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주사 천불천탑 공간의 서쪽 능선에는 2구의 거대 석상이 나란히 누워 있듯이 자리 잡고 있다. 이 두 구의 불상은 흔히 부부 와불로 불리고 있지만, 와불(열반에 들기 위해 오른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침상에 길게 누은 부처)의 자세는 아니다. 단지 땅에 누은 커다란 암반에다 조각을 했기 때문에 마치 석상이 누운 것처럼 보여 세상 사람들은 그냥 와불이라 부르고 있을 뿐이다. 두 구의 석상 가운데 단연코 주인공으로 보이는 거대 석상은 높이가 12.7 m이고 가사를 (오른쪽 어깨가 드러나는) 편단우견으로 걸치고 가부좌로 앉은 채 두 손을 가슴높이로 모아 합장하는 자세이다. 거대 석상의 왼쪽(관람자 시선으로는 오른쪽; 향우)에는 호리호리한 몸매에 가사를 통견으로 걸치고 두 손을 앞에 모은 채 서 있는 석상이 있다.
전설에 의하면, 이 거대 석불은 남북국 시대 신라의 승려였던 도선국사(道詵國師: 827-898년)와 관련이 있다. 그는 천계에 사는 석공의 도움을 받아 하룻밤 사이에 천불천탑을 세우고자 했는데 밤샘 일에 지친 스님의 상좌가 새벽녘에 닭 우는 소리를 내자 석공들이 마지막 남은 와불 세우기를 중단하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다. 민간에서는 이 와불이 몸을 일으켜 세우는 날 새 세상이 온다고 믿어 미륵불로 여겼지만, 고고미술사학계나 불교미술사학계에서는 이 불상이 두 손을 가슴높이로 한데 모은 자세로, 법신불인 비로자나불의 수인(손동작)과 비슷해 보이기 때문에 비로자나불이라 여기고 있다. 또 일부 학자는 여기서 50m 아래에 위치한 칠성바위(=북두칠성)와 짝을 지어 북극성을 상징하는 치성광여래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치성광여래는 수명장수, 소원성취, 환난회피와 같은 현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부처이다.
자, 그렇다면 높이가 12.7m인 거대 석불좌상의 명호(=이름)는 무엇일까요?
(1) 미륵불, (2) 비로자나불, (3) 치성광여래, (4) 석가모니불
이어서 두 번째 질문입니다. 거대 석상의 왼쪽에 위치한 호리호리란 입상의 명호는 무엇일까요?
(1) 거대 석상의 마누라, (2) 석가모니불, (3) 노사나불, (4) 아난존자
<사진 1> 운주사 천불천탑 공간의 서쪽 능선에는 거대 석상 2구가 암반에 깊게 새겨져 있다. 이들은 과연 누구인가?
정답을 말씀드리겠습니다. ^^
거대 석불좌상: 왕사성의 기사굴산(영취산)에서 1250인의 비구들과 32,000 보살 앞에서 관무량수경을 설하는 '석가모니불'을 묘사한 것이다.
왼쪽 입상: 붓다가 입멸할 때까지 25년간 항상 붓다를 가까이 모시면서 그의 가르침을 가장 많이 듣고 설법을 깡그리 외워 '다문 제일'로 불린 '아난존자'이다.
즉, 천불천탑 공간의 서쪽 능선에 조성된 거대 석불좌상과 입상-시위불-석불군 (바)-거북바위 칠층석탑과 오층석탑-칠성석과 칠층석탑으로 둘러싸인 공간은, 정토삼부경 가운데 하나인 관무량수경을 그림으로 도해한 관경16관변상도의 불회 장면을 나타낸 것이다. 이 불회 장면만 따로 떼어내서 독립적으로 그린 불화가 바로 <영산회상도>이다.
필자의 연구에 의하면, 운주사 천불천탑은 14세기초에 고려에서 널리 유행했던 아미타정토 사상을 그림으로 표현한 관경16관변상도(2차원 그림)를 운주골 대자연에 3차원으로 묘사한 것이다. 즉, 천불천탑은 세계유일 3차원 관경16관변상도이면서 고려인의 극락정토, 요즘으로 치면 샹그릴라를 지상에 재현한 것이다.
