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루 가는 길에 만난 바다가 내게 알려준 것.

북해도(北海道) 여행 07

by 볼파란

- 2017년 2월 24일 금요일

오늘은 오타루에 가는 날이다. 밤새 내리던 눈은 다행히 그쳤다. 호텔 결제는 조식 포함이 아니어서 체크인하면서 미리 한 번의 조식을 결제해 두었다. 가장 저렴한 토스트와 커피세트를 주문했는데 내가 내려가자마자 레스토랑으로 안내하고 곧바로 식사가 나왔다. 나카토노 호텔의 가장 좋은 점은 유난스럽지 않게 손님을 챙기는 점이다. 레스토랑은 소박하고 아늑하다. 오늘 아침은 나 혼자다. 로비 TV에선 김정남 피살 사건이 비중 있게 다뤄지고 있었다. 김정남은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피살되었다. 이미 한국에서 알게 된 사건이었는데 이곳에서 뉴스로 보자니 새삼 우리나라가 분단국가라는 사실이 크게 와 닿았다. 조식은 생각보다 근사했다. 신선한 야채샐러드와 토스트, 커피까지. 한 끼 식사로 든든하다. 조금 더 여유 있게 이 아침을 누리고 싶지만 기차 시간이 빠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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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역까지 걸어가 본다. 곳곳이 빙판이지만 조심조심 균형을 잡으며 걸어가는 아침 공기는 상쾌하다. 역으로 가는 길엔 밤새 쌓인 눈이 옆으로 치워져 있었다. 밤새 제설 작업하는 분들이 치워놓은 것이리라. 이 도시는 밤새 일하는 우렁이 각시들에 의해서 정비되고 깨어난다. 거의 무릎 넘게 쌓인 눈이 보기엔 부드러운 생크림처럼 느껴져서 가는 길에 손가락으로 푹 찍어 먹어보고 싶어 졌다.


삿포로에서 오타루는 30분 정도 걸린다. 오타루행 기차는 10시 13분 출발이다. 중간에 플랫폼이 바뀌어서 기다리다가 다시 내려가 건너갔다. 외국 기차 여행 시 플랫폼 확인은 수시로 확인해둬야 한다. 플랫폼에 곱게 차려입은 한국 아줌마 서너 명이 서있었다. 친구들끼리 하는 여행 같아 보이는데 그 나이 아줌마들은 대부분 패키지여행으로 다닐 텐데 자유여행으로 오셨나 보다. 소녀들처럼 깔깔 거리며 얘기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집안일에서 모처럼 해방되어 들뜬 모습들이 역력하다.

IMG_4268.JPG 휘몰아치던 오타루 가는 길 바다


바다가 보이는 창가 좌석에 앉아 오타루 가는 길의 바다를 하염없이 들여다봤다. 사진을 수없이 찍었으나 한 장도 바다를 온전히 담을 수 없었다. 이때껏 많이 봐왔던 바다였지만 그날 그 바다는 처음 보는 바다였다. 누가 나에게 바다냐 산이냐 물을 때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다라고 대답했었고 꼭 뒤에 '여름 바다 말고요. 사람 없는 겨울바다'라고 토를 달았었다. 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바다는 대학 시절 친구들과 밤기차 타고 우르르 몰려가 일출을 봤던 정동진 바다였다. 가만히 바다를 들여다보다가 처음으로 파도 속으로 빠져들어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죽고 싶다는 의미와는 전혀 다른 자연의 마력에 최면이라도 걸린 듯한 기분이었다. 그것은 아름다움을 통해 구원받고 싶은 인간의 본능이었을까?


암튼 오타루의 바다는 내 생애 두 번째로 강한 인상을 남긴 바다가 되었다. 사람 발자국 하나 없는 눈 쌓인 바닷가에 파도가 몰아치고 있었다. 그토록 강렬한 파도는 처음이었다. 게다가 창문을 열고 손만 뻗으면 바로 닿을 듯한 거리였다. 파도가 칠 때마다 눈가루가 새하얗게 부서지고 새하앟게 연기가 피어올랐다. 마치 기차가 이 세상이 아닌 어딘가 다른 세계로 나를 데려다주는 것 같았다. 이것은 천국의 풍경일까? 지옥의 풍경일까?



조금 눈물이 나왔다. 사실 사람들만 없었다면 그냥 목놓아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 눈물은 무슨 의미였는지 모르겠다. 슬프거나 화가 나거나 외롭거나 행복한 기분은 아니었다. 여행지에서 갖는 감수성의 발로였을까? 미래에 대한 막막함 내지는 내가 이곳까지 와서 혼자 뭐 하고 있을까? 내지는 그래도 내가 이 먼 곳까지 왔구나 싶은 안도감이었을까?


돌아보면 여행 중 가장 강렬한 기억이었다. 내가 눈물이 난다면 유빙을 보게 될 아바시리에서 겠지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는데 결론적으로 눈물이 났던 곳은 이곳, 오타루 가는 바닷길이었다. (물론 아바시리에서의 기억도 좋았다. 하지만 그때 가서 쓰겠지만 사람이 많아 홀로 고독을 씹을 여유가 없었달까) 인생은 결코 원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지도 않을뿐더러 어느 곳에서 어떤 감정들을 만나게 될지 모를 일이다. 오롯이 다가오는 생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받아들일 것. 어쩌면 그것이 오타루 가는 바다가 내게 알려준 일일 것이다.


