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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현 변호사 Oct 12. 2024

이태원 참사 2주기, 기억과 애도

‘과밀한 대한민국’ 그 절정(絶頂)에서 묻는다.

'젊은이여, 네 젊은 날을 즐거워하라!'

     

젊은 주검으로 뒤덮이는 전장(戰場)의 실상을 고발한 올리버 스톤 감독의 1986년 영화 ‘플래툰’은 이런 성경 구절로 시작한다.     


다가오는 10월 29일은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 2년이 되는 날이다. 그러니까 불과 2년 전 이태원 골목길에서 150명 넘는 이들이 숨졌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대부분의 희생은 골목길의 5.5평 공간에 집중됐다. 안타깝지 않은 죽음은 없지만,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도 아닌 평화로운 도심 한복판에서 많은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압사(壓死)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이 또 참담하다.     


더욱이 희생자의 대부분은 젊은이들이다. ‘어디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육사는 ‘절정(絶頂)’에서 절망을 이렇게 표현했다. 무엇이 젊은이들을 발 디딜 곳 없는 과밀의 절정으로 몰았는가? 과밀한 나라에 태어나, 입시와 취업이란 경쟁의 사닥다리에 매달리다 이른 삶의 종착지가 발을 제대로 디딜 수조차 없는 곳이라니.

젊은 날의 트라우마


전투부대 소대장이었던 필자는 리더십 부족으로 애를 먹었다. 당시 소대원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미안하다. 민망한 기억이 적지 않은데 소총을 분실하는 대형 사고도 있었다.


긴 훈련의 마지막 날, 완전군장 행군으로 부대에 복귀했다. 그 가운데 필자의 소대원 한 명을 비롯하여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일부 중대원들은 행정보급관이 선탑한 트럭에 몸을 실었다. 트럭이 비포장 도로를 달리면서, 필자의 소대원 소총이 적재함에서 튕겨 나갔다. 행정보급관은 탑승하는 병사들을 좀 더 밀착시키려고 소총을 적재함 바닥에 내려놓도록 했고,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어스름 가운데 적재함에 몸을 실은 병사들이 고된 훈련에 지쳐 꾸벅꾸벅 졸던 중 일어난 일이다.


부근을 지나던 주민 한 분이 소총을 주워 파출소에 신고한 게 그나마 천만다행이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육군본부에까지 소총 분실이 알려지게 되었다.


이 일로 중대장과 필자, 행정보급관은 함께 징계위원회에 출석했다. 각자 발언할 기회가 되었을 때 모두 입을 맞춘 듯 자기 책임이라고 했다. 결국 중대장과 행정보급관은 징계를 받고, 필자는 염치없게도 징계를 면한 가운데, 소총을 분실했던 소대원은 영창에 갔다.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연속됐지만, 애초 필자가 그 소대원에게 총기 휴대 관련 교육을 제대로 했다면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이제 25년이 지났지만, 영창으로 향하던 소대원의 야윈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하고, 당시 일은 필자의 마음에 화상(火傷)처럼 남았다.

매뉴얼이 끝나는 곳에서 리더십은 시작된다.     


이태원 참사 당시 정부를 향한 비판이 쏟아지는 가운데 한덕수 국무총리는 참사와 관련해 외신 기자회견을 했다. 한 총리는 ‘관련 시스템 부재(不在)’를 탓했다. 일국의 총리가 외신 앞에서 자신의 나라를 ‘시스템이 없는 나라’로 전락시킨 순간이었다.     


시스템이나 매뉴얼 부재 탓은 책임자가 할 말은 아니다. 모든 상황에 들어맞는 매뉴얼은 없다. 실전에서 적(敵)은 야전교범(Field Manual)대로 공격하지 않고, 상황도 그대로 전개되지 않는다. ‘참사 관련 기자회견에서 국무총리는 웃거나 농담을 하면 안 된다’, ‘국정감사장에서 대통령실 수석비서관들은 「웃기고 있네」 같은 메모를 건네며 사적 대화를 나누면 안 된다’라는 매뉴얼이 굳이 필요 없듯이 말이다.


요컨대 매뉴얼이 끝나는 곳에서 리더십은 시작된다. 이것이 실패한 소대장이었던 필자가 배운 리더십이다.

특별법의 시행과 사법적 판단의 진행 경과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 551일 만에 ‘10·29이태원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 소위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지난 5월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2024년 5월 21일 시행된 이 법은 이태원 참사의 발생원인과 책임소재 등에 관한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하는 내용이 골자인데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고 또 4개월여 만인 지난 9월 13일에야(참사 발생 686일째) 특별조사위원회 구성이 비로소 완료되었다.      


사법적 판단은 이제 막 1심의 문턱을 넘었다. 서울서부지방법원은 지난 9월 30일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며 당시 용산경찰서장에게 금고 3년의 실형을 선고하고, 함께 재판에 넘겨진 경찰 2명에게도 금고 2년의 실형과 금고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각 선고했다.     


반면 같은 혐의로 기소된 당시 용산구청장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요컨대 ‘경찰 유죄, 구청 무죄’의 1심 결과가 나온 것이다. 검찰과 피고인들의 항소로 재판은 이제 항소심을 앞두고 있다.


절망의 겨울을 마주한 지금, 꺼내는 질문     


참사 당일 거리에 뉘어진 희생자들에게 여러 사람이 CPR(심폐소생술)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멈춘 심장을 살리려고 무릎을 꿇고 애쓰는 모습이 젊은이들의 꺼진 소망을 되살리려는 기성세대의 노력처럼 보여 애절했다.     


절망의 겨울을 마주한 지금, 교과서에나 있을 낡은 질문을 다시 꺼내 본다. 우리에게 리더십은 무엇이며, 국가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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