<사진 2> 운주사 천불천탑은 14세기 초에 조성된 3차원 관경16관변상도였다. 거대 석불좌상과 입상은 16관변상도의 불회장면의 주인공인 석가모니 부처와 아난존자를 묘사한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기사굴산에서 수많은 비구와 보살을 불러 모아놓고 임종 후에 극락왕생할 수 있는 16가지 관상수행법(정선13관 및 산선3관)을 설명하셨는데, 이 말씀의 핵심 내용을 알기 쉽게 그림으로 묘사한 것이 <관경16관변상도>이다. 일본 서복사에 보관된 고려 <관경16관변상도>를 살펴보면, 화면의 맨 윗부분(일상관 바로 아래)에는 <관경16관변상도>의 불회장면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관무량수경을 설하는 석가모니 부처의 영산정토를 그린 것이다. 이 아래에는 제14관(상배관), 제15관(중배관), 제16관(하배관)이 그려져 있는데 이것은 아미타불의 극락정토를 묘사한 것으로, <관경16관변상도>라는 종교화의 핵심 주제(참회와 극락왕생)가 담겨있다.
천불천탑은 <사진 2>에 보인 것처럼, 2차원 <관경16관변상도>를 운주골 대자연에 재현한 3차원 <관경16관변상도>이다. 따라서 천불천탑 전체 공간은 고려의 2차원 <관경16관변상도>처럼 불회(영산정토) 및 제14관(상배관)-제15관(중배관)-제16관(하배관)으로 이루어진 아미타정토로 구획된다.
너른 불회 공간(영산정토)에서 가장 중요한 조형물은 부부 와불로 불리는 거대 불좌상과 입상이다. 이 두 분의 이름을 서복사 소장 <관경16관변상도>의 도상을 이용해서 밝혀보자.
<사진 3> 천불천탑은 2차원 <관경16관변상도>를 운주골 대자연에 재현한 3차원 <관경16관변상도>이다. 따라서 16관변상도의 불회 도상으로 부부 와불의 명호를 알아낼 수 있다.
<사진 3>의 오른쪽 (서복사 소장 고려 <관경16관변상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관무량수경을 설하는 석가모니 부처에 가장 가까이 서있는 두 명의 제자가 눈에 띈다. 이 두 분은 수행을 가장 잘하여 두타제일(頭陀第一)로 불린 마하가섭과 부처의 설법을 빠짐없이 듣고 모두 외워 다문제일(多聞第一)로 불린 아난다이다. 두 제자는 석가모니 부처의 열반 후에 비구 500명이 모인 제1차 결집에서 경장(經藏)과 율장(律藏)을 편찬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스승의 죽음 후에 자칫 흩어지거나 잘못 전해져 제멋대로 해석될 수도 있었던 부처의 말씀과 승단의 계율을 제1차 결집을 통해서 체계적으로 기록해 둠으로써 이후 불교가 성립할 수 있었다. 그래서 불교에서 두 분의 위상은 기독교의 베드로와 사도바울에 버금간다 할 것이다.
불화에서는 부처를 기준으로 왼쪽, 오른쪽 방향이 정해지지만 관람자 시선하고는 반대라서 헷갈릴 수 있으므로, 여기서는 관람자 시선으로 오른쪽이면 향우(向右), 왼쪽이면 향좌(向左)라 부르고 방향을 설명하였다. 1불+2제자+2보살로 이루어진 오존상(五尊像) 양식에서 석가모니 부처의 향우에는 연꽃을 든 관세음보살과 늙은 가섭을 두며, 향좌에는 정병을 든 미륵보살과 나이 어린 아난을 둔다. 그런데 서복사 소장 고려 <관경16관변상도>의 불회 장면에서는 석가모니불의 향우에 관음보살과 아난이, 향좌에 미륵보살과 가섭이 서 있다. 즉 10대 제자 가운데 맏형 격인 늙은 가섭과 나이 어린 아난의 위치를 바꿔 그린 것이 서복사본의 특징이다.
<사진 4> (왼쪽) 고려 <관경16관변상도>의 불회장면의 일부, (오른쪽) 천불천탑의 거대 와불, 입상 및 시위불.
그러면 서복사본 <관경16관변상도>의 불회 도상으로 천불천탑 공간에서 거대 와불의 명호(이름)를 밝혀보자.
