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불천탑 공간에는 불상과 불탑이 각각 천기씩 있었다고 전할만큼 수많은 석상과 불탑이 있었고, 그 가운데 일부가 현재까지도 남아 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천불천탑 공간이 야외 조각 전시장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운주골에 이렇게 많은 석상과 석탑을 세운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석상과 석탑이 무질서하게 마구잡이로 배치된 것이 아니라 운주골의 특정 장소별로 소그룹을 이루는 것처럼 모여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석가모니 부처께서는 기사굴산(영취산)에서 수많은 보살, 제자, 천왕, 천인, 비구를 모아놓고 극락정토에 태어날 수 있는 16가지 방편을 설명하셨다. 이 법문을 수록한 경전이 <관무량수경>이고, 경전의 핵심 내용을 알기 쉽게 그림으로 도해한 것이 <관경16관변상도>라 부르는 불화이다. 필자의 연구에 의하면, 천불천탑은 고려 <관경16관변상도>를 설계도 삼아서 운주골 대자연에 조성한 3차원 <관경16관변상도>이다. 다시 말해서, 천불천탑은 세계 유일, 세계 최대 3차원 <관경16관변상도>이자 고려 불교신자의 극락정토였다.
중국의 당송 시대와 우리나라의 고려 후기에 엄청나게 그려진 <관경16관변상도>는, 수많은 보살, 제자, 천왕, 천인, 비구들 앞에서 <관무량수경>을 설하는 석가모니 부처의 영산정토와 석가모니 부처께서 자세히 설명한 아미타불의 극락정토(상배관, 중배관, 하배관)를 하나의 화면에 그려놓은 종교화로, 그림의 주제는 '참회와 극락왕생'이다. 이 불화를 운주골에 입체적으로 재현해 놓은 3차원 <관경16관변상도>가 바로 천불천탑인 것이다.
설계도로 사용한 2차원 <관경16관변상도>와 똑같이, 천불천탑을 구성하는 네 개의 정토에는 정토의 주인공인 석가모니불이나 아미타불을 한가운데에 두고 수많은 석상과 석탑을 호위무사처럼 주변에 배치해 두었다. 그래서 여기를 방문한 관람자의 눈에는 마치 석상과 석탑이 여기저기 산만하게 흩어진 듯 하면서도 일정한 무리를 이루고 있는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마치 야외조각 전시장처럼 비춰지는 것이다.
아래에 보인 <사진 1>은 (1300-1320년 사이에 그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고려 <관경16관변상도>와 천불천탑의 상관관계를 보인 것이다. 일본 서복사에서 보관 중인 고려 <관경16관변상도>를 살펴보면, 크게 4개의 정토로 구획되어 있다. 그림의 맨 위에는 일상관 바로 아래 석가모니불의 영산정토(불회)를 그려 넣었고, 그 바로 아래에는 아미타불의 구품 극락정토(제14:상배관, 제15:중배관, 제16:하배관)를 그려 넣었다. 즉, 서복사장 고려 <관경16관변상도>를 운주골에 그대로 재현해 놓은 것이 바로 천불천탑이다.
<사진 1> (오른쪽) 아미타불의 극락정토를 그린 고려 <관경16관변상도>는 네 개의 정토로 구성되어 있다. (왼쪽) 천불천탑은 운주골에 재현한 3차원 <관경16관변상도>이다.
<관경16관변상도>에 그려진 영산정토와 세 개의 극락정토(상배관, 중배관, 하배관)에는 각기 석가모니불과 아미타불을 중심에 두고 그 주위에 수많은 보살, 제자, 천인, 비구가 등장하는데, 천불천탑 공간에서 석불군 (가)~(바) 및 주변의 석탑은 바로 이것을 표현한 것이다. 예를 들어, 영산정토에 조성한 석불군 (바)는 관무량수경을 설하는 석가모니 부처의 설법을 듣고 찬미하는 수많은 화신불과 비구를 표현한 것이고, 석불군 (가)-(나)는 하배관에 왕생한 극락왕생자를 환영하고, 하배관의 주존보살인 관음보살의 설법을 찬미하는 화신불과 비구를 표현한 것이다. (하배관의 구층석탑은 관음보살을 표현한 것이다. 석불군 (가)-(나)의 화신불과 비구가 일제히 구층석탑을 바라보고 있는 듯 보이는 것은 구층석탑이 바로 하배관의 주인공인 관음보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관경16관변상도>에서 석가모니불 및 아미타불의 정토(Pure Land)를 장엄하게 보이도록 부처의 좌우에 극락 장엄물(보배나무, 보주당)을 배치했음을 볼 수 있다. 이 2차원 보배나무와 보주당을 운주골이라는 3차원 공간에 세우기 위해서 7층석탑 양식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원형다층석탑과 발형다층석탑이다. 따라서 운주골의 서쪽 능선과 산허리에 자리 잡은 불회 공간(=영산정토)에 있는 칠성석은 북두칠성 바위, 즉 고대 천문 유적이 아니라 극락장엄물인 7층 보배나무의 잔해인 것이다.
아무튼 천불천탑은 고려 <관경16관변상도>를 설계도 삼아서 운주골에 조성된 극락정토이기 때문에, 조성 당시의 원래 모습이 어떠했는지는 서복사장 고려 <관경16관변상도>를 통해서 어느 정도 파악이 가능하다. 그래서 재미 삼아 석가모니불의 영상정토와 아미타불의 구품 극락정토 가운데 제15관: 중배관을 재현해 보았다. 재현에 사용된 재료는 찰흙이다. ^^
<사진 2> 천불천탑의 부부 와불 공간은 석가모니불의 영산정토이다. 따라서 거대 와불은 석가모니불, 시위불은 마하가섭, 입상은 아난다를 표현한 것이다.
<사진 3> 고려 <관경16관변상도> : 아미타불이 극락왕생자를 맞이하기 위해 협시보살과 함께 극락전에 나투셨다. 극락장엄물인 보주당과 보배나무가 극락전 좌우에 세워져 있다.
<사진 4> 석조불감과 쌍배불상은 아미타정토의 중배관에 모습을 드러낸 아미타불을 표현한 것이다. 원형다층석탑은 극락장엄물인 7층 보배나무이다.
<사진 5> 고려 <관경16관변상도>의 불회 공간(=영산정토)과 아미타불의 구품 극락 가운데 중배관을 찰흙으로 빚어 보았다. 극락장엄물은 아미타불의 좌우에 각 1기씩 세워야 한다.
<관경16관변상도>라는 종교화는 석가모니불 또는 아미타불을 중심에 두고 완벽한 좌우대칭을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극락장엄물인 7층 보배나무(=원형다층석탑)는 중배전(=석조불감)의 정면에 세워져 있으면 안 된다. 그렇게 배치하면 중배관의 주존불인 아미타불의 전신을 가리기 때문이다. 극락장엄물(보배나무, 보주당, 연화대, 극락조 등)은 주존불의 좌우에 각 1기씩 (혹은 n 개씩) 놓여 있어 짝수 개(2n 개)를 이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