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어가 강을 거슬러 올라가듯 어린 시절 살던 동네에 예전부터 가고 싶었다. 추석 때 가고 싶었는데 추석에도 너무 더워서 조금 지나서 갔다. 언덕이 많은 건 그대로였는데 땅의 지형 빼고는 모든 게 달라져 있었다. 골목길을 뛰어놀던 단독 주택가의 담장들은 사라져 있었다. 단독 주택 자리가 있던 곳에 담이 허물어지고 골목길은 없어지고 빌라, 빌라, 빌라의 향연이었다. 빌라가 앞다퉈 세워져 골목길이 들어설 틈도 없었다.
아쉬워라. 그리웠던 곳인데.
중학교를 시작으로 쭉 걸어 나와 살던 동네를 지나쳐 초등학교를 찾아갔다. 2층 양옥집 옆 슬레이트 지붕으로 된 단칸방이었던 집을 찾으려 했지만 흔적도 없이 사라져 눈으로만 어디쯤인지 짐작했을 뿐이다. 뒷문으로 나가면 옆집에서 뻗어 나온 라일락 나무의 향기가 때마다 그윽해서 어린 마음에도 뒷 장독대에서 꽃향기를 맡곤 하던 기억이 있다.
어린 시절 놀던 기억은 그 집에 전부 다 있어서, 내 인생의 희로애락이 모두 이 동네에 남아 있었다. 이사 가기 전에 잠시 살았던 기름 집 자리도 찾았다. 따로 있던 화장실에 거미줄이며 커다란 귀뚜라미 천지여서 나는 변비에 걸려 집에 오는 길에 큰 실수를 했던 적도 있었다. 실내화 주머니를 휘두르던 짝꿍에 얼굴을 맞아 흔들거리던 이가 빠졌던 일, 나보다 한 학년 아래였는데 까불어서 정육점 집 아들내미를 골목에 몰아넣고 패줬던 일, 딸기 장사를 했던 아빠 때문에 딸기를 실컷 먹을 수 있어 좋았지만 장사 수완 없던 울 아빠가 미처 팔지 못한 딸기였던 걸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일까지 다 생각났다.
가장 보고 싶었던 건 초등학교 가는 길에 있던 고목나무였다. 그때는 엄청 큰 나무였는데 지금 보니 가지도 잘려나간 작은 나무였다. 150년이 넘은 느티나무로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했다고 적혀 있는데 그나마 사라지지 않고 그 자리를 지켜 주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초등학교 본관 돌계단 한쪽에 돌 미끄럼틀을 해놔서 애들이 그걸 타고 내려와 맨질거렸는데 아직도 있는지 보고 싶었지만 체육 수업 중이라 들어갈 수 없었다. 모래 바닥 대신 인공 잔디밭이 깔려 있어 깜짝 놀랐다. 본관 돌계단에서 남자애들이 밀어서 굴러 떨어졌던 기억 때문에 나는 지금도 계단 내려갈 때마다 꼭 고개를 푹 숙이고 보면서 내려간다. 교문 앞에 다 와서 먹고 있던 사탕이 목에 막혀서 컥컥 거리며 무릎을 꿇고 힘겹게 뱉어 냈던 기억도 났다.
초등학교, 중학교를 둘러보고 나니 한 가지 느낀 건 그 시절에 느꼈던 감각이 자라서인지 학교 건물이 다 작아 보였다. 다 보고 나와 그 자리에 여전히 있는 시장 구경을 하고 몇십 년 동안 같은 자리에 있는 분식집에서 밥을 먹었다.
"옛 동네 오니까 너무 그립다. 다시 이 동네에서 살고 싶다."라고 하니까 같이 온 사람이 "돈 많이 벌어야 하겠네."라는 말을 해서 웃음이 터졌다. 하긴 이 동네 집값이 우리 집 집값의 몇 배일 테니 현실적인 말이긴 한데 어이가 없었다. 그래, "우울해서 빵 샀어."라고 하면 "우울한데 왜 빵을 사."라고 하는 사람이니까 이해는 한다.
연어는 거슬러 올라가 알을 낳고 죽는다는 데 나는 내가 살던 옛 동네에 와서 알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혀 떠나왔다. 생각했던 것보다 방황이 길어지고 있다. 의도했던 시간보다 더 길어져서 솔직히 막막한 상태다. 친구가 새로운 일을 하며 1년 간 사이코패스에게 시달린 탓에 큰 후유증이 남았다. 멍하니 있다가 차 사고를 내고, 잇몸이 주저앉고, 잠을 못 자고, 온몸에 두드러기가 났다. 병원에 가도 이유를 알 수 없어 여러 가지 검사를 진행했고 결국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정신은 우리를 속이기 쉽다. 이 정도면 버틸 수 있다고, 괜찮다고, 이겨내야 한다고 속삭이지만 몸처럼 솔직한 것도 없다. 정신은 속일 수 있어도 몸은 그래도 다 티가 나기 때문이다. 나 역시 한동안 괜찮던 수면 패턴이 깨져 버렸다. 다시 심장이 두근거리면서 중간에 몇 번씩 깨어나고 악몽을 꾼다.
열심히 내 몸이 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하루 단위로 시간을 짜고 까맣게 잊고 지내는 이름과 나도 모르게 끊어져 버린 이름 위에 새롭게 이어진 이름으로 덧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을 갈면서 일한 내 친구가 부러워질 정도로 인생의 2막을 준비하기가 너무 버거워서 한국 같은 나라에서 노년을 준비하기란 너무 힘들다고 투덜거린다. 그전에 콱 죽어버렸으면 하다가도 맛있는 거 먹고 기다렸던 책이나 영화가 나오면 그건 그것대로 소확행이라 이것만, 이것만 하는 날마다 날 붙잡아 주는 소소한 행복들을 찾으려고 눈에 불을 켠다.
그래서 매일마다 글을 쓴다.
꿈을 꿔도 글을 쓰고, 화를 내도 글을 쓴다.
이야깃거리가 떠오르면 글을 쓴다.
하다못해 다짐을 할 때도 메모를 써서 붙여 놓는다.
그래, 나는 뭐든 남기고 싶은 것 같다.
그게 알이든, 가죽이든, 이름이든. 뭐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