고려 <관경16관변상도>에서 석가모니 부처는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는 우견편단으로 가사를 걸치고 수인은 관무량수경을 설하는 설법인(說法印)의 자세를 취한 채 연화대좌 위에 결가부좌 자세로 앉아 있다. 이 모습 그대로 운주골의 서쪽 능선의 너럭바위에 조각한 것이 길이 12.7m의 거대 와불이다. 이 석불좌상의 얼굴 모양, 우견편단의 가사, 결가부좌, 설법인 자세를 비롯한 전체적인 모양새는 고려 <관경16관변상도>에서 불회 장면에 그린 석가모니 부처와 거의 똑같게 생겼다.
다음에는 거대 와불(=석가모니 불좌상)의 향우에 있는 입상의 명호를 밝혀보자. 기존 학계에서는 이 입상을 주존불(비로자나불) 옆에 배치한 협시불로 판단하고 있지만 이 석상은 비구의 복장을 하고 서 있는 자세이기 때문에 부처상이 될 수는 없다.
<사진 5> 입상과 시위불은 비구 복장을 한 채 서 있다. 천불천탑의 입상은 경주 석굴암의 아난존자를 빼닮았고, 시위불은 둔황 막고굴의 마하가섭과 비슷하다.
서복사 소장 고려 <관경16관변상도>를 참고하면, 입상은 석가모니 부처상의 향우에 자리 잡고 있기에, 입상의 명호는 관세음보살 아니면 아난존자이다. 그런데 입상의 복장을 잘 살펴보면 보관을 머리에 쓰고 화려한 영락을 몸에 매달고 있는 보살의 복장이 아니라 장삼 위에 가사를 걸친 비구의 복장이므로 아난존자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것은 석굴암 본존불 주위에 부조로 새겨진 아난존자 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석굴암의 아난존자는 가사를 통견으로 입었다. 왼팔로 살짝 감아올린 가사는 길이방향으로 늘어져 있고 오른팔 아래 가사는 대각선 방향으로 주름이 잡혀 있어 입상에서 느껴질 수 있는 뻣뻣함과 단조로움을 피했다. 이 모습 거의 그대로 조각한 것이 길이 10m의 천불천탑 입상이다. 앳된 얼굴, 선한 눈매, 약간 웃음기를 머금은 듯한 입술, 가사 왼쪽과 오른쪽의 주름 방향은 석굴암의 아난존자 부조와 완전 판박이다. 따라서 천불천탑의 불회 공간에 있는 거대 입상의 명호는 아난다로 판단된다.
<사진 4>에 보인 고려 <관경16관변상도>에서 석가모니불의 향좌에 시립한 이가 마하가섭(가섭존자)인데 나이 탓에 다소 쇠약한 모습으로 그려졌다. 그림을 자세히 뜯어보면, 가사를 우견편단으로 착용하였고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무릎 아래로 길게 내려간 옷에는 주름이 심하게 잡혀 있는데, 이는 나이 탓에 노쇠한 비구 (늙은 비구)를 표현하기 위한 기법으로 보인다. 또한 정강이 부근에서 살짝 드러난 속옷은 장삼으로 짐작되는데 세로방향으로 길게 늘어져 있고, 오른손은 위로 들어 올려 왼쪽 가슴에 두었다. 고려 <관경16관변상도>에 그려진 마하가섭의 모습은 시위불에 고스란히 표현되었다. 시위불의 얼굴은 다소 넓적하고 깊은 사색에 잠긴 듯 두 눈은 가늘게 뜨고 입은 굳게 다물었는데, 이는 중국의 성당시기에 만든 둔황석굴(제45굴)의 마하가섭의 얼굴 표정과 많이 닮았음을 볼 수 있다.
천불천탑 공간에는 (흔히 미륵불로 불리는) 수많은 석인상이 여기저기 암벽 아래에 세워져 있는데, <사진 5>에 보인 시위불처럼 옷에 주름이 많고 옷주름이 대각선 방향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오른손을 왼쪽 가슴 높이로 올리고, 왼손을 아래로 축 늘어뜨린 석인상은 바로 <관경16관변상도>에 나오는 늙은 비구를 조형한 것이다. 이들은 아미타불의 극락정토에 왕생한 왕생자를 환영하고, 아미타불을 찬미하는 성문대중 (젊은 비구 + 늚은 비구)의 일원이다.
<사진 6> 아미타 극락정토에 내왕한 왕생자를 환영하는 비구들: 손동작과 옷주름이 (왼쪽)과 같으면 늙은 비구이고, (오른쪽)처럼 통견에 합장 자세이면 젊은 비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