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라이팅클럽(SWC) 1기
"누나, 줄 좀 줘~!"
"으아아, 미안해!"
이게 무슨 소리냐고? 리드 클라이밍을 처음 시작하고서 낯선 장비에 적응하느라 고초를 겪는 나와 친구의 아우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일일 강습을 통해 볼더링을 접하고 그로부터 1년 뒤, 나는 큰 결심을 하게 된다. 바로 리드 클라이밍에 도전하는 것. 바이킹이나 자이로드롭과 같은 놀이기구도 좋아하지 않고 약간의 고소 공포증도 있는 내가 리드를 시작한 계기는 단순했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
그때 당시 나는 딜레마에 빠져 있었다. 힘과 요령이 늘면서 내가 풀 수 있는 문제 또한 점점 범위가 넓어졌는데, 지나치게 겁을 먹는 탓에 충분히 완등할 수 있는 것도 잡아보지도 않고 포기하곤 했다. 한두 번 포기하니 이후로는 더더욱 도전하지 않았다. 마치 여우와 신 포도처럼 저 문제는 리치가 안 돼, 저 문제는 다치기 쉬운 문제야, 라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두어 달 정도 그렇게 문제를 떠나보내니 실력이 퇴보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정말 어려운 문제인지, 두려움의 문제인지 곰곰이 생각하다가 더 이상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먼저 리드를 시작한 친구가 다가오는 주말, 함께 외벽에 가자고 해 덥석 물었다.
리드를 처음 경험한 날, 나의 한계를 여실히 느꼈다. 두 번 정도 톱로핑 방식으로 올랐을 뿐인데 금세 부풀어 오른 나의 전완근, 두려움으로 달달 떨리던 두 다리, 무엇보다 나와 친구를 향한 부족한 신뢰감. 밑에서 줄을 잡아주는 친구를 믿으며 다음 홀드를 향해 자신 있게 손을 뻗어야 하는데… 미안하다, 친구야.
하지만 그날 리드 클라이밍의 매력을 여실히 느껴 친구와 또 다음 일정을 잡았다. 리드 강습 일정까지 알아봤다. 앞으로도 이 운동을 꾸준히 하면 내가 볼더링하면서 느낀 어려움이 조금이나마 해소될 거라는 어떤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남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좋은 빌레이 장비를 추천해달라고 부탁해 곧바로 주문까지 넣었다. 그렇게 손에 넣은 나의 ‘그리그리 플러스’. 보통은 튜브형인 수동 확보기로 빌레이를 보는데, 나는 자동 확보기인 그리그리를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첫날의 경험으로 깨달았다. 아무리 등반자와 몸무게를 맞춘다고 해도 자칫 잘못해 오른손을 놓친다면 정말 끔찍한 사태가 일어날 것임을. 나의 오른손보다는 최첨단 시대에 등장한 장비를 믿자고.
그리그리는 과연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등반자에게 줄을 얼마나 줘야 할지 몰라 최대치로 주는 바람에 위험했을 때도, 친구가 갑자기 추락하는 바람에 오른손을 아주 잠시 편 적이 있어도, 그는 결코 상대를 놓치지 않았다. 20만 원이라는 암벽화와 맞먹는 수준의 가격이어도 운동할 때마다 사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나의 확보기. 앞으로도 내 친구와 나의 목숨을 잘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