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윤선 Jun 11. 2024

걸어서 에펠탑까지

한 밤중의 100미터 달리기

해가 지고 난 파리의 저녁은 낮과 달리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나는 설렁설렁 저녁의 바람을 느끼며 산책길에 나섰다. 비로소 '파리'의 중심에 들어와 있다는 실감이 났다. 숙소의 시설은 그저 그랬지만 '걸어서 에펠탑까지' 갈 수 있다는 점이 좋아서 선택하게 된 숙소였다. 그날은 이 장점을 누려 보기로 한 날이었다. 


  나는 사실 웬만해선 여행지에서 모험을 하편이 아니다.  모처럼 온 여행의 기분을 망치거나 스스로를 위험에 빠트릴 수도 있는 요소를 사전 예방 하려는 '의지' 때문이다. 즉 해가 떨어진 후에 숙소를 벗어나는 일이란 내 사전엔 결코 없을 일이었다.  


  그런데 파리에서, 에펠탑이 바로 코앞에 보이는 숙소라니!  

  다소 들뜬 마음이 이끄는 대로, '의지'를 상실한 채 저녁을 먹고 집을 나섰던 것이다. 짐 없이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숙소를 나선 발걸음이 가볍고 상쾌했다. 그 사이 저녁빛은 더욱 짙어졌고, 어둠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여전히 이 순간이 비현실적인 느낌이 든다는 것 외에 별다른 경계심이 들지는 않았다.  


  밤의 에펠탑 광장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낮이라면 광장에서 에펠탑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좋았겠지만 잘 보이지가 않았다. 나는 기왕에 나선 길  에펠탑의 내부를 들여다보기로 했다. 전망대에 오르기 위한 대기줄은 꽤나 길었다. 마침내 긴 기다림 (그러나 낮에 비해선 짧은 시간이었다고 함) 끝에 거대한 에펠탑의 철구조물 속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커플, 혹은 가족 단위의 관광객들이 대부분이었다. 혼자서 가는 미술관 관람의 충만함과는 다르게 외로운 기분이 들었다. 마침내 첫 번째 전망대에 도착하자 바람은 더 세졌고, 사방으로 시야가 트인 높은 공간에 서자 잊고 있던 고소공포증이 생길 것만 같았다. 먼발치 저 아래 어둠 속에 불빛이 반짝이는 곳이 파리 시내라고 누군가 감탄하듯 소리쳤다.


   소문난 잔치는 피하고 보는 편

  어쩌면 게을러서 생긴 버릇일 수도 있는데 나는 사실 소문난 잔치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그러니까 베스트셀러 소설이나, 흥행 1위의 영화들을 비롯 너무 유명해진 장소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잠잠해질 때를 기다렸다 찾아본다거나, 어느 날 문득 다가온 것들이 주는 우연한 감동의 여운을 즐기는 편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아무튼 그 밤의 에펠탑은 '과장' 된 관광지의 실체를 확인하는 시간이라고나 할까? '무서워'를 연발하며 연인의 팔에 매달려있는 커플들, 자녀를 보호하는 부모들 사이에서 고독한 자세로 가만히 먼 곳을 바라보다 마침내 지상으로 다시 내려왔다. 여길 올라와 보겠다고 기다렸던 시간보다 그리 긴 시간도 아니었다. 밤이 깊어 좁은 직선의 고공 전망대 투어까지 올라가는 사람의 숫자는 적었다. 나도 포기했다.


  그 와중에 신기했던 건 에펠탑을 이루고 있는 철골 구조물이 흡사 살아있는 유기물체처럼 느껴졌다는 거다. 그것은 마치 어둑어둑한 간접 조명 아래서 자신의 속을 드러내고 싶지 않지만 드러내며 살 수밖에 없는  동물과도 같았다. 자본주의 사회가 만든 거대한 공룡의 척추뼈를 타고 올라가는 것처럼 작고도 하찮은 인간들의 감탄은 소란스러웠다. 


  비로소 땅에 내려오자 그제야 숙소로 돌아갈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관람시간의 마지막 관람객들이었으니 자정이 가까워질 무렵이었을 것이 틀림없다. 에펠탑을 내려와 광장을 지나는데 들어설 때 보지 못했던 몇 무리의 젊은이들이 있었다. 빛이 나는 놀이기구를 높이 던졌다가 다시 받는 놀이를 하는 등 시끌벅적했다. 혼자인 나는 왠지 모를 위협감이 느껴졌다.  나는 부지런히 사람들이 나가는 쪽을 따라 걸으며 어서 그곳을 빠져나갈 궁리만 했다. 


한 밤중의 100미터 달리기는 누가 시켰나?

  그런데 그 무리 중에 누군가가 나를 유심히 쳐다본다는 느낌이 드는 게 아닌가. 물론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겁이 났다.  나는 순간적으로 앞서 가고 있던 서 너 명의 가족 사이들 사이로 슬며시 끼어들었다. 가족과 같이 온 사람처럼  묻혀서 걷기 시작했다. 시간은 자정을 넘어서 가고 있었고, 나는 혼자온 동양 여성 관광객이었다. 여러모로 표적이 되기에 적당하 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여전히 일정한 거리를 둔 채 걸으며 놀이를 이어갔다(?)


  마침내 어느 모퉁이에 다다르자, 모르는 그 가족은 방향을 틀어 가버렸다. 온전한 혼자가 되자 나는 본능적으로 앞을 보고 달리기 시작했다. 얼마를 그렇게 한참을 달리다 뒤를 돌아다보니 텅 빈 거리를 나 혼자 달리고 있는 게 아닌가. 따라오는 사람도 없었고, 사람도 차도 없는 그야말로  밤의 허공 속과 다름이 없었다. 붉은 가로등 사이로 검은 가로수들만이 또렷한 실루엣을 남기고 있을 뿐이었다. 비로소 내가 머무는 숙소의 건물이 가까이 보였다. 나는 그제야 멈추어 선 채 숨을 가다듬었다. 


  '에펠탑'은 이 탑의 설계자인 'Gustave 에펠'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기념하여 파리에서 열린 1889년 만국 박람회(세계 박람회) 준비의 일환으로 구상되었다고 한다. '파리에 가면 에펠탑이지' 라며 에펠탑이 좋았다는 수많은 여행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내 느낌은 시니컬하기 그지없다. 그나저나 그날 거기 에펠탑 광장에서 누군가 나를 따라오고 있던 것은 실제인가?  환상인가? 착시인가? 나는 여전히 아직도 알 수가 없다. 


  















  






이전 13화 예술가(퐁데자르)의 다리에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