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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느 Jan 06. 2024

Day 7

나는 다전입니다 (7)

그 순간 다전의 엄마, 미지가 다전을 향해 돌아보며 빙긋이 웃었다. 거봐. 잠깐만 힘든 거 지나면 나름 버틸 만하다니까.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았음에도 다전은 그녀의 말을 들은 듯했다. 엄마의 상기된 볼, 지친 내색도 없이 얼굴에서 떠나지 않는 미소도 뒤이어 눈에 들어왔다. 맞잡은 손은 한없이 따뜻했고, 달릴 때마다 몸을 스치며 지나가는 바람결은 몸 이곳저곳에 맺힌 땀을 식혀주어 시원했다. 온몸을 통해 느껴지는 이 감각이 이제는 마냥 힘들지만은 않다고 생각할 때 다전은 엄마가 말한 ‘저기까지'에 도착했다.


그 후로 다전은 달리기를 좋아하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미지와 달리는 순간을. 수능을 치러야 하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도 주 2회, 5km씩, 때로는 그 이상을 달렸다.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니냐며 그의 부모가 말리기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다전은 체력이 있어야 공부도 할 수 있다며 미지의 팔을 잡아끌었다. 아이고, 알았다, 알았어. 미지는 못 말린다는 듯 다전을 살짝 흘겨보면서도 러닝화를 주섬주섬 신었다. 다전이 사랑하는 그 미소를 띤 채로.


모녀는 운동화 끈을 꽉 조여 맨 후 서로의 손을 잡고 강변까지 걸어갔다. 도착해서는 간단하게 팔다리를 움직이며 스트레칭했고, 이내 서로의 속도에 맞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달렸다. 일종의 신호도 생겼다. 다전이 힘들어하는 듯하면 미지의 발이 느려졌다. 미지의 호흡이 거칠어지면 다전은 처음 자신의 엄마가 그랬듯이 손을 내밀었다. 둘은 도착 지점에 도달할 때까지 손을 놓지 않고, 어깨를 나란히 하며 천천히 달려 나갔다. 그때부터는 다전도 미지도 솔직해지는 시간이었다. 다전이 대학 입시 고민, 좋아하는 반 친구의 이야기 등을 말하면 미지도 자기 경험을 말해주었다. 부러 맞추지 않았는데도 자연스럽게 굳혀진 둘만의 습관이었다.


엄마 말을 듣길 잘했다고 다전은 생각했다. 그때 뛰는 것을 멈췄더라면 지금처럼 엄마의 이야기를 듣지 못했을 것이다. 최대한 말을 삼키는 엄마가 실은 이토록 수다쟁이일 줄은 미처 몰랐을 것이다. 버티면서 나아가면 무언가 펼쳐지는구나, 보이는구나. 느릿하지만서도 말하길 멈추지 않는 미지를 보면서, 어딘가 신난 듯한 표정을 짓는 미지를 보면서 다전은 계속 달렸다.


하지만 어떤 일은 그렇지 않았다. 주어진 하루를 살아내도 미래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보이지 않았다.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날이 이어졌다. 엄마가 점점 뒤처지는 날이 많아지는 걸 빨리 알아챘더라면. 손을 놓지 않았더라면.


(6매, 해피뉴이어 B, 다전. 그리고 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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