귀. 물티슈, 완성되지 못한 뜨개질, 늘 손에 쥐고 있던 인형은 주인을 잃은 채 놓여있고, 방긋 웃던 엄마의 환한 미소가 공중에 흩날린다. 엄마 베개, 애지중지하던 사진첩. 지갑. 엄마 옷. 물건들. 모든 것이 엄마를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오히려 나를 더욱 먹먹하게 만들었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처럼 시간이 지나면 슬픔도 옅어질까? 시간이 지나면 이 먹먹함도 사라질까?
엄마하고의 약속! 남은 가족들 잘 지키고 돌보고 우애 있게 살아가겠다고.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아가겠다고....
나는 남아 있는 가족들을 책임지겠다고 엄마에게 무언의 약속을 하였고, 그 약속을 지킬 힘으로 어쩜 이 시간을 버텨내고 견뎌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엄마의 부재를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냥 엄마가 멀리 여행을 떠나셨고 언제가 나 또한 이 여행을 해야 하고 우린 곧 만나다는 사실이다.
인생을 손바닥 뒤집듯이 할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 하고는 다르게 살아가야 할 것 같음은 엄마가 마지막으로 남겨준 과제인 것 같다. 그 과제의 해답을 아직 찾지는 못했지만, 질문을 받았고 그 답을 찾으려고 노력 중인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엄마의 냄새가 그리운 시간들이 흘러가고 있다.
무더운 여름의 어느 한 날 엄마가 밤하늘에 별이 되셨다.
많은 인디언 부족들은 죽음 이후 영혼들이 다른 차원이나 세계로 떠나거나, 자연의 일부가 된다고 믿었다는 책을 읽은 기억이 난다. 나 또한 엄마가 밤하늘에 별이 되어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반짝이는 눈빛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여전히 나를 반짝이는 눈빛으로 지켜봐 주고 내려다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다. 이것 또한 엄마에 대한 막연한 나의 상실감에서 비롯한 나의 미성숙한 감정일지는 몰라도 이런 생각이 잠시나마 나에게 위로가 되는 것은 사실이다.
마치 씨앗이 땅속에 묻혀 겨울을 나고 봄이 되어 새싹을 틔우듯, 엄마의 죽음을 통해 내가 새로운 삶을 살아 아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약속을 지켜내려고 노력하면서 살아갈 것이라는 것은 약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