미나미 오타루 역에 도착해서 모두 뿔뿔이 흩어진다. 미나미 오타루 역은 오타루 역 가기 전 역이다. 오타루 역에서 내려가도 되지만 나는 내려서 오르골당과 운하까지 걸어서 구경한 후에 오타루 역에서 돌아갈 예정이다. 미나미 오타루 역은 작은 역이다. 이곳에서도 사람들이 꽤 내린다. 사람들과 섞여서 가고 싶지 않아 역 화장실을 들렀다가 천천히 나선다. 역 앞에는 택시들이 서있었지만 누구 하나 타는 사람은 없다. 나도 물론 걸어간다.

IMG_1742.JPG 앞에 보이는 소녀들의 무리. 쌓인 눈에 글을 쓰며 사진을 찍었다.


앞에 한국에서 온 소녀들 (20대 같아 보였지만 내 눈에는 소녀들이었다. 어여쁜 소녀들!) 서너 명이 깔깔거리며 서로 사진을 찍어주기 바빴다. 결국 내가 앞질러서 눈이 소복하게 쌓인 골목을 걸어간다. 날은 흐렸지만 멀리서 들려오는 오르골 소리가 환상적이었다. 아무도 없는 골목길에서 오르골 소리가 멀리서 들려오고 나는 춤을 추고 싶어 졌다.(물론 추지 않았다. 마음은 왈츠라도 추고 싶었지만.)


IMG_4279.JPG 오르골 소리에 지긋이 눈을 감고 있던 개. 어쩌면 추워서였을까?


오타루에 올 계획을 짜면서 처음엔 1박을 하면서 러브레터 촬영지를 돌 계획이었다. '오겡끼데쓰까?'를 외치던 그 눈밭에 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1박을 여기 와서 머물다가 다시 캐리어를 끌고 삿포로로 왔다 갔다 하기엔 너무 소모가 커서 그냥 반나절로 만족하기로 했다. 내가 러브레터 촬영지였던 오타루까지 올 줄이야 어찌 알았겠는가.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러브레터는 내 인생 영화 10위 안에 드는 영화였다. 그래도 오타루를 돌면서 곳곳에서 러브레터 속 모습들이 떠올랐다. 희한하게 사진을 전혀 찍지 않아서 나중에 보고 내가 놀랐다. 역시 난 카메라가 필요 없는 사람이었어.


IMG_1744.JPG 멀리 보이는 르타오 본점. 건물이 예뻐서 누구라도 찍게 되는 건물.
IMG_1745.JPG 정각에 수증기를 뿜으며 노래한다는 증기 시계탑. 그 앞에 나무가 더 인상적이서 한 컷. 크리스마스 트리로 쓰면 딱 좋곘다.


걷다가 보니 멀리 르타오의 핑크빛 건물이 보이기 시작한다. 르타오에 가기 전에 증기 시계탑과 오르골 당을 먼저 마주하게 된다. 증기 시계탑은 세계에서 단 2대뿐이란다. 그중에 한 대가 여기 오타루에 세워져 있다. 물론 수증기를 내뿜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유럽 여행 때도 각종 시계탑들을 봤지만 솔직히 내게는 감흥이 일지 않는다. 눈 때문인지 보호 중인지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다. 시계탑과 맞은편 르타오 건물 앞에는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서둘러 오르골당으로 들어섰다.


들어서는 순간, 신세계가 펼쳐진다. 분명한 건 어른이건 아이건 '우와'라는 탄성이 흘러나온다는 것. 오르골의 은은한 소리들이 곳곳에서 들려오고 아름다운 오르골들이 정신을 못 차리게 한다. 물론 찬찬히 둘러보면 금세 비싸고 상업적인 공간임을 깨닫게 되지만 오타루를 먹여 살리는 일등공신은 오르골임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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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천정에서 조명 전구가 늘어져 있고 공간은 환상적인 곳으로 바뀐다. 사람들은 다양한 오르골 소리들을 들으며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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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눈에 띄는 건 초밥세트 오르골. 그랜드 피아노 오르골을 사고 싶었지만 비싸서 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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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스누피와 웰시코기 오르골도 있었다. 각종 캐릭터 오르골도 있어서 구경하는 즐거움도 컸다. 나는 그중에서 곰인형 오르골과 비교적 싼 가격의 열쇠고리형 오르골 하나를 샀다. 조금 무리해서 산 곰인형은 동생 선물용이었고 열쇠고리는 내가 가지려고 심혈을 기울여 소리를 듣고 골랐다. 곰인형은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멜로디였고 열쇠고리는 오버 더 레인보우 멜로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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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이웃분이 부엉이 네임으로 가방 브랜드를 수작업으로 하시는데 가서 보니 부엉이 종류가 엄청 많았다. 이 지역에 부엉이가 많은 것 같다. 지역 특산품인가? 하나 사드리고 싶었으나 가격의 압박이 너무 컸다. 오른쪽 작은 부엉이 오르골이 5천 엔, 5만 원이 넘는다. 해서, 사진만 주야장천 찍었다. 부엉이 사진만 찍어서 따로 보내드릴까 하다가 못 보낸 사진들이 한가득. 돌아와서 생각해보니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사진만 보내는 것도 우스운 일 아닌가.

IMG_1768.JPG 예전에 참 많이 찍었던 거울샷
IMG_1751.JPG 일본의 유명한 고양이 오르골
IMG_1771.JPG 나가는 입구에 있던 웰컴 눈사람과 곰인형
가격표 달고 연주 중인 광대 아저씨.


*사진 리사이징이나 따로 보정을 하지 않고 올리니 사진 용량이 있어 이미지 로딩되는 데 시간이 걸린다. 해서 어쩔 수 없이 다음 편으로 넘긴다. 이 끝나지 않는 여행후기는 대체 언제까지? 나란 사람이 왜 매번 여행 후기를 끝까지 쓰지 못하는지 알았다. 내가 이미 했던 여행을 복기하는 것이 즐겁지가 않다. 나란 사람은 복기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 그래서 늘 후회로 점